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환(31·삼성)은 한국시리즈(KS)와 인연이 없었다. 1년 늦게 삼성에 입단한 후배 오승환(30)은 다섯 번째 KS를 치른다. 이미 3개의 챔피언 반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윤성환은 지난해 처음으로 KS에 나섰다. 입단 첫해인 2004년에는 군 입대 문제로 KS에 나서지 못했다. 삼성이 우승을 차지한 2005년과 2006년에는 공익근무 중이었다. 2010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KS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정말 이럴 수도 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거를 떠올리던 윤성환은 "이제부터 매년 KS에 뛰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KS 1경기에서 3⅓이닝 1실점에 그쳤던 그가 올 가을에는 삼성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 1차전과 5차전에서 모두 선발승을 따내는 역투. "KS MVP(최우수선수)로 거론된다"는 말에 윤성환은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며 웃었다.
◇소년 윤성환의 꿈은 롯데 에이스
사실 윤성환의 꿈은 '롯데 에이스'였다. 1999년 10월 부산 사직구장. 부산상고(현 개성고) 3학년 투수 윤성환은 1루측 롯데 응원석에서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를 지켜봤다. 그에게 주형광(현 롯데 투수코치)은 '가장 멋진 사나이'였다. "주형광 선배처럼 롯데의 에이스가 되겠다"는 각오가 자랐다.
2000년 동의대에 진학한 그는 2004년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태어나고, 야구를 시작한 부산에서 프로 생활도 하고 싶었다. 롯데의 지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롯데는 1차 지명으로 부산고 좌완 장원준을 택했다.
오기가 생겼다. 윤성환은 "롯데에서 2차 2~3순위에 나를 지명할 생각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1차지명과 2차 1순위에서 뽑지 않은 것을 보고, 다른 팀에 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성환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한 쪽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2차 1순위에서 윤성환을 지목했다.
◇선동열의 첫 작품
대졸 신인 윤성환은 2003년 11월 팀 마무리 훈련에 합류했다. 스타급 투수들이 즐비했다. "전병호 코치님, 김현욱 코치님, (임)창용이 형…. 1군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윤성환은 데뷔 첫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었다.
당시 삼성 수석코치였던 선동열 KIA 감독은 "공에 힘이 있었다. 커브는 이미 완성형이었다. 잘 키우면 좋은 투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첫 시작이 불펜이긴 했지만 연차가 쌓이면 선발로 써야겠다는 장기적인 계획도 세웠다"고 회상했다. 2004년 신인 윤성환은 4승7패 1세이브 17홀드 평균책점 4.84를 기록하며 삼성 불펜의 핵심 역할을 해냈다. 그에게 '선의 첫 작품', '선동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두 번의 어깨 재활
2004년 정규시즌 종료 뒤 윤성환은 공익근무를 시작했다. 2007년 시즌 초 복귀를 꿈꿨지만 오른 어깨에 탈이 났다. "빨리 던지고 싶은 마음이 독이 되더라"는 게 윤성환의 회상이다.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은 윤성환을 복귀와 함께 선발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부상 이력을 보고 "한 해 더 불펜으로 뛰라"고 결정했다. 윤성환은 "몸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했다.
2008년 선발로 전환한 그는 2009년 14승으로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다. 에이스로 공인받기 시작하던 2010년 다시 어깨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또 6개월의 재활기에 돌입했다. 두 번의 재활. 윤성환은 늘 "다치지 않는 게 최고의 목표"라고 한다.
◇커브볼러? 직구도 자신!
윤성환은 '커브볼러'다. 2009년에는 커브 구사율이 30%였다. 최근에는 20% 내외로 떨어뜨렸다. 그의 생존전략. 윤성환은 "직구가 살아나지 않으면 커브도 맞는다"고 했다. 그는 '구속'보다 '회전력'에 집중했다. 윤성환은 "직구를 던질 때 공을 감싸쥐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찍어' 던진다. 회전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모 구단 전력분석원은 "타자들은 회전이 많은 직구를 볼 때 '호핑(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느낀다. 윤성환의 직구가 그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도 수준급으로 올라섰다. 윤성환은 "체인지업을 손가락 깊숙히 잡는다. 각이 조금 커졌다. 커브를 던질 타이밍에 체인지업을 던지면 타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더라. KS에서는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삼았다. 이제 커브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