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넘치는 젊은 후배들도, 이승엽(37·삼성)의 부드러운 스윙에 놀랐다. 이승엽의 타구는 더 자주 담장을 넘겼고, 더 멀리 날아갔다. 9개구단 유니폼이 수를 놓은 18일 포항구장 관중석. 이날만큼은 응원팀을 떠나 '국민타자' 이승엽을 응원했다. 이승엽은 이날 생애 첫 홈런레이스 1위에 올랐다. 10년 만에 출전한 한국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팬들에게 추억을 선물했다. 그는 "나도 정말 즐겁다"며 웃었다.
하루 전, 미국 뉴욕주 시티필드(뉴욕 메츠 홈구장)에서는 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2013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8회말, 밴드 메탈리카의 음악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이 울려 퍼졌다. 수비수는 아무도 없었다. 44세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만이 마운드에 서 있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와 올스타 감독·코치·선수, 그리고 팬들이 선사한 '리베라 모먼트'였다.
시티필드에 등장한 다른 양키스 선수들은 '야유'를 받았다. 메츠팬들은 지역 라이벌 양키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하지만 리베라는 달랐다. 메츠팬들마저 리베라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올스타전에 참가한 동료들도 휴대전화를 꺼내 이 순간을 담았다. 경기가 재개됐다. 리베라는 '명품구종' 컷 패스트볼 14개를 던져 삼자범퇴를 기록했다. 경기 뒤 리베라는 올스타전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올 시즌 뒤 은퇴를 선언한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 1089경기에서 77승60패 638세이브(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리베라는 또 한번의 화력한 이력을 쌓았다.
한국 야구 관계자들은 미국 올스타전을 수놓았던 '리베라 모먼트'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올스타 전야제와 같은 성격의 홈런 레이스에서 이승엽이 작은 감동을 선사했다. 리베라 모먼트만큼 잘 기획된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서 있는 베테랑'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번 떠올린 계기였다.
이승엽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연속 올스타전에 나섰다. 이때는 그의 전성기였다. 2004년 일본에 진출한 뒤 2005년과 2006년 두 차례 감독 추천으로 일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팬투표에서 포지션 2위로 밀렸다. 감독 추천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라는 이유로 고사했다.
올해는 달랐다. 이승엽은 이스턴리그 1루수 부문에서 96만 31표를 얻어 67만 7889표를 받은 박종윤(롯데)을 여유있게 제쳤다. 팬들이 이승엽을 원했다. 이승엽은 명불허전 홈런 레이스로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2013년 올스타전이 남긴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