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말을 가축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이미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함께 생활해 온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문화와 말 속에 차곡차곡 쌓여왔다.
옛 격언에 이렇게 '말(馬)'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과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낸 까닭도 있지만 사람과 비교될 만큼 영특하고 귀한 존재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말 한 마리의 가치가 노비 두세 명과 비슷했다고 하니 자식 같이 애지중지했을 법도 하다. 이처럼 극진한 사랑은 말을 다른 가축보다 귀한 존재로 격상시키고 사람에 비유한 속담까지 만들어 냈다.
가축 세계의 지존 말은 기능과 가치가 가축 가운데 으뜸이었으므로 속담에서도 '뛰어나다' '귀하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됐다. '말 신을 소에게 신긴다'가 대표적인 예다. '개발에 편자'와 비슷한 의미로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나 격에 맞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말 갈 데 소 간다'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열심히 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개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뜻한다. '말고기로는 떼 살아도 소고기로는 떼 못 산다'는 소화 잘되는 말고기와 속을 거북하게 하는 소고기를 비교해 말고기가 식용으로 더 좋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 '마방(馬房)이 망하려면 당나귀만 들어온다'는 말은 사업이 안 되려니 무익한 자들만 찾아온다는 뜻이다. 유용한 가축이던 개·소·당나귀마저 말과 비교당하는 순간, 초라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조선시대 신분제도만큼이나 엄격했던 가축 세계의 위계질서를 실감할 수 있다.
망아지는 제주로, 자식은 서울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망아지는 제주로, 자식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교육 시설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생겨난 말이다. 자녀의 유학은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겨운 일이었지만 교육열이 남달리 강했던 우리 민족은 큰 인물로 키우려면 그에 맞는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 말을 되새겼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굳이 바다 건너 먼 제주에서 말을 키우고 배로 실어 날랐을까. 이는 뼈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고려를 짓밟은 몽고인들이 일본과 남송 정벌을 준비하면서 지친 말을 쉬게 하거나 갈아 타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제주에 중간기지로 대규모 목장을 건설하고, 몽고에서 많은 씨수말을 들여와 육성하기 시작했다. '망아지는 제주로'라는 속담에는 우리의 뼈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천고마비, '오랑캐의 침입을 경계하라'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말도 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에는 가을을 지칭하며 '하늘이 맑고 모든 것이 풍성한 때'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전혀 다른 뜻이었다. 당나라 시인 두심언의 시에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구절이 있는데, '가을이 되면 북방의 흉노족이 겨울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자주 쳐들어오니 항상 전쟁에 대비하라'는 경계의 의미였다.
귀한 말(言)을 품은 오래된 말(馬) '말은 달려 봐야 알고, 사람은 친해 봐야 안다'는 말처럼 대인관계에서 기억해 두면 좋을 속담도 있다. '무는 말이 있으면, 차는 말도 있다'는 속담은 어느 곳에 가나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의미로, 사람 각각의 개성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 사이에 존중과 칭찬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말도 용마(龍馬)라면 좋아하고, 소도 대우(大牛)라면 좋아한다'나 나쁜 사람에게는 특별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사나운 말에게 무거운 길마 지운다'와 같은 훈계적 내용의 속담도 있다. 귀한 말(馬)을 품은 오래된 말(言)들이 앞으로도 오래 사랑받고 회자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