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마공원에 거세게 부는 여풍(女風)의 맨 앞에는 이신영 조교사가 서있다. 이 조교사는 지난 21일 10경주(1800m)에서 ‘홀리몰리(4·수말)’를 앞세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출발부터 선두로 치고 나온 뒤 질주해 1분 53.9초으로 기록으로 국산마 신기록을 세웠다. 홀리몰리는 강력한 우승후보 ‘캐피털송’ ‘카카메가’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해 경마 관계자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켰다. 이 경주로 홀리몰리는 쌍승식 배당 54.5의 대박을 터트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 경마 사상 최초로 여자 조교사가 특별경주 우승컵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조교사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신영 조교사, 자율 관리로 돌풍
지난해 7월 데뷔한 이 조교사는 2011년 8승에 이어 이번 시즌 9승째를 거두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15전 5승, 2위 1회, 복승률 40%라는 기록으로 월간 최다승 조교사에 오르기도 했으며 26일 현재 쟁쟁한 남자 조교사를 제치고 당당히 시즌 다승랭킹 10위에 올라 있다.마사회 관계자는 “이신영 조교사의 마방은 신예마가 늘어나고, 기존 경주마들의 능력이 안정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조교사의 성공 사례에 경마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이 조교사는 기수시절 큰 경주에 출전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지난 2004년 ‘고려방’과 함께 출전한 대통령배대회에서는 국내 여자 기수로는 유일하게 대상경주 3위에 올랐으며, 같은해 그랑프리대회에 출전해 5위의 성적을 거뒀다. 데뷔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는 이 조교사는 자율 관리를 마방 관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는 평소 경험 많은 기수·조교보에게는 별다른 지시 없이 맡겨 둔다. 잔소리보다는 적절한 비유와 솔선수범으로 마방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조교사 특유의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경주로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이 조교사는 30대 초반으로 앞으로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경마계의 관심은 더욱 높다.
무서운 신예 김혜선·이아나 기수
기수 중에서는 김혜선·이아나 기수가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우먼파워’를 발산하고 있다. 김혜선 기수는 올 시즌 7전 2승, 2위 1회, 복승률 40%의 빼어난 성적을 보였다. 특히 지난 15일에 ‘첩경’과 팀을 이룬 10경주에서는 2위마와 간발의 차이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슬아슬한 경주만큼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있는 경주였다. 애초 첩경은 예상 순위권에서 하위로 점쳐졌으나, 김 기수의 뛰어난 기승술 덕분에 ‘깜짝 우승’한 것이다. 이로인해 쌍승식 67.8 배라는 매력적인 배당이 기록됐다.
김혜선 기수는 키 150㎝에 불과하다. 그래서 별명도 ‘슈퍼땅콩’이다. 그러나 경주로에서 야무진 기승술과 승부사 기질은 ‘서울경마공원 내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김 기수는 데뷔 3년차인 2011년 통산 40승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올 시즌 149전 9승 2위 11회 복승률 13.4%를 기록하며 2009년 데뷔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달리고 있다.
신예 이아나 기수의 상승세도 무섭다. 이 기수는 지난 15일 1경주에 ‘아이러브유’에 기승해 선행 일순으로 9마신 차로 들어왔다. 이어 6경주에서는 ‘천승’을 타고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 끝에 우승을 일궜다. 이로써 이 기수는 데뷔 8개월 만에 10승을 달성했다. 마사회의 한 관계자는 “탁월한 기량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꼭 주목해야 할 유망주”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경마공원에서 여성 조교사·기수의 활약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시각이다. 경주로에서 힘으로만 경주를 이끌었던 경마 트렌드가 테크닉과 디테일이 필요한 고도화 단계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한 경마 관계자는 “여성 조교사와 기수들의 섬세한 면이 경주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어 여풍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