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열광하는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 어렵지 않게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삼각관계가 등장한다는 것. 그것이 마치 사랑이야기의 공식이라도 되는 양, 주인공인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어김없이 제 3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극의 흥미진진한 요소가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왜, 우리는 삼각관계의 사랑에 열광하는 걸까?
그 이유는 과거 유아기에 겪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처음 명명한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그는 운명의 장난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있는 욕구와 갈등을 설명했다.
삼각관계의 원형은 아이와 엄마, 아빠 사이의 관계에 있다. 성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4~5세의 나이에 그들의 욕망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이성의 부모를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기인하여 딸은 아버지를 놓고 어머니와 연적이 되고, 아들은 어머니를 놓고 어머니와 연적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아빠(엄마)와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삼각관계 속 경쟁구도를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욕망의 대상을 부모가 아닌 제 3의 인물로 대치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파악하고 결핍되지 않은 부모의 사랑 안에서 안정된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완벽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욕망의 흔적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오이디푸스 갈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재현하고 극복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도 사랑해선 안될 남동생의 연인을 사랑한 ‘양명군’이란 가상의 인물이 있기에 더욱 많은 이들의 몰입과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것이 금기된 근친상간적 욕구와 삼각관계 경쟁의 구도에서 승자이고 싶은 숨겨진 우리의 욕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아기 시절 오이디푸스 갈등을 제대로 풀지 못한 사람들이다. 혹자는 오이디푸스 갈등도 우리가 겪은 사랑의 일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유아기 시절 무의식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경험한 이들은 현실과 가상 구분없이 삼각관계 안에서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의 연인 또는 기혼자와의 사랑처럼 금기시된 관계에만 빠지는 것이다.
스스로 위험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면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 어떨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아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로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교류를 방해하기도 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정한 사랑과 타인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한 자아실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