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리는 9시간이었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열린 5일(이하 한국시간) 과테말라시티에는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평창의 꿈이 또다시 무너진 현장의 모습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한국시각 4일 오후 11시(현지시각 4일 오전 8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과테말라시티 웨스틴 카미노 호텔 앞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렸다. 잘츠부르크 지지자 200여 명이 오스트리아 국기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콘서트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총회 열기가 아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오후 11시 반(오전 8시 반) 대표단 숙소인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평창 유치위원회의 투표 전 마지막 미디어 브리핑이 열렸다. 방재흥 사무총장은 기자들에게 "무사히 투표일을 맞을 수 있도록 협조해줘 고맙다"고 말한 뒤 그동안 꽁꽁 숨겨 놓았던 프리젠테이션(이하 PT) 내용을 마침내 공개했다. 주변에선 "평창의 PT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4일 자정(오전 9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개회 선언으로 제119차 IOC 총회가 드디어 막을 올렸다. 가장 먼저 PT에 나선 도시는 막판 무서운 공세로 평창을 긴장시켰던 러시아 소치. 그러나 전체적으로 특징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당초 공언했던 '깜짝 카드'도 공개하지 않았다. 한 올림픽 전문가는 "러시아식이었다. 아이디어도 없었다. 푸틴 대통령에게 너무 의존한다"고 혹평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승리의 여신은 평창 쪽에 있는 듯했다.
▲5일 오전 1시 45분(오전 10시 45분) 두 번째로 PT에 나선 잘츠부르크는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장점인 동계올림픽 개최 경험과 완벽한 경기장 시설·안전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MPC(메인 프레스 센터)의 전반적인 평가는 "소치보다는 낫다"였다.
▲오전 3시 15분(낮 12시 15분) 마침내 평창의 PT 차례. 다채로운 영상물을 곁들여 안정현 홍보대사부터 노무현 대통령·이건희 IOC 회장까지 8명의 프리젠터가 실수 없이 차분하고 호소력 있게 연설을 마쳤다. PT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최고였다"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평창의 승리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PT 직후 천둥과 함께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졌다. 보통 하루에 한번 저녁 무렵에 내리던 소나기가 좀 일찍 내렸다. 그것이 평창의 눈물을 암시하는 신호였을 줄이야.
▲오전 4시 10분(낮 1시 10분) PT 뒤 이어진 평창의 기자회견에서는 세 가지 질문이 나왔다. 모두 러시아 기자들이었다. "왜 양양공항을 두고 인천을 이용하느냐", "톰보는 삼성의 돈으로 매수한 것 아니냐", "2014년에 동계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동시에 치를 수 있느냐"는 등 까다로운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평창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은 "IOC 위원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고 흡족해 했다.
▲오전 4시 30분(낮 1시 30분) 점심 식사 시간. PT를 성공적으로 마친 평창은 큰 고비를 넘긴 표정들이었다. PT를 기획한 제일기획 직원이 식당에 나타나자 평창 관계자들은 "수고했다"며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IOC 위원들이 식사를 하며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느냐에 따라 대세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전 6시(오후 3시) 총회가 재개됐다. 도시별 기호 추첨에서 평창이 4번, 잘츠부르크가 3번, 소치가 5번으로 결정됐다. 오전 6시 33분 마침내 투표가 시작됐다. 전자 투표이므로 개표까지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2분 뒤 자크 로게 위원장이 잘츠부르크의 탈락을 발표했다. 다시 2분 뒤 평창과 소치를 대상으로 2차 투표가 열렸다. 평창 홍보팀의 한 직원은 차마 CCTV를 바라보지 못한 채 벽에 얼굴을 파묻었다. 6시 41분 투표 종료가 선언됐다. 3차 투표는 없고, 개최지가 이미 결정됐다는 뜻이었다.
▲오전 8시(오후 5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개최 도시 발표식이 시작됐다. 영상물 상영 등에 이어 로게 위원장의 연설이 끝나고 과테말라 소녀에 의해 개최 도시가 적힌 종이가 로게 위원장의 손에 건네졌다.
"2014년 동계 올림픽 개최 도시는…."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로게 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소치"였고 공개된 종이에 적인 단어는 'Sochi 2014'였다. 평창의 꿈이 또다시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과테말라=신화섭 기자 [myth@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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