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 힘도 좋고 기술도 좋은 데 맞잡기만 하면 자빠져버리니……." 1998년 태릉선수촌. 방대두 레슬링 대표팀 감독은 수수께끼 속을 헤맸다. 김인섭은 기술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체력 측정을 해보면 누구보다 힘도 좋았다. 그러나 실전에 나서서 맞잡기로 힘싸움을 하면 십중팔구 중심이 무너졌다.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는 파워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시간 속에 있었다. 김인섭은 최고치의 힘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0.06초.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동료는 0.05초였다. 불과 0.01초의 눈 깜짝할 새도 안되는 순식간이지만 기선을 제압당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눈으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차이였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연구원이 제시한 자료를 방대두 감독은 반신반의하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순간 스피드는 근력처럼 훈련으로 늘릴 수 없는 게 문제. 해법은 타고난 자질에 맞는 전술 개발로 모아졌다. '집요할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에게 선제공격을 걸어야 한다'는 진단이 떨어졌고 체육과학연구원은 지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대성공이었다. 김인섭은 이듬해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다. 2000시드니올림픽서는 준결승서 부상을 당하며 아깝게 은메달을 목에 걸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스포츠 과학과 지도 현장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주요 사례로 꼽힌다.
꿔다논 보릿자루, 이젠 역도계의 보배 장미란
순간 집중으로 자기 체중의 두 세배를 들어내야 하는 역도 훈련장은 기자들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금지 구역이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어도 치명적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역도를 맡은 문영진 체육과학연구원은 역도인의 차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역도장을 찾아다니며 선수들의 모습을 입체 촬영했다.
좌우 힘의 불균형, 무게 중심에서 벗어난 비효율적 힘의 사용 등이 1초에 100장 이상을 연속촬영하는 특수 카메라 필름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모습과 비교 검토하니 차이는 더욱 분명했다.
하지만 의견을 직접 코칭스태프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역도의 이응도 모르는 배나온 과학자가 이러쿵저러쿵하는 잔소리로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맘에 드는 신부감이 있으면 중신아비를 두는 것처럼 역도인 출신인 이광연 태릉선수촌 지도위원이 다리를 놓았다. 신랑과 신부는 의외로 속궁합이 좋았다. 단계를 밟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선수들의 자세를 교정해나갔다.
현장과 결합하자 비로소 연구도 빛을 발했다. 오승우 여자 대표팀 감독은 "각종 데이터를 보면 현장에서 찾지 못하는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한다"라며 문 연구원에게 찬사를 보냈다.
장미란이 세계 역도의 최강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되고 있다. 문 연구원은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앞에 두고 장미란의 발 각도가 비효율적임을 지적해 현재 코칭스태프와 함께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짜내고 있다.
각도 교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지금보다 20kg은 더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게 역학적 계산이다. 그 계산이 맞다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들어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골넣는 수비수 하키 장종현의 성장
2006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서 남자 하키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1명 모두 잘 했지만 일등공신은 15골을 터트리며 득점 1위에 오른 수비수 장종현이었다.
15골이 모두 페널티코너서 비롯됐다. 페널티코너는 80% 이상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축구의 페널티킥처럼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조성준 하키 감독은 "페널티코너를 35%만 성공하면 세계 정상의 팀이 될 수 있다. 장종현의 성공률은 40%를 상회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장종현이 어느 날 하늘의 계시를 받고 이룬 성과가 아니다. 송주호 체육과학연구원은 지난해 상반기 '페널티코너의 푸시 및 슈팅 동작의 기술향상 방안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누구보다 스포츠 과학의 연구 결과를 적극 수용하는 조 감독의 협조가 든든히 뒤를 받쳤다.
연구를 통해 장종현의 좌우 밸런스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이 때문에 슈팅 동작이 늦어진다는 게 밝혀졌다. 오른쪽보다 약한 왼쪽 무릎, 발목을 강화할 수 있는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이 제시됐고, 장종현이 흘린 땀방울은 그 전과 같은 양의 땀을 흘리면서도 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장종현은 "그 전에는 오른쪽 상단 구석으로만 슛을 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점을 해결한 뒤 좌우 상하 어느 쪽으로나 슈팅을 쏠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로 효과를 볼 줄은 정말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장종현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독일 분데스리가 뮌헨글라드바흐에 스카우트돼, 7일 프랑크푸르트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