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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용병’ 뮬렌, 사령탑 되어 한국에 칼 겨누다
14경기만에 퇴출된 외국인 선수가 13년만에 한국팀을 상대로 칼을 겨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첫 경기를 벌이는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헨슬리 뮬렌(46) 이야기다.
퀴라소 최초의 메이저리거, 한국에서 쓴맛 보다
뮬렌 감독은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의 섬인 퀴라소 출신이다. 18살이던 1985년 뉴욕 양키스와 계약한 뮬렌은 1989년 드디어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퀴라소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거 탄생이었다. 1993년까지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간 뒤 1994년에는 트레이드로 일본 무대를 밟았다. 지바 롯데에서 23홈런을 때린 뮬렌은 다음 해 야쿠르트를 거쳐 1997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0년 뮬렌은 다시 아시아 무대를 밟는다. 한국프로야구의 쌍방울이 새 둥지였다. 뮬렌은 팀이 해체된 뒤 SK로 재창단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SK 창단 멤버가 되기도 했다. 이번 WBC 대표팀에 소속된 이진영(LG)도 "뮬렌과 함께 전지훈련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그러나 뮬렌의 한국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3루수로 출전했던 뮬렌은 14경기에서 타율 0.196에 그쳤고, 결국 조기퇴출의 아픔을 맛봤다. 강병철 당시 SK 감독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메이저리거 출신임에도 성격이 얌전했다. 선수들과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뮬렌은 이후 2002년 부상을 이유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32살에 은퇴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은 182경기 15홈런 53타점 타율 0.220으로 평범했다.
지도자 뮬렌, 한국과 대결한다
'지도자' 뮬렌은 승승장구했다. 2003년 볼티모어 마이너리그 코치로 일한 뮬렌은 2005년에는 피츠버그로 자리를 옮겨 트리플A 팀 코치를 맡았다. 피츠버그의 강타자 앤드류 맥커친이 뮬렌의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2009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로 옮겼고, 2010년에는 메이저리그 타격코치가 됐다. 샌프란시스코는 2010년과 2012년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09년 WBC에서 코치를 맡았던 뮬렌은 이번 대회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타격코치인 그의 부재를 위해 인스트럭터까지 영입하며 뮬렌을 흔쾌히 보내줬다. 뮬렌 감독의 지도력과 팀내 위치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올림픽과 대류간컵 등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네덜란드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단기전과 국제대회에도 익숙하다는 뜻.
네덜란드는 3월 2일 한국과 1라운드 첫 대결을 펼친다. 양상문 대표팀 수석코치는 "13년 전이지만 한국 물을 먹어봤기 때문에 한국야구에 대해 다른 감독들보다는 훨씬 많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뮬렌 감독의 존재는 네덜란드를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이유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