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프리선언.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좋은 모습으로 시청자를 만나겠다"고 밝혔지만 2년 가까이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회사를 나간 뒤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방송사 이곳저곳을 누비는 후배 아나운서들과는 달랐다.
2013년 3월, 오래간만에 만난 윤 아나운서는 과거 '생방송 모닝와이드''생방송 투데이' 등을 진행할 때처럼 밝았다. '백조'의 조급함은 없었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사표를 던진 후 2년 동안 그녀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최근 MBC 'TV특강' 진행을 맡아 방송 복귀한 윤지영 아나운서를 만났다.
-2010년 사표를 던졌다.
"사실 프리랜서를 준비하고 그만둔 건 아니었다. 방송국은 정겹고 안락한 곳이지만 경쟁 역시 심하다. 회사를 그만둔다면 누구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는 기분이 먼저일 것이다. 마흔이 되면서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가장 안정적이지만 위험할 때 나왔다. 공부도 하고 싶었다. 성악을 전공하고, 바로 입사를 해서인지 인문 공부나 사회적인 이슈들을 더 경험해 보고 싶었다. 뉴스를 통해 접했던 현실을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했던 꿈인가.
"회사 다니면서 야간대학 다니는 분들도 있지만, 난 처음부터 제대로 해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뮤지컬 무대에 서는 꿈도 있다. 음대를 나와 무대가 생활이었던 사람인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포기해야했던 부분이다. 근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꽃다운 나이도 아니고 경력이 화려하지도 않다. 7전8기 까진 해보지 않을까. 열심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재즈 공연 같은 것은 해보고 싶다."
-아이도 키우고 있다.
"직장을 나온 세 번 째 이유다.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아이를 데리고 여유롭게 다니는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사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필요한 시기였다."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나.
"무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장을 다니다가 회사를 나오니 막상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두렵더라.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실 방송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기획사에 들어갈 생각은 안했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방송에 대한 조급증은 있었지만 기획사는 좀 쑥스러웠다. 할 수 있는 거, 없는 거 다 동원해서 빨리 뭔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게는 방송이 소통의 공간이었는데 이걸 잃어버리면 벙어리가 되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도 있었다. 근데 순수하게 공부를 시작하니 잘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더라. 뭔가를 이뤄가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졌다. 방송을 하기 위해 되지 않는 개그나 연기를 하는 건 억지 같다. 경쟁해서 기회가 된다면 무대에서 하는 연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나.
"석사를 인정해줘서 신문방송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지도 교수님이 '무엇을 연구할 거냐'고 물어보더라.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 대답을 못했다. 공부를 하면 학교가 나에게 뭔가를 쥐어줄 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부를 하다보니 내가 호흡한 신문과 방송이 다 현실이었다. 그 안에서 어떤 틀을 가지고, 객관화해 현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방송에도 컴백했다.
"최근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TV 특강쇼'를 진행 중이다. 강사를 초빙해 지혜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에 방송이 안 된다고 하던데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 나온다. 시청률도 전국적으로 잘 나오더라. 내용이 굉장히 알차고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유익하다."
-최근 기억나는 방송은.
"안부수라는 분이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사이판 등에 끌려가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발굴해 오는 분이다. 배우들이 혼신의 연기를 하면 신들린다고 하는 것처럼 그 분도 유골이 묻힌 곳에 가면 유골이 자기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고 하더라. 좋은 일 하는 분들을 소개해 뿌듯한 마음이다."
-인상 깊었던 강연자는.
"손미나 씨다. 소설을 번역한 인도 여성의 삶을 이야기 하더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삶은 긴 여행 같이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것이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라고 생각했다."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아나운서 후배들을 만나면 너무 좋다. 특히 SBS 후배들은 사랑스러울 정도다. 이상하게도 아직 때가 묻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발전하려는 후배를 볼 때마다 맑아지는 모습이 느껴진다. 처음 방송했을 때의 순수함을 잃지 말고 대범하게 했으면 한다. 회사를 떠났지만 만나도 민망해하지 말자. 하하. 회사가 다르지만 마음은 같으니까 어색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