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리비아 前 국가원수’ 카다피, 고향 시르테서 생포
리비아를 42년간 통치했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69)가 20일 오후 사망했다.
압델 마지드 믈레그타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 고위관계자는 이 날 로이터통신을 통해 "카다피가 고향 시르트 근처에서 생포 당시 입은 부상이 악화하면서 숨졌다"고 밝혔다. 자유 리비아 TV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지도자가 이와 관련해 곧 대 국민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카다피는 이날 나토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과도정부군에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발각될 당시 혼자였으며, 카키색 복장에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구덩이에 숨어 있던 카다피는 생포 순간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다고 현장에 있던 과도정부군의 한 병사가 설명했다.
과도정부군은 이날 카다피의 최후 거점이었던 시르테를 완전히 장악했다. 과도정부군 측은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며 "도주하는 카다피군을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카다피군을 태운 차량 약 40대가 시르테 서쪽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카다피의 사망설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NTC 관리들은 아직 카다피가 살아있다고 전했다. 모하메드 리스는 AFP통신에 "그가 심하게 부상을 입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휘관 자말 부 셰하타는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카다피가 체포됐다"면서도 생사는 모른다고 답했다.
또한 나토군과 미국정부는 "카다피의 사망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며, 도주 차량을 공격한 것은 맞지만 그 차량에 카다피가 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한편 카다피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망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진 속 남자는 머리에 심한 총상을 입었으며,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예술 기자 meister1@joongang.co.kr
▶카다피는 누구
무아마르 카다피는 올 2월 리비아 민주화 시위로 위기를 맞기 전까지 정치인이자 군인으로서 42년 동안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1969년 육군대위로 복무 중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몰아내고 다음해 리비아의 총리 겸 국방장관, 동시에 국가원수 겸 국가평의회 의장 권좌에 올랐다.1977년 사회주의·이슬람주의·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한 그는 '인민 직접민주주의'라는 독특한 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의회제와 헌법을 폐지, 독재권력을 강화했다.
통치 기간 중 반미 무장단체 지원과 테러로 서방국가와 줄곧 대립각을 세웠다. 리비아는 1986년 4월 독일 서베를린 미군 출입 나이트클럽에 폭탄테러를 감행했다. 이에 미군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국가원수 관저를 폭격, 카다피가 입양한 딸 한나(당시 4세)를 숨지게 했다. 카다피는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는 등 서방과 화해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서방 아랍국가를 비난하며 외교 마찰을 빚어왔다.
2009년 6월 8일 가봉의 오마르 봉고가 사망함으로써 현존하는 국가 지도자(왕족 제외) 중에서 최장기 집권자가 됐다. 리비아 지역이 1551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 이래로(당시 트리폴리) 리비아의 최장기 국가 지도자이다. 2009년 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아프리카 연합 의장을 지냈다.
올초 시작된 아랍 민주화 시위의 영향을 받아 리비아에서도 2월부터 카다피 정권에 대항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8월 22일 자유 리비아군이 트리폴리에 진입해 그의 아들 둘을 생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