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44) 축구대표팀 코치의 한 마디에 그라운드 분위기가 눈에 띄게 치열해졌다. 패스의 속도가 빨라졌고, 몸싸움은 더욱 거칠어졌다. 눈빛도 한층 진지해졌다.
축구대표팀에 새로운 훈련 기법이 등장했다. 이른바 '상황별 시뮬레이션'이다. 특정 시간대와 특정 스코어를 가정해 그에 맞는 플레이를 선수들에게 주문하는 방식이다. 선수들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4일 미국 세인트 토머스대 잔디구장에서 대표팀이 실시한 9대9 미니게임에서 시뮬레이션 기법이 처음 등장했다. 경기 도중 김 코치가 "후반 10분 남았다!"거나 "경기 종료까지 5분!"을 외치면 선수들이 그에 맞게 플레이스타일을 바꿨다. 리드하는 상황에서는 지능적으로 볼을 돌리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애썼고, 지고 있을 땐 한층 과감한 압박과 공간 침투로 득점 찬스를 노렸다.
홍명보 감독은 양 팀을 주전팀과 비주전팀으로 구분하지 않고 선수들을 고르게 섞었다. 조끼를 착용한 팀은 김신욱을 최전방 공격수로 삼아 손흥민·이근호·박종우·윤석영·김영권·곽태휘·김창수 등이 라인업을 이뤘다. 박주영이 이끈 비조끼 팀은 지동원·김보경·구자철·하대성·박주호·한국영·황석호 등이 나섰다.
훈련이 열기를 띄면서 위험천만한 상황도 종종 나왔다. 수비수 김영권이 플레이 도중 상대 선수와 부딪혀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지자 일순 그라운드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표팀 관계자들은 김영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뛰기 시작하자 비로소 굳은 표정을 풀었다.
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도 시뮬레이션 훈련을 활용해 효험을 봤다. 정해성 당시 대표팀 수석코치의 주도로 특정 시간대와 스코어를 가정한 훈련으로 선수들의 상황 판단력을 키워줬다. 대표팀 관계자는 "선수단이 마이애미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 이후 수비 조직력과 공격 전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면서 "상황에 맞는 대처 능력까지 확보되면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