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없다는 ‘무욕(無慾)’과 재물을 탐내는 마음을 뜻하는 ‘물욕(物慾)’은 글자로는 겨우 ‘ㄹ’ 받침 하나가 다르지만 깊은 곳에 함축된 가치의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LA 다저스에서 세 번째 자유계약선수(FA)가 된 박찬호(35)가 12월이 가기 전에 필라델피아와 1년간 250만 달러 연봉 보장에 선발 경쟁 기회를 주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은 오랜 기간 그를 취재한 경험에 비춰볼 때 뜻밖이었다.
2008 메이저리그 선수 평균 연봉이 293만 달러임을 고려하면 통산 117승 투수인 박찬호에게 선발 대접을 제대로 해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간 역시 2년 이상을 욕심내지 않은 것도 주위의 예상을 뛰어 넘은 것이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자신의 현재 위상을 정확히 인식하고 더 큰 목표에 도전하기 위해 욕심을 내지 않았다.
첫 FA 자격을 얻은 2001 시즌 후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를 내세워 텍사스와 5년간 6500만 달러 장기 계약에 성공했을 때 박찬호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톰 힉스 구단주가 내준 자가용 제트기를 이용해 LA에서 텍사스 댈러스로 이동해 계약 발표와 기자 회견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샌디에이고 이적에 이어 2006 시즌 뒤 다시 FA가 됐을 때 현실은 냉정했다. 결국 스캇 보라스를 해고하고 제프 보리스로 에이전트를 교체하는 과정을 거쳐 뉴욕 메츠와 계약에 성공했으나 마이너리그 생활로 이어졌다. 이번에 보여준 박찬호의 무욕(無慾)은 그가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고 이를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스캇 보라스는 지난 해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뉴욕 양키스의 계약을 중도 해지시킨 후 장기 재계약 혹은 이적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다. 그 와중에 로드리게스가 보라스를 배제시킨 채 직접 협상에 나서 2017년까지 10년간 총액 2억 7500만 달러에 계약해 버려 망신을 당했다. 선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물욕(物慾)’을 부린 대가였다.
그러나 보라스는 변하지 않았다. 올해도 1루수 마크 테셰이라를 놓고 보스턴의 8년간 1억 7500만 달러, LA 에인절스의 1억 6000만 달러를 거부해 보스턴의 존 헨리, 에인절스의 아트 모레노 구단주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결국 24일 뉴욕 양키스와 8년 간 1억 8000만 달러 계약을 성사시켜 가까스로 체면치레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