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끈끈이'는 내가 완구에 손대어 거둔 첫 대박 상품이다. 1985년 무렵 시중에서 끈끈이 장난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83년 완구 자동판매기 부품 제조를 계기로 완구와 인연을 맺은 나는 끈끈이 장난감을 눈여겨 보았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끈끈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끈적한 자국이 남아 주부들이 청소하는데 애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인데 독성이 있다는 뉴스가 터져나왔다. 끈끈이는 '불량 제품'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독성 강한 PVC가루에 파리잡이 끈끈이 성분을 혼합했기 때문이다.
내가 영세업자에 불과했던 시절로 (주)손오공이 설립되기 한참 전이었다. 나는 독성이 없는, 인체 무해한 끈끈이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내 '연구실'은 조그만 책상 하나 들어가고 세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사글셋방 부엌. 연탄불에 재료를 녹이느라 손등에 숱한 화상을 입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혼합하다 과열로 불 붙은 재료가 운동화에 떨어져 구멍이 난적도 있었다. 인체 반응 검사도 필요했다. '마루타'는 바로 나였다.
한 번은 냄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독한 냄새가 퍼지는 바람에 온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주인집 며느리가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주인집 할머니는 '젊은이가 뭘 해보려고 그러는 것이니 봐주라'며 며느리를 달랬다. 수차례 실험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크레이톤이라는 재질을 찾게 되었다. 거기에 에스테르검을 혼합해 독성이 없고 자국이 안 남는 끈끈이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문제점을 완전히 보완한 상품이었다. 내가 '유레카!'를 외치는데 8개월이 걸렸다.
끈끈이는 시장에서 독보적 상품이 됐다. 나는 문어와 거미에 이어 도깨비손·악어·묵사발 시리즈까지 만들어냈다. 진짜 대박은 악어였다.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물이 재료에 떨어졌는데 제품성형 할 때 열에 의해서 공기 구멍이 생겨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악어 입부터 악어 뱃속까지 구멍이 나도록 만들었다. 악어 입에 대고 숨을 불어넣으면 악어가 복어 배처럼 빵빵해졌다.
그 상태에서 고무줄처럼 당겨 옭아매면 바람이 빠지지 않았다. 악어가 꼬리와 입을 흔들면서 복어 풍선처럼 유리에 붙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배꼽을 빼고 웃었다. 악어 색깔은 노랑·파랑·빨강·초록 4색이었다. 묵사발은 야구공과 축구공을 반으로 쪼갠 모양이었다. 그걸 던지면 찰진 찹쌀떡처럼 유리에 촥 펼쳐져 붙었다. 느릿느릿 꿈틀거리다가 원형으로 다시 쫄아들면서 떨어졌다. 여자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100~200원 짜리를 팔아 순수익 30억원을 올렸다면 믿겠는가. 아침에 눈 뜨면 통장에 뭉칫돈이 들어왔다. 가난 속에 살아온 내겐 두려울 정도였다. 그렇게도 처절했던 가난을 벗어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당시 모두들 '코흘리게를 상대로 한 장사'라며 완구를 시시하게 보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으면 시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끈끈이는 내게 완구시장이 블루오션임을 일깨운 효자였다.
◆최신규 대표는?
대한민국 완구와 문화콘텐트의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주)손오공의 대표다. 그는 전세계 1조원 매출을 올린 팽이 '탑블레이드', 국산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 온라인 게임과 노래방을 결합한 '슈퍼스타K 온라인', 고급 한복 인형 '연지' 등 수많은 히트 상품을 기획·제작한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3학년의 학력으로 굴지의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