이주화는 “공연준비를 하면서 매일매일 빨리 가서 연습하고 싶을 만큼 재미가 있었다. 처음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전혀 낯설지 않고 1만 4천 년전에 이미 만난 인연인 것 같다”며 배우들 간의 찰떡호흡을 자랑했다. 연극 ‘맨 프럼 어스’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1만 4천년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명품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탓에 한 역할에 2~3명이 돌아가면서 무대에 오른다. 미술사 교수인 이디스 역의 이주화는 “나는 그동안 단독을 선호했고 더블 캐스팅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똑같은 역인데 3명이 다 다르다. 다들 분석하고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 거기서 더 많은 걸 배운다. 서로를 비교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디스 역은 이주화와 함께 서이숙, 김효숙이 공연한다.
그녀는 이번 연극이 주는 의미는 “사람”이라고 했다. “존은 1만 4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까.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불사가 아닌 끝이 있는 존재인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이 극의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이주화는 연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에 매진해 왔다. 특히 연기를 통한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KBS공채 탤런트 협회인 ‘한울타리’ 회장인 그는 여러 봉사활동에 힘써 왔는데,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었다. 사진제공=이주화
이주화는 봉사에 대해 “배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자신의 연기를 통해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지만, 사람을 도움으로서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 그건 나눔이고 봉사다. 그래서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라고 했다.
KBS 공채 탤런트들의 모임인 ‘한울타리’는 재능기부 형식으로 어린이병원, 암센터,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를 위한 공연을 하고 있고 여러 무료급식소에서 배식, 설거지 등 궂은일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이주화는 “암센터 아이들은 치료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직접 가서 공연을 한다. 우리는 책 내용을 각색해 공연하며 아이들이 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도와주고 있다. 어린이 병원에서는 목욕을 시켜주고 손톱을 깎아주고 밥을 먹여준다. 침대를 닦고 청소도 한다. 그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건 따뜻한 손길이다. 이름을 계속 불러주면 거동이 불편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움직이는데,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에겐 물질적 지원 보다 사람의 손길이 더 필요 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서는 “그 환자들이 쓴 수기를 각색해 연극 무대로 올리고 있다”며 “환자들의 삶을 배우들이 직접 보여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다. 우리 무대를 통해 치료를 더 잘 받아야겠다는 절실함과 더 힘을 내야겠다는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약으로 하는 치료가 아닌 마음의 치료를 돕고 있다”고 했다.
“배우는 정말 감사한 직업이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이주화는 이번 연극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갈지 알려 준다”고 했다.
맨 프롬 어스에서 이주화는 1만 4천 년을 살아온 불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무한하지 않고 유한한 우리 삶의 대변자다. 극중 긴장감을 최고조로 올리는 상징적 인물이며 불완전하기에 신에 매달리는 평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영원하지 않는 인생에 대해 “지금까지 지나갔던 인생을 다시 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 출연자들 /사진제공=이주화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는 200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며, 이번 국내 공연을 통해 세계에서 첫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원작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새턴어워즈 올 해의 필름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미국 SF TV시리즈인 ‘스타트랙’, ‘환상특급’의 작가 제롬 빅스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비웃는 위대한 시나리오”라는 찬사를 받은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