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프로그램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가 오픈 두 달을 넘기며 장안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여러 애매한 기준에 대한 통쾌한 해답을 더욱 통쾌한 화법으로 내려주고 있는 것이 인기의 비결. 1회에서 선보인 지하철 자리양보 기준이나 아줌마에 대한 규명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긴 하지만, 애정남의 주력 콘텐트는 아무래도 남녀간의 기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연애의 보류기간이나 연인간 챙겨야 할 기념일부터 시작해 이성 직장동료에 대한 태도,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행각, 지난주에 방영된 애인집착에 대한 보고서까지 남녀간 관계만큼 애매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듯 애정남에서 해결해온 남녀간 애매한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앞으로 애정남이 풀어주어야 할 애매한 남녀간의 숙제는 더욱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것이 프로그램을 보는 많은 이들의 중론인데, 남녀간의 문제에는 왜 이토록 애매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을까?
해답은 연인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연애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을 정리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상대 이성이 이상한 건지를 알려달라는 것으로, 나 혹은 상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원하는 셈이다.
연인이라는 관계는 여러 명이 얽혀 있는 기업이나 가족 혹은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른 관계와 달리 너와 나라는 두 명의 주체가 1대 1로 만들어가는 관계이기 때문에 애매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관계된 주체가 많은 조직의 관계인 경우 기본적으로 지위에 따른 권력과 역할의 배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해 해법을 찾기가 오히려 쉬운 측면이 있다. 아울러 여러 조직원이 있다보니 중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1대 1로 만난 연인의 관계에서는 애초부터 관계에서 특정한 권한을 정한다거나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녀간의 애매한 문제들은 어떻게 기준을 세워 풀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애초부터 애매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니 그냥 애매한 채로 때로는 손해를 보며 때로는 손해를 강요하며 살아가는 하는 것일까? 해답은 자신이 가진 기준이 제일 정확한 기준이라는 명제에서 찾기를 바란다. 흔히 우리는 연인에 대한 평가 혹은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인들을 동원하게 된다.
새로 사귀는 연인을 친구들에게 선보이고 좋은 평가를 내심 기대해 보기도 하고, 사소한 것부터 극심한 갈등을 겪는 문제들까지 주변 사람들의 아주 객관적인(?) 중재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그들의 대답은 전혀 객관적인지도 않고 그들 스스로의 가치관과 경험에서 나오는 또 다른 제 3의 시각일 뿐이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주변인들이 정말 객관적인 태도와 시선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는 그저 남들의 것일 뿐. 내가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에 다른 연인들이나 사람들이 아랑곳이나 하며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룰이 있듯이 나와 내 연인간에는 ‘우리’만의 규칙과 규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연인이라는 1대 1 관계의 목적은 그저 두 사람이 아주 특별한 느낌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둘의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놓고 본다면 둘 사이의 애매한 문제, 예를 들면 어디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옳은가, 생일선물 비용은 얼마가 적당할까, 첫 키스는 언제가 적당할까 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남이 아닌 자신 그리고 나의 연인에서 찾을 수 있다.
애정남에서 내려주는 해답을 백번이고 되씹어본다고 해서 우리 연인간의 기준에 대한 해법은 결코 나올 수 없다. 그 시간에 나의 연인을 나의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규정하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특장점은 무엇인지 탐구한다면 분명 우리만의 명쾌한 기준이 세워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과정에서 ‘대화’가 필수이다. 일상적인 ‘밥 먹을까’류의 이야기나 밤 세워 먹고 노는 술자리 말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대화’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