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시조 주몽도 명마를 가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말의 이름은 역사에 전해지고 있지 않다.
주몽의 말 관련 이야기에는 두 가지다.
유화부인이 낳은 주몽은 부여 금와왕의 배다른 형제들과 갈등을 겪으며 천대를 받고 자랐다. 주몽은 다른 왕자들과 달리 금와왕의 명으로 마구간 청소를 맡았다. 주몽은 많은 말들 중에 한마리 명마를 알아보고는 일부러 굶겼다. 어느날 마구간으로 찾아온 금와왕에게 주몽은 그 말을 달라고 청했다. 볼품없는 말의 모습에 왕이 허락했고 주몽은 다시 이 말을 잘 먹였다. 이후 말은 털의 윤기와 체형, 스피드가 어느 말과도 견줄 수 없는 명마가 됐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동명왕편'에서 '구삼국사'를 인용 주몽이 명마를 얻는 과정에서 유화부인이 깊이 개입했다고 적고 있다.
금와왕이 주몽을 시험하기 위해 말을 기르게 하자 주몽은 어머니인 유화부인에게 “내가 천제의 손으로 남의 목마(牧馬)를 하니 살아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 남쪽 땅에 내려가 따로 나라를 세우고 싶지만 어머니가 계셔서 제 마음대로 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마음속의 한을 털어놓았다.
유화부인은 “나 역시 밤낮 통한하고 있다. 들으니 먼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준마를 타고 가라고 했으니 내가 능히 말을 택하겠다”고 말하고 마구간에 가서 긴 채찍을 휘둘렀다. 놀란 말들이 모두 달아나는데 그 중 한 적토마(赤土馬)가 한 굽에 두 장(460cm 또는 606cm로 한나라 시대 척은 23cm이고 현재 척은 30.3cm)의 너비씩 뛰어 달아났다. 주몽은 그 말의 뛰어남을 알고 말의 혀뿌리에 바늘을 박아 두었다. 말은 혀가 아파서 여물을 먹지 못하면서 살이빠지는 등 볼품 없는 말로 변했다. 왕이 마구간을 찾아 말들의 살찐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한 후 그 수척한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은 그 말의 혀뿌리에 박았던 바늘을 빼버리고 다시 잘 먹여 명마로 만들었다.
이후 부여왕실의 사냥이 있었다. 부여의 왕자들은 주몽에게는 화살을 적게 주었다. 주몽이 그들보다 활을 잘 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주몽은 말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말 타고 활을 쏘는 기사(騎射)에 능했다. 주몽이 왕으로부터 받은 말은 주인이 활을 쏘기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속도를 조절하는 등 주인과 한 몸으로 호흡했다. 주몽은 누구보다도 많은 짐승을 잡았다. 주몽은 명마를 얻은 후 부여에서 탈출했고 고구려를 세웠다.
주몽이 얻은 말 품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주몽은 기원전 58년부터 19년 까지 생존했다. 시기상으로 주몽의 말은 한혈마 계통일 가능성이 있다. 장건이 한혈마를 도입한 시기인 기원전 100년 이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