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예능 트렌드가 '극한 직업 체험'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해 초에는 SBS '정글의 법칙'이나 '맨발의 친구들'(이하 '맨친'), MBC '파이널 어드벤처' 등 해외 체험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었고, 이후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MBC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 등 체육 예능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맨친'의 경우, 아예 프로그램 컨셉트 자체를 해외여행에서 다이빙으로 바꿨을 정도.
이어 하반기에는 실제 군생활을 표방한 MBC '진짜사나이'의 성공에 힘입어 '직업 체험 예능'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SBS에서는 연예인들이 실제 소방서에서 고군분투하는 '심장이 뛴다'를, KBS는 경찰서 체험을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는 조선시대 노비의 삶을 체험하는 '시간탐험대 렛츠고(古)'를 선보였다. 전문직 드라마처럼, 예능도 조금 더 리얼한 세계를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극한 직업의 세계들이 예능프로그램의 신 트렌드로 자리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지상파·케이블을 넘나드는 '극한 직업' 속속 등장
구체적인 직업 체험의 포문을 연 것은 '진짜사나이'다. 예비역 뿐 아니라 외국인·아이돌 등을 실제 입대시켜 화생방 등 유격훈련부터 행군·포사격·도하훈련 등 리얼한 군부대 안 모습을 끄집어냈다. 멤버들이 군막사에서 일주일간 실제 군인과 똑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희로애락을 겪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장교와 현역 출신으로 구성된 연출진의 힘이 컸다는 평.
이에 SBS는 군부대 대신 소방서에 다큐멘터리 출신 PD를 투입하며 대응했다. 전혜빈·조동혁 등 멤버들이 5박 6일간 합숙하며 해운대 소방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담았다. 또 KBS 관계자는 "곧 직접 경찰청 현장을 경험하는 예능을 제작할 예정"이라며 "스타들이 우범지역 순찰을 도는 등 경찰직무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tvN이 선보인 '렛츠고(古)'에서는 노비라는 직업에 조선이라는 시간대까지 설정했다. 이같은 경향에 대해 나영석 PD는 "예능이라고 무조건 웃긴 것만 찾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출연진들을 넣어 놓고, 그 안에서의 반응과 감정변화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잘 먹힌다"며 "가장 관심있게 보는 예능은 '진짜사나이'다. 세밀한 연출이 돋보였다"고 밝혔다.
▶직업 체험 예능은 다큐의 변형
이같은 '직업 체험' 예능은 예전부터 존재했던 '리얼리티 다큐'의 변형이라는 해석이 많다. 2008년부터 방송중인 EBS '극한 직업'에서는 군인·광부·교도관 등 주로 육체적으로 고되고 거친 직업 종사자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고, 2007년 종영한 MBC '현장기록 형사'는 사기·절도 등의 범죄 사건을 해설과 재연을 통해 재구성, 호평을 받았다. '진짜사나이' '심장이 뛴다' 등은 이런 소재를 예능으로 옮겨 조금 더 밝은 분위기에서 유쾌하게 풀어낸 셈이다. 이에 '심장의 뛴다' 박휘선 작가는 "재미를 위해 다른 예능처럼 인위적으로 조미료를 치지 않았다. 멤버들은 심각하지만, 시청자는 재미있는 것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배우 최우식은 "'심장이 뛴다' 촬영을 해 보니, 절대 예능이 아니었다. 예능으로 위장한 다큐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다큐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경찰·소방관 등은 제일 많이 출연하는 직업이다. 세계적으로는 다큐 장르를 통해 일반의 삶을 다루는 것이 인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 연예인이 예능에서 소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의 삶과 밀접하면서도, 평소 내막을 알지 못했던 직업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것도 재미 요소다. '오지 탐험' 등 해외 버라이어티가 이국적인 삶과 풍경을 보여줬다면, 화재 진압과 범죄 수사 등은 훨씬 일반인들에게 와닿는 소재이기 때문. 또한 시청자들이 전문 직업인이 아닌 연예인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어, 다큐에 비해 몰입도가 높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진짜사나이'는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반응이 좋았다"며 "그들의 가족 중 누군가는 군대를 경험했을 것이다. 남친이나 오빠동생, 아버지 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해당 직업의 속사정을 파헤치는 재미도 있다. 배우 조동혁은 "소방서에서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 민원이 들어와 사이렌을 끄기도 했다. 소방대원들이 '우리가 죽어야 알아준다'고 하더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 아닌 연예인을 극한상황에…가학성 변질 우려도
'극한 직업 체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육체적으로 고된 3D 업종을 주 소재로 하기 때문에 촬영장 곳곳에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실제로 배우 김수로는 '진짜사나이'서 어깨부상에도 유격훈련을 강행하다 우측 회전근개 파열로 하차했다. MRI 검사를 받은 후 수술까지 받았다. 제국의 아이들 미르는 81mm 박격포 훈련을 받다 허리 통증이 악화됐다.
'심장이 뛴다' 출연진은 체감온도 50도의 환경에서 10kg이 넘는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훈련을 받았다. 전혜빈은 "'심장이 뛴다' 방화훈련 중 폐건물에 불을 질러 훈련했는데 정말 위험했다"며 "(최)우식이는 산소가 모자라 밖으로 뛰쳐나갔고, 열기가 굉장해 조동혁·박기웅은 불을 직접 끄면서 귀에 화상까지 입었다"고 전했다.
'렛츠고(古)'에서 노비로 분한 개그맨 유상무는 주인마님에게 뺨을 얻어맞았고, 장동민은 20kg에 달하는 짐을 지고 35km에 가까운 거리를 차량지원 없이 이동했다. 노비의 진짜 삶을 재현한다며 하루에 두 끼만을 지급해 탈진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이에 전혜빈과 유상무는 입을 모아 "제발 이 프로그램이 정규편성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정덕현은 "프로그램의 특성상, 부상 얘기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시청자들은 출연진의 부상도 싫어하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도 싫어한다. 실제로 소방관들은 임무수행 중 안타깝게 사망하는 일도 있지 않나. 시청자들의 진정성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어느 정도는 이런 부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국 측에서 이같은 출연진의 부상을 프로그램 홍보 요소로 이용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해당 프로그램 뿐 아니라, 각종 예능에서는 출연진이 몸을 다칠 때마다 '부상투혼'류의 기사들이 화제를 모으곤 한다. 한 프로그램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진이 부상을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아무리 보험에 들었다 해도 출연진의 부상에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어느 정도 다치는 것에서 조금 더 몰입하는 것 같다. 제작진에서도 '우리가 이 정도로 리얼하게 한다'는 걸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