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두산-넥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난 뒤 야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심판 판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날 경기 9회초 두산 공격 1사 1·3루에서 오재원의 1루 땅볼 때 허경민이 홈에서 태그아웃된 장면 때문이었다.
3-0으로 앞서던 두산이 9회말 2사 후 박병호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연장 혈전을 치르면서 팬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오심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결론만 따지면 심판의 판정은 정확했다. 이날 경기 구심이었던 이영재(45)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은 "나도 허경민의 발이 포수의 태그보다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허경민의 발이 포수의 블로킹에 걸려 홈 플레이트를 건드리지 못했다. 스파이크 자국도 선명하게 났다. 김진욱 두산 감독에게도 그걸 보여주자 납득했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 나서는 심판들의 압박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올해 유독 심판 판정과 관련해 잡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경기가 TV로 생중계되고 리플레이 화면을 몇 번이나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오심은 더 이상 팬들의 눈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18년차인 이영재 심판위원은 "6년 전 처음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똑같다. 물론 올해는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집중하고 있다. 여러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심판들은 선수 못지 않은 피로에 시달린다. 시즌 중에는 선수들과 똑같은 스케줄로 움직이고, 비시즌 때도 세미나나 연습경기 일정 등이 있다. '잘 해도 본전, 못 하면 욕 먹는 직업'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이영재 위원은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난 뒤 집에 오니 고등학생 딸이 안주를 해놨더라. TV로 경기를 보면서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팔꿈치에 공을 맞아 술은 못 마시고 차려놓은 음식만 먹고 쓰러져서 잤다"고 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힘든 일, 하지만 심판위원들에게도 '프라이드'가 있다. 대부분 야구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야구인'이라는 자각이 있다. 이영재 위원은 "공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 안 써 본 위치가 없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심판들의 각도도 본다. 심판교본과는 다르지만 보고 있으면 '아, 이래서 저렇게 보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솔직히 가족이 생긴 뒤에는 그만큼 '이게 내 직업이다'란 생각도 커졌다. 그래도 내가 쌓아온 것들이 있지 않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재 위원은 준PO 5차전이 올 시즌 마지막 출장이었다. PO와 한국시리즈에서는 다른 조의 심판위원들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아직 2주나 남아 있다. 이 위원은 "우리에게도 포스트시즌은 잔치다.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심판들도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