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윤기원이 자살했다. 그리고 24일 프로축구 승부조작 혐의로 브로커가 구속되더니 연이어 현역 K-리거 5명이 구속됐다. 급기야 30일에는 전 K-리거 정종관이 호텔에서 목을 매 숨졌다. 얼마나 더 희생자가 나와야 하나. 이제 또 다른 피해자는 막아야 한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수사당국과 한국축구의 운영주체들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①연맹과 구단, 수사에 더 협조하라프로 축구의 승부 조작 사실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K-리그가 더 떨어질 곳은 없다. 이 기회를 맞아 모든 걸 털고 가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6일 16개 구단 긴급회의를 통해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각 구단은 승부조작 의혹에 대한 구단 내부조사를 다시 한다"고 덧붙였다.
협조하겠다는 게 말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각 구단들은 지난 해 이미 내부조사를 통해 불법베팅 또는 승부조작 현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죄질이 나쁜 선수들은 시즌 말 퇴출됐다. 일부 선수들은 팀을 옮겼다. 이미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의혹 차원의 정보도 모두 수사당국에 제출해 수사를 도와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다.
일이 더 커질까 걱정한다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프로연맹은 '리그 중단은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K-리그에 퍼져 있는 암세포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리그 중단도 불사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팬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다.
②수사기관은 초동대응을 제대로 하라경찰과 검찰은 승부 조작이 얼마나 엄중하고 무서운 범죄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매우 의심스럽다. 그들의 안이한 대응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승부조작 세력은 뛰고 있는데 검찰은 걷고 있는 모습이다.
윤기원의 사망 사건 후 축구계에서는 승부 조작과 조폭이 연루됐다는 루머가 파다했다. 그러나 경찰은 여자 친구와 결별을 주요한 사인으로 꼽으며 시간을 낭비했다. 경찰은 한참이 지난 후 전화 내역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초동 대응 실패다. 만약 윤기원의 사망 배후에 조폭 등 불법적인 세력이 있었다고 해도 증거를 인멸하고 남을 시간적 여유를 줬다.
경찰의 소극적 대응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족의 요청으로 뒤늦게 노트북 컴퓨터 자료 복원과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정밀 분석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누구와 주로 통화를 했고, 왜 했는지 파헤칠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실낱같은 단서만 나오더라도 이를 토대로 정확한 죽음의 원인을 파헤쳐주길 유족들은 원하고 있다.
검찰의 행보도 그리 빠르진 않다. 창원지검은 광주 FC 골키퍼 성 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도 그가 받은 1억원의 행방을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30일 숨진 정종관도 25일 체포 영장이 발부됐지만 닷새째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를 좀 더 빨리 체포했다면, 그의 죽음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창원지검은 광주와 대전 FC의 승부조작 혐의를 수사 중이다. 하지만 대전과 광주가 다른 프로축구 구단에 비해 특별히 덜 도덕적인 구단이 아니다. 이미 거의 모든 구단에 승부 조작의 유혹이 뻗쳤다는 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창원지검 차원을 넘어 전국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③축구협회도 정신차려라한국 축구의 근간을 흔드는 승부조작 사태가 벌어졌다. 과연 한국축구의 운영을 책임지는 대한축구협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 K-리그를 대상으로 벌어진 일이라서 축구협회와는 상관이 없단 말인가. 축구협회가 승부조작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이 사태와 관련해 아직 축구협회의 책임 있는 사과나 대책 마련을 위한 고민을 한 흔적이 없다. 검찰이 축구계 승부조작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는 게 밝혀진 25일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파주 대표팀 훈련센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프로연맹은 검찰이 수사를 한다는 것을 며칠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가 이미 예정된 행사라는 이유로 축구대회를 강행했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을 비롯해 축구협회 고위인사들이 모두 참가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리고는 '프로연맹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고받은 뒤 차후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짧은 논평만 남겼다.
축구협회는 3년전 K-3(3부리그)에서 중국의 승부조작 브로커가 개입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솜방방이 처벌로 일관했다. 일부 연루선수들을 영구제명시켰지만, 또 다른 의혹이 일었던 팀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당시 축구협회가 더 적극적으로 수사해 일벌백계했더라면 이번 사태를 막았을 지도 모른다.
현재 아마추어 팀 선수들의 불법베팅 실태가 심각하다. 프로선수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 선수들 중에도 용돈벌이를 위해 점점 불법 베팅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 생기고 있다. 승부 조작 문제는 조광래 감독과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힘겨루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다. 협회는 집행부가 총사퇴한다는 각오로 이 일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④내부고발이 또 다른 희생을 막는다승부조작이란 독버섯은 팀 내부에서 자랐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안이한 생각은 독버섯을 키운 키운 양분이 됐다. 구단과 코칭스태프는 내부조사를 통해 승부조작과 불법베팅 사실을 적발하고도 '봐줄 테니 다른 팀을 알아보라'는 식으로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 결국 독버섯은 장소만 바꿔서 무럭무럭 자랐다. '한 번 걸려도 별 문제 없다'는 인식까지 심어줬다.
코칭스태프는 이런 사실을 파악하면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하라. 범죄를 숨겨주는 것도 범죄다. 내부 고발은 동료를 저버리는 게 아니다. 또 다른 희생을 막고 궁극적으로 동료와 축구를 살리는 방법이다. 죄 값을 치르는 게 죽는 것보다 낫다. 승부조작을 방조하는 지도자가 승부조작 문제를 키운 커다란 원인 중 하나다. 자성을 촉구한다. 구단은 승부 조작을 눈감아준 지도자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안익수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승부조작은 프로시장에서 악이다. 그로 인해 팬이 줄고 스폰서가 떨어져 나간다. 결국 피해는 선수에게 돌아간다"며 "선수들이 (브로커의) 접촉 대상 1순위다. 수사기관에서 색출하는 건 한계가 있다. 내부 조발을 통해서라도 악을 색출해 축구계를 정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단호한 인식이 다른 구단, 다른 지도자에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