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나 코미디 등 장르 편중이 심한 충무로에서 노년의 사랑을 다룬 작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추창민 감독, 이하 '그대사')가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7일 개봉한 '그대사'는 개봉 6주차를 맞이한 25일까지 누적관객 110만3435명을 동원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전체 흥행순위 5위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현빈·탕웨이의 '만추', 할리우드 인기 애니메이션 '라푼젤' '메가 마인드' 등을 앞질렀다.
순수 제작비 10억원 내외의 저예산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돼 있는 계층인 노인들의 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이순재·윤소정·김수미·송재호 등 주연배우 4명의 평균 연령이 69세다. 일반적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캐스팅이다. 이순재는 7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타이틀롤을 맡아 관객을 끌어들이는 티켓파워를 발휘했다. 웬만한 톱스타 남자배우들이 부럽지 않았다.
흥행의 요인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강풀 화백의 원작과 이를 스크린에 안성맞춤으로 옮긴 추창민 감독의 세공력, 그리고 주연배우들의 혼이 담긴 연기로 분석된다.
최근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화됐으나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강풀은 이번 작품의 흥행에 대해 어느때보다 반가운 심경을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또 이순재는 영화 속에서 고집 세고 욕 잘하는 우유 배달원 김만석을 맡아 송이쁜 할머니(윤소정)를 상대로한 그윽한 러브 스토리를 이끌었다. 장군봉 부부(송재호·김수미)의 사랑과 절망도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저예산이지만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초기에 투자 유치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로맨스 그레이'를 다룬 영화에 선뜻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없을 것은 뻔했다. 그러나 영화의 힘이 기적을 만들었다. 처음엔 PPL(간접광고)마저 주저했던 한 우유업체는 나중에는 오픈세트까지 지원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래서 지난 24일 서울의 한 호프집에서 진행된 조촐한 자축 파티는 매우 의미 깊었다. 이순재·김수미 등 주연배우들과 추창민 감독, 투자·배급사들은 모처럼만에 환하게 웃으며 기적같은 영화에 박수를 보냈다.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