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프리미어리거 박주영(26·아스널)이 일으킨 골 폭풍이 늦여름밤의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다.
한국축구대표팀의 '킬러 컨텐츠' 박주영이 부활의 노래를 불렀다. 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첫 경기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득점 본능을 한껏 과시했다. 박주영의 맹활약을 앞세운 한국은 각각 두 골과 한 골을 기록한 지동원(20·선덜랜드)과 김정우(29·상주)의 추가 득점을 합쳐 스코어를 6-0으로 벌렸다.
득점 후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그라운드를 활보하는 박주영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설움은 씻은 듯 날아갔고, 기쁨과 희망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긴장감 넘치는 3차예선의 첫 단추를 손쉽게 꿴 조광래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3만7000여 축구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됐다.
◇전반 7분 포문을 열다
박주영의 선제 결승포는 킥오프 휘슬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전반 7분에 나왔다. 홍철(22·성남)이 왼쪽 측면을 파고든 후 올려준 볼을 정면에서 번개같이 뛰어들며 마무리했다. 수비수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발이 아닌 정강이에 볼이 닿았지만, 공은 빨랫줄 같이 뻗어나간 뒤 골네트를 흔들었다.
정확지 못한 마무리가 아쉬웠던지 전반 46분에는 머리로 한 골을 추가했다. 왼쪽 측면 코너킥 상황에서 미드필더 기성용(22·셀틱)이 올려준 볼을 타점 높은 헤딩슈팅으로 마무리했다. 3-0으로 앞서 있던 후반 22분에는 상대 위험지역 내 오른쪽 지역에서 오른발 대각선 슈팅으로 또 한 번 골맛을 봤다. 화려한 원맨쇼의 완성이었다. 레바논을 상대로 한국축구의 매운 맛을 선보인 박주영은 후반 24분 동료 공격수 이근호(26·감바 오사카)와 교체돼 환호 속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롤러코스터를 탄 8월
박주영에게 지난 8월 한 달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혼란스러웠다. 깊은 내리막과 가파른 언덕이 숨가쁘게 교차했다. 시련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2부리그로 강등된 전 소속팀 AS모나코(프랑스)를 떠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쉽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적료와 연봉, 병역 문제 등이 뒤엉키며 박주영의 발목을 잡았다. 그 와중에 출전한 원정 한일전(8월10일·0-3패)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훈련이 부족했던 탓에 제 컨디션을 내지 못했고, 후반 13분께 교체아웃돼 치욕적인 완패를 벤치에서 지켜봤다. 주장 겸 주포로서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반전의 계기는 8월의 끝자락에 찾아왔다. 유럽이적시장 종료 직전 릴OSC(프랑스)과의 이적협상을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영국행 비행기에 오르더니 이내 낭보를 전해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포병대의 유니폼을 입은 것. 공격진의 개편을 위해 믿을 만한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던 아스널과 오매불망 빅리그행을 꿈꾸던 박주영이 공유결합한 결과였다.
◇해트트릭은 컨디션 회복 기폭제
9월과 함께 찾아온 레바논전은 그래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시련을 딛고 한국인 9호 프리미어리거로 거듭난 박주영이 제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기대감과 함께했던 일말의 불안감은 일찌감치 터진 첫 골과 함께 씻은 듯 사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골이 이어지면서 우려는 환호와 함성으로 바뀌었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박주영뿐만 아니라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도전장을 낸 한국축구에도 선물과 같은 90분이었다.
고양=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