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祭祀)는 관(冠)·혼(婚)·상(喪)·제(祭)라 하여 예부터 사람의 일생에서 중히 여긴 예식의 하나로서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고 복을 비는 의식을 뜻한다. 흔히 제사라고 하면 왕실에서 종묘사직에 지내는 제사나 일반 가정에서 조상님들께 지내는 제사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온갖 신령스러운 유무형의 대상에 제물을 바쳤고 말의 신들에게도 제사를 지냈다.
▲말의 신도 하나가 아니다.
말의 조상신인 마조(馬組), 최초로 말을 사육했다는 선목(先牧), 처음으로 말을 탔다는 마사(馬社), 그리고 말에게 재해를 일으킨다는 신(神)인 마보(馬步)가 그것이다. 과거 좋은 말은 나라를 지키는 근간이었다. 또 교통·통신·농업 등 여러 방면에 사용되는 귀중한 국가 자원이었기에 말의 안녕과 국가의 평안을 위해 이들에게 기원하는 의식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국가에서 관장한 마조제
우선 제사는 크게 나라에서 지내는 것과 가정에서 지내는 것으로 나눌 수있는데 국가 제사 가운데 마조제에 대한 기록이 고려시대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마조는 하늘의 28별자리 중 방성(房星)에 해당하며 수레와 가마를 주관한다고 믿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제75권 정조조(正組條)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마조제 날짜를 금년부터 중춘(中春;봄이 한창일 때로 음력 2월 무렵) 중기이후의 강일로 택하고 축문은 오례의(五禮儀)에 실려 있는 것을 쓰도록 명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왕실이 그 예법까지 세심하게 챙길 만큼 마조제가 중요한 제사였다는 점, 그리고 말의 번식과 농경 등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추어 제사를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음력 10월 말의 날, 말 기르는 집집마다 팥시루떡을 일반 백성들도 말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나라의 말 키우는 것을 업으로 했던 사람들이나 집에서 키우는 말 한 마리가 유일한 재산 밑천이었던 일반인들 모두 말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왕실에서 지내는 마조제와 같이 제단을 쌓고 성대하게 제물을 진설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음력 10월 말의 날이 되면 이들도 마구간 앞에 팥시루떡을 바치고 말의 건강을 기원했다고 한다. 팥의 붉은 색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말의 무병을 기원하였던 소박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의 신에게도 제사를
최근에도 자동차나 건물을 구입했을 때, 혹은 사업을 시작할 때 돼지머리 올린 상을 차려 놓고 고사(告祀)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행위 역시 마조제와 같이 주관하는 신에게 액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와 달라고 비는 제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마조제나 자동차를 사서 고사를 지내는 것이 단순한 미신으로 비쳐질 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대상을 사용하기에 앞서 겸허한 마음가짐을 준비했던 옛사람들의 지혜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분명하다.
▲말의 명절
오늘날에도 한국마사회 마방이나 승마장·목장 등에서 개별적으로 고사를 지내는 경우는 있지만 음력 시월에 맞이하는 첫 말의 날, 마구간에 팥시루떡을 바치던 옛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 간혹 특정기관이나 단체에서 마조제를 재현했다는 뉴스를 볼 수 있을 뿐, 민간이 행하고 기리던 시월 말의 날 제사는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마조제처럼 국가에서 주관하고'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서에 기록되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