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깁슨.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를 상징하는 대투수다. 불같은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서 ‘K’를 산처럼 쌓아올렸다. 17시즌을 뛰며 기록한 탈삼진 숫자는 3,117개. 전설적인 대투수 월터 존슨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3,000탈삼진을 돌파했다. 또한, 월드시리즈에서 7연승(2패)을 거두는 등 큰 경기에 강한 투사였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일하는 사람들’(men at work)에서 밥 깁슨의 말을 빌려서 ‘야구란 실패의 스포츠’라고 정의했다.
은퇴하고 나서 오클라호마에서 목장을 경영하던 깁슨이 팁 오닐 하원의장의 초대로 오찬모임에 참석했을 때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야구란 실패의 스포츠다. 최고라는 타자도 대략 65%는 실패한다. 오늘 이 자리에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투수가 두 명(밥 깁슨 자신과 왼손 투수 최다승을 올린 워렌 스판) 있다. 어느 쪽이든 패전 수도 한 팀의 한 시즌 경기 수보다 더 많다.”
깁슨은 통산 251승을 올리며 174패를 당했다. 스판도 363승 245패를 기록했으며 511승을 거둔 사이 영도 316경기는 패전의 멍에를 썼다. 투수는 5할 이상의 승률이라도 기록하지만 타자는 3할만 쳐도 리그 최고의 타자가 된다. ‘타격의 신’ 테드 윌리엄스의 통산 타율은 0.344다. 베이브 루스와 타이 콥의 장점을 합친 가장 완벽한 타자도 65%는 실패했다.
둥근 공을 둥근 배트로 치는 만큼 실패의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70%의 실패가 아닌 30%의 성공에 주목하는 유일한 종목이 야구라고 해도 틀림없다.
지난 2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두산 간의 경기는 대주자 김준호가 지배했다. 한화는 5-7로 뒤진 9회 말 맞이한 2사 1, 2루에서 이대수가 좌익수 옆으로 빠져나가는 2루타를 날렸다. 2루 주자 장성호는 물론이고 1루 주자 김준호도 홈을 밟기에 충분했다. 극적인 동점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순간 3루를 돌아 홈 플레이트를 향하던 김준호가 ‘꽈당’ 넘어진 것이다. 김준호는 다시 일어나서 달렸지만 이미 공은 두산 포수 용덕한의 미트에 들어간 뒤였다. 극적인 동점은 일어나지 않고 6-7 한 점 차 아쉬운 패배로 끝났다.
김준호는 지난 5월까지 LG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지난해 퓨처스 북부리그에서 타율 0.335를 기록하는 등 1군 못지않은 타격 재능을 나타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수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느 LG 관계자는 “지난해 작은 이병규가 있었다면 올해는 김준호”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 시즌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하며 자유계약으로 풀렸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한화의 부름을 받고 재활에 힘써 지난 9월 17일 1군 로스터에 등록됐다.
2군에 방출의 설움을 모두 다 경험한 그가 개그콘서트의 김준호가 된 것은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다. 충분히 몸을 푸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 프로의 세계는 항상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실력이 떨어져서 실책을 범하거나 범타로 물러나거나 하는 실패는 어쩔 수 없다. 에러를 하지 않은 수비수도 없고 매 타석 안타를 치는 타자도 없다. 하지만 준비 부족이 낳은 실수는 다르다. 조금만 주의해도 일어나지 않을 실수를 범한 것은 ‘프로’답지 않다. 엄한 질책을 받을 만했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도 얻는 게 적지 않다. 실패했더라도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 혹은 교훈을 얻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이 터무니없는 실수라고 해도.
일본 프로야구의 명지도자인 노무라 가쓰야 감독은 “실패라고 쓰고 성장이라고 읽는다”고 말했다. 김준호가 어이없는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성장해서 또 한 명의 믿고 쓰는 LG표 선수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야구라> 손윤 (http://yagoo.tistory.com/)
* 위 기사는 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제공한 것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야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