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세월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으로 시작하는 이문세의 노래처럼 광화문은 변화가 적은 곳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들렀던 음식점들은 중고등학교 때 교보문고를 오가며 들렀을 때에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성인이 된 지금 역시 변치 않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은 지 족히 십 년은 넘어 보이는 허름한 외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골목은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청계천 공사를 하기 전까지는 매년 여름마다 물난리가 났다.
청계천 상류에 위치해있다 보니 장마철만 되면 물이 범람해 가게 안까지 물이 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는 식기들을 챙기고 물을 퍼내느라 장사할 틈도 없었단다.
가게 안은 좁고. 찾아오는 손님은 많다보니 평수도 더 넓히고 시설도 더 현대적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체인점을 내보자는 투자자도 많았고 비싼 가격에 가게를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도 많은 집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을 헛걸음시키거나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광화문 일대에서는 최소 10년은 넘어야 ‘오래된 맛집’축에 속할 수 있고 최소 5년은 넘게 찾아가야 비로소 ‘단골’ 소리를 듣게 된다. 이 오래된 맛집들은 대부분 골목 깊숙이 위치해 있다.
이 일대에서는 광화문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이 세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1994년 신라호텔 출신의 김신 셰프가 개점한 파스타 전문점 뽐모도르다.
근처 대사관 직원들이나 유학파 손님이 “이탈리아에서도 맛보기 힘든 정통 이탈리아 스파게티의 맛”이라 칭할 정도의 수준을 자랑한다. 마늘빵 역시 직접 만든 소스를 발라 구워내 마늘향이 진하고 적당히 촉촉하면서도 바삭바삭하다.
광화문집은 간판도. 규모도 작고 허름해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놓치면 후회할 만큼 맛으로 정평 난 김치찌개 집이다. 묵은지에 묵은지 국물을 부운 뒤 생목살을 넣고 초벌로 끓여낸 김치찌개를 각 테이블에서 한번 더 끓여 먹는데 적당히 시큼하고 얼큰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한다.
회전초밥 집 삼전 역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다. 메뉴는 연어·광어·참치뱃살·새우 등으로 고급 초밥은 없지만 대신 재료가 신선하고 회를 두툼하게 썰어 맛이 꽤 좋은 편이다.
실내는 열 명 정도가 들어서면 꽉 찰 만큼 좁은데 회전율을 빠르게 하려고 했기 때문인지 컨베이어벨트의 속도가 다른 곳에 비해 아주 빠르다. 뭘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이미 접시는 휙 지나가 버리니 재빨리 들어야만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다.
바다의 진미를 즐기려면 청정복집과 한라의 집이 제격이다. 청정복집은 활복만을 사용하는 복 요리 전문점이다. 이를 위해 롯데호텔 출신의 셰프가 매일 새벽 수산시장에 들러 신선한 재료를 직접 골라 온다. 한라의 집에서는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갈치회·고등어회·소라회·성게국·갈치국·자리물회 등 현지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제주토속 음식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신선도가 맛을 좌우하는 메뉴인 만큼 모든 재료는 매일 아침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공수해 온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나무와 벽돌로 가보자. 이름처럼 나무와 벽돌을 이용한 인테리어로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낼 뿐 아니라 2층에는 멋스러운 벽난로가 설치돼 있어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겨울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허름한 목조 인테리어가 멋스러운 향헌은 광화문을 찾는 사람들이 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 코스로 들르는 선술집이다. 1981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한 번도 개조하지 않아 가게 안은 낡을 대로 낡았지만 비걱대는 나무계단과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낙서 등이 오히려 정감 있게 느껴진다.
김지덕 프라이데이 기자 [shinykjd@joins.com]
THE PLACE 02-722-1300 광화문집 02-739-7737 한라의 집 02-737-7483 청정복집 02-734-0714 뽐모도로 02-722-4675 삼전 02-735-7348 나무와 벽돌 02-735-1160 향헌 02-738-8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