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51) 서울 삼성 신임 단장은 현역 시절 포지션을 묻자 '후보'라고 했다. 다시 물어도 그의 대답은 같았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선수였던 내가 농구단을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영광스럽다"고 감격해 했다. 삼성은 18일 조승연 단장 후임으로 그를 임명했다.
이성훈 단장은 신일고와 연세대를 거쳐 1983년부터 실업 농구 삼성전자에서 뛰었다. 김남기 오리온스 전 감독이 고등학교·대학교, 고(故) 김현준 코치가 대학교·실업 동기다. 190㎝인 그는 키 빼곤 눈에 띄는 게 많지 않았다. “신동찬의 뒤를 네가 이어보자”는 김동원 연세대 감독의 권유로 가드로 전향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단장은 "포지션을 잘못 선택해 단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던 1990년 유니폼을 벗었다. 부상이 있었던 건 아니냐고 하자 “난 농구 선수로 쓸모가 없었다”고 했다.
이성훈 단장은 당장 유학을 결심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샐러리맨은 내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를 눈여겨본 이인표 당시 삼성 단장이 “사회를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설득해 남게 됐다. 그는 곧바로 삼성 여자농구단 총무로 일하며 회삿일을 병행했다. 프로농구 출범 뒤인 1998년부턴 삼성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는 농구 선수로 타고난 재능은 부족했다. 하지만 성실성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 성실성은 프런트가 된 뒤 빛을 발했다. 삼성은 그가 사무국장으로 재직한 13년간 단 한 번을 빼곤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우승과 준우승도 각각 두 차례씩 했다. 그는 “열심히 한 만큼 성과는 안 나왔다. 앞으론 책무가 더 막중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성훈 단장은 40여 년 전 농구를 시작한 뒤 세 가지 꿈을 꿨다.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 지도자로 거듭나는 것, 농구단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앞의 두 가지는 무산됐지만 세 번째 꿈은 이뤘다. 그는 "주량이 소주 1병인데 뒷수습이 안 돼 큰일"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