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정(情), 일본인은 신의(信義), 중국 사람은 의리(義理)을 중시한다. 이 세 가지의 최대공약수 뭘까. 바로 빚·채무다. 물질적인 차원이든, 마음의 차원이든 간에 정도, 신의도, 의협도 빚을 바탕으로 생긴다.
‘정·신의·의리’의 있고 없고의 기준은 간단하다. 빚을 잘 갚으면 정도 있고 신의도 있고 의리도 있는 사람이요, 빚을 갚지 못하면 정도 없고 신의도 없고 의리도 없는 사람이 된다.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놈이 되고 만다.
우습지만 정작 정·신의·의리를 가장 강조하는 세계는 조폭세계다. 정·신의·의리가 전무(全無)하다시피한 세계에서 정을 찾고, 신의를 찾고, 의리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도 신의도 의리도 없기 때문에 주구장창 강조하는 것이다.
요즘 가장 큰 이슈는 소통이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스마트폰까지 등장, 트위터나 개인 SNS가 인기 있는 소통의 수단이 됐다. 그러나 현대인의 고립감은 더 커졌다고 한다. 소통의 창구는 늘었지만 역으로 소통할 대상은 줄어들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 리더가 됐다. 해방 후 남쪽에서 가장 영어를 잘 하는 사람 중 하나는 이승만 박사였다. 이 박사의 영어는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할 정도였다.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대화도 영어로 이루어졌다. 이승만 박사는 미국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소련 군사학교 출신인 김일성은 중국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덕분에 스탈린과 모택동의 회담에도 통역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언어를 구사했다. 당시 러시아어나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소련의 군사문화까지 완전히 체득한 사람은 드물었다. 어쩌면 소련과의 소통이 다른 공산주의 지도자들보다 앞섰던 김일성이 북한의 수장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만약 당시 한국의 명운을 쥐고 있던 국가가 중국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영어나 러시아어를 잘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테다. 아마 중국어를 잘 했던 인사 중 남으로는 김구 선생, 북으로는 무정 장군이 북의 수장이 될 가능성이 높았을지 모른다.
나 역시 영혼의 세계와 지금까지 잘 소통해왔기에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영혼의 세계도 시시각각 소통을 담당하는 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그때마다 의사전달의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만의 방법을 고집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더 이상 영계의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최근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한국의 소통이 꽉 막혀있음을 느낀다. 노동자·정치인·금융계 등 사회 전체에 소통이 적체돼 영계에 앙금이 꽉 차있다. 영계의 영가들은 오히려 소통 창구가 많아져서 소통이 오염됐다며 한스러워했다. 편지 한 통을 며칠 동안 기다리던 그 시대를 그리워했다.
SNS를 통해 소통의 창구는 폭발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적체되고 오염됐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말로 진 ‘말빚’부터 갚는 것이다. 정·신의·의리의 최대공약수가 ‘빚’이듯 소통의 문제도 ‘말빚’이 발단이 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시대는 지났다. 순간의 말실수가 천만 냥의 빚을 만들 수 있다. 소통의 시대,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선 작은 말빚부터 갚아나가야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