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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병정’ 더크 노비츠키, 17년간 기다린 우승컵
어린 시절 핸드볼과 테니스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그는 키가 너무 커 ‘괴짜’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농구였다. 15살 때 그의 농구재능을 눈여겨본 독일 농구대표 선수 출신의 홀저 게슈와인더(65)가 그의 농구 코치를 보겠다고 자청했다.
게슈와인더는 노비츠키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은 농구에 필요없다면서 슛과 패스 연습만 시켰다. 하루는 게슈와인더가 그의 천재적인 농구실력에 감탄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더크, 이제 너가 결심할 때가 됐다.독일에서 동네 최고가 될 것인지, 아니면 밖에 나가 세계 최고가 되고 싶은지. 만약 너가 독일 최고가 되고 싶다면 오늘 당장 연습을 중단해도 된다. 이미 너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너가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쟁하고 싶다면 앞으로 매일 함께 연습해야 된다.”
이 때까지 독일 밖에서 농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노비츠키는 이틀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다음 날 코치에게 대답했다.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고 싶습니다.”게슈와인더는 이후 노비츠키가 독일 DJK 워츠버그 프로선수들과 매주 7일 동안 함께 훈련할 수 있게 해줬다.
노비츠키는 불과 16살에 DJK 팀에 합류했다. 루키 때 그는 농구에 전력을 쏟은 나머지 학교 성적이 형편없어 퇴학위기에 몰리는 등 공부와 농구를 병행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1997년에 그는 NBA 스타들 사이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이키가 주최한 ‘농구 영웅 투어’에서 독일 대표로 출전해 찰스 바클리와 스카티 피펜 등 전설들이 버틴 미국팀과 친선경기서 폭발적인 활약을 펼친 것. 노비츠키는 당시 바클리를 상대로 덩크를 터트리는 등 압도적인 경기를 펼쳐 바클리로 하여금 “이 아이는 천재다.
만약 그가 NBA에 가고 싶다면 나한테 전화하면 된다.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라는 칭찬을 하게 만들었다. 1998년 3월, 노비츠키는 나이키가 주최한 또 다른 농구 대회서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33득점 14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했다. 놀라운 스피드, 볼 핸들링, 그리고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그의 놀라운 슛터치에 NBA 스카우트들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는 1년 동안의 군생활을 마친 뒤 1998년 NBA 드래프트에 나갔다. 그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팀은 보스턴과 댈러스. 보스턴 감독이었던 릭 피티노는 그를 래리 버드급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체 10번 지명권을 쥔 보스턴은 제발 앞에서 그를 가로채지 않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댈러스가 선수쳤다. 전체 9번으로 밀워키에 지명된 노비츠키를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다.
그러나 그의 미국 데뷔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그는 민첩하고 파워 넘치는 NBA 선수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울러 팬들의 기대에 상응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노비츠키를 짓눌렀다. 특히 상대 선수들에게 번번이 수비가 뚫려 ‘어크 노비츠키(Irk Nowitzki)’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붙었다. ‘D(Defense: 수비)'가 없다는 비아냥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노비츠키는 독일 귀국을 고민할 정도였다.
노비츠키는 닷컴 억만장자 마크 큐반이 2000년 댈러스 구단을 사들이면서 선수로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관계기사 3면> 그는 “큐반은 아낌없이 팀에 투자했다. 최고의 구장과 시설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우리는 나가서 이기기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우승을 향한 여정은 생각보다 길었다. 2006년에 팀을 NBA 파이널에 진출시켜 원정서 2연승을 거뒀음에도 이후 4연패로 몰락했다. 이듬해에는 넘버 1시드를 받아 8번시드 골든스테이트에 탈락되는 망신을 당했다. 탈락 뒤 정규시즌 MVP를 들어올려 더욱 치욕적이었다. 이후 댈러스는 포스트시즌서 거듭 미끄러졌고, ‘큰 경기에 약하다’는 비판이 노비츠키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올 시즌 들어서도 서부 3번시드를 잡았지만 댈러스가 우승할 것이라고 전망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1회전부터 탈락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댈러스는 껄끄런 상대 포틀랜드를 격침시킨 뒤 백투백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마저 싹쓸이승으로 완파했다. 오클라호마시티도 댈러스의 노련함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NBA 파이널 역시 대다수 농구 관계자들은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가 버틴 마이애미 히트의 우세를 점쳤으나 댈러스는 ‘4쿼터의 사나이’로 돌변한 노비츠키의 활약에 힘입어 정상에 등극했다. NBA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관중석에서 묵묵히 그의 활약을 지켜보던 게슈와인더는 파이널 6차전에서 노비츠키의 승리를 지켜본 뒤 끝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17년이 걸렸다”면서.
로스앤젤레스=원용석 중앙일보USA 기자 [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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