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피플] 70세 임채호씨 마라톤 풀코스만 250회
달리기 중독증으로 기네스북 세계판에 오르기에 손색이 없다. 더구나 그의 나이가 우리 나이로 70세임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령 달리기 마니아'임에 틀림없다.
1939년생인 임채호 씨. 그의 일과는 달리기로 시작해 달리기로 끝난다.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상암경기장-하늘공원까지 10㎞를 뛰고, 해질 무렵 또 10㎞를 달린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 완주만 250회. 중앙·조선·동아·서울마라톤 등 메이저급 대회의 정식 풀코스는 50여 차례지만 그가 25년 가까이 매달 해온 임진각까지의 개인 풀코스를 합쳐 250회 풀코스 완주를 마쳤다. 정확히 250회를 채운 대회는 지난 7일 열린 철원 DMZ국제평화마라톤으로, 그는 4시간 50분대 기록으로 의미있는 레이스를 해냈다.
그의 마라톤 인생은 이른 나이에 느닷없이 찾아온 신경통에서 비롯됐다. 33년 전인 1975년. 무릎에 극심한 통증을 수반한 신경통이 찾아왔고 온갖 약을 다 써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동호인이 별로 없던 마라톤에 눈을 돌렸고, 재미를 들인 다음부터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각각 10㎞를 뛰는 '습관'이 들었다.
달리기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부터는 매달 한 번씩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임진각까지 통일로를 따라 뛰는 '개인 풀코스 도전'을 계속했고, 공식 마라톤 대회에도 나가 실력을 겨루곤 했다. 개인 최고 기록은 1980년대 초 경주벚꽃마라톤대회에 나가 세운 3시간 12분대이다.
그가 풀코스 도전을 거른 때는 약 3개월 뿐이다. 1996년 플코스 100회를 완주한 후 자신의 기사가 모 일간지에 실리자 향우회(경남 함양 유림면)에서 연락이 왔다. 자전거를 타고 향우회에 가 술 몇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성산대로 인근에서 트럭과 부딪쳐 왼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6개월 진단이 나왔지만 3개월 만에 깁스를 풀어버렸다. 깁스를 한 동안에도 목발을 짚고 하루 4㎞를 뛰었을 정도로 그는 지독한 달리기 중독증에 걸려 있다.
아직도 신경통은 그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뛰는 동안만은 그는 통증을 잊는다. 그가 뛰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통증을 잊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불안하다. 뛰는 것은 그에게 보약이자 생명선인 셈이다.
그가 달리기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암 가족력 때문이다. 부모님이 모두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고, 두 살 아래 동생도 위암으로 일찍 사망했다. 달리기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생각하는 그는 달리기를 그만 두면 곧 앓아누울 것 같단다.
현재 그의 마라톤 기량은 4시간 30분대 완주. 지금도 결승선에 들어오기까지 절대로 걷는 일이 없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을 거쳐 30년 전 남가좌동에서 세탁업으로 3남매를 훌륭히 키워낸 뒤 10년전 세탁소를 그만뒀다. 마라톤은 그 때부터 그의 유일한 직업이자 인생 그 자체다.
박수성 기자 [mercury@joongang.co.kr]
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