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돌아서면 깜빡깜빡, 건망증도 심하면 병
가정 주부 정모(45)씨는 최근 냉장고 속에 휴대 전화를 넣고 문을 닫았다. 또 지갑과 열쇠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가 하면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이상한 일들을 겪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혹시 치매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경도인지장애. 병적인 신경세포의 손상이 치매에 이를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 정상 노화와 알츠하이머병(치매)의 중간 단계쯤 되는 상태였다.
●기억장애, 노화 과정 아닌 병
경도인지장애의 주요 증상은 기억력 장애다. 일상 생활을 하기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라 흔히 ‘건망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건망증보다 더 발전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건망증은 30세 이후부터 일시적으로 나타난 기억력 감퇴가 점차 빈발해지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건망증이 심해지면 치매에 걸릴까. 그렇지는 않다. 건망증과 치매는 별개다. 모든 치매 환자는 초기에 건망증을 보인다. 하지만 건망증인 사람 중 소수만 경도인지장애를 거쳐 언젠가는 치매에 걸리게 된다.
기억력 장애는 옛날 일들은 아주 잘 기억하는데 반하여 최근의 일들을 잊어 버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초기에는 사소한 일들을 잊게 되며, 차츰 빈도가 잦아지다 때로는 중요한 일을 잊기도 한다. 최근 미국의 메이요 클리닉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경도인지장애 환자 270명을 10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매년 10~15%가 치매로 진전되었다. 6년 동안 무려 80%가 진행됐다.
윤수진 을지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제까지 노화에 의한 자연스런 현상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기억장애의 많은 부분이 피할 수 없는 노화의 과정이 아니라 병적 현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식 치료법 없으나, 웃음이 명약
경도인지장애는 아직 공인된 치료법은 없다. 다만 정상 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쯤이라 뇌세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진행을 늦추기 위한 치매 약물 치료가 효과적일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가 치매로 발전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을 즐겁게 사는 게 중요하다. 웃음이 넘치면 뇌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어서다. 친구나 가족과 돈독한 유대를 맺고, 종교 활동이나 사교 모임, 온라인 게임 등을 즐기며, 재미있는 일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최고 명약이다.
요즘 노인층뿐 아니라 젊은층에서도 PC나 전자수첩 휴대폰 등의 전자기억장치에 의존하다보니 간단한 전화번호를 깜빡 한다. 전자기기를 잃어버리면 생활이 마비되는 ‘디지털 건망증’까지 나타난다. 서국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젋어서부터 디지털 장치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가급적 많이 암기하고 독서 바둑 등 두뇌운동에 좋은 취미를 갖는 것도 기억 장애를 늦추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명기 기자 [mk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