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세진(여·30)씨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절친한 친구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울 시내의 한 레지던스 호텔을 찾았다.
이제까지는 친구들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찾기 못해 술집 등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때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인해 머리가 아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방 시설을 갖춘 레지던스 호텔에서 친구들과 함께 과일 카나페, 유부초밥 등 간단한 요리를 직접 만들어 나눠 먹으며 편안한 시간을 갖고 다음날 아침 레지던스 호텔에서 패키지로 제공하는 브런치까지 함께 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 오순도순 도란도란 끼리끼리 모여서 놀 수 있는 ‘룸 문화’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고 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개방적인 고기집이나 술집 대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밤새 놀 수 있는 레지던스 호텔과 별도의 공간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룸이 있는 고급 카페와 고기집 등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레지던스 호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서울 도심을 위주로 약 22개에 이르는 레지던스 호텔이 생겨났다.
◇레지던스에서 놀아봐
국내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던 레지던스는 고급스러운 호텔의 시설과 콘도의 편리함을 동시에 갖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취사도구가 갖춰져 있어 콘도처럼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데다가 피트니스·스파·수영장 등 부대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전망 좋은 도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여의도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의 경우 조식과 5만원 식사권, 보디스크럽 등이 포함된 17평짜리 객실 1박 패키지가 30만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DC닷컴이나 호텔엔조이 등 레지던스를 할인 예약해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H 레지던스 호텔의 경우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주말에는 이미 예약이 끝나 방을 구할 수 없을 정도다. 레지던스 호텔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호텔에서 ‘파자마 파티’ 등을 즐기던 사람들도 레지던스로 이동하고 있다.
호텔의 경우 먹을 것을 싸 들고 가면 눈치를 볼 수 있지만, 레지던스에서는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런 추세에 따라 원래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을 위한 장기 임대에 주력한 레지던스들이 하루짜리 단기 임대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송년 파티 등으로 인해 디럭스룸 예약은 대부분 끝난 상황”이라고 밝혔다.
◇고급 카페와 고기집의 룸 문화
그런가 하면 개방적인 공간이 특징이인 카페와 고기집도 속속 ‘룸 문화’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는 고기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이 없다. 손님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모든 공간을 ‘룸’으로 섹션화했기 때문이다.
홍익대 앞에 위치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지베’는 푹신한 쿠션과 넓은 좌식 테이블이 있는 8개의 침대 방이 마련돼 있어 인기를 모으고 있다.
회사원 박정선(27)씨는 “요즘 친구들은 예전 모임을 했을 때처럼 ‘부어라 마셔라’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시끄러운 술집 등은 피하게 되는 것 같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함께할 수 있는 ‘룸’에서의 모임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