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포화 견딘 아프가니스탄, 10년 만에 축구 되찾다
흔하디흔한 축구 국가대항전이 누군가에겐 10년 동안 겪지 못한 소중한 경험이다. 아프가니스탄은 21일(한국시간) 수도 카불의 아프가니스탄축구협회(AFF) 스타디움에서 파키스탄과 친선 경기를 갖고 3-0으로 승리했다. 2003년 투르크메니스탄을 1-0으로 꺾은 뒤 10년 만에 치른 홈경기였다.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혼란기를 겪었다. 1954년 당시 아시아축구연맹(AFC) 창설 멤버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아프간 축구는 1980년대부터 국제 무대에서 실종됐다. 탈레반 정권(1996~2001)은 유서깊은 가지 스타디움을 공개 처형 장소로 변질시켰다. 아프간 대표팀은 2002년부터 다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전쟁을 치르는 등 이어진 시련으로 홈경기를 가질 수 없었다. 종종 상대 국가 입국을 거부당해 원정 경기조차 치르기 힘들었다.
아프간 땅에서 축구가 부활 조짐을 보인 건 지난해 9월부터였다. 8개팀으로 구성된 아프간 최초 프로 리그가 출범해 큰 화제를 모았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 선수를 선발하는 등 떠들썩하게 시작된 프로 리그는, 아프간 사람들이 혼란 속에서도 스포츠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9위 아프간과 167위 파키스탄의 친선 경기는 두 국가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자는 취지로 성사됐다. 양국간 A매치는 36년 만에 처음이었다. 실력은 아프간이 한 수 위였다. 전반 20분 산자 아흐마디의 골로 앞서간 아프간은 전반 32분 하라쉬 아테피, 후반 26분 마루프 마흐무디가 추가골을 넣어 대승을 거뒀다.
새로 건설된 AFF 스타디움을 메운 관중 6000명은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BBC와 인터뷰를 가진 공무원 샤비르 아흐마드(27)는 "이 경기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 경기가 양국 친선을 도모하려는 취지에서 열렸다 하더라도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라이벌"이라며 선수들 못지않은 투지를 불태웠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승리의 기쁨이 전국으로 퍼졌다. BBC는 "수십 년동안 전쟁과 빈곤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광란에 가까운 축하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AFF의 사예드 아가자다 사무총장은 "이 경기는 아프가니스탄이 힘든 시절을 끝내고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아프간 축구는 체계와 시설 등 여러 면에서 발전하고 있다. 축구가 더 성장할거라 믿는다"는 희망을 밝혔다. 파키스탄 축구협회도 이 경기가 양국 우호를 증진할 거라는 희망을 전했다.
김정용 기자 cohenwis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