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성인 불법 도박 파문 속에서 한 성인오락실이 간판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안에서는 도박의 열풍에 빠져 있다.
“아빠가 카드 도박하십니다. 10년이 넘었고 엄마와 자식들도 많이 지쳐습니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때리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제가 큰딸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고등학교 3학년)
최근 ‘바다이야기’ 파문이 일며 사행성 도박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서울시 서초구 방배2동 단도박(斷賭博) 모임에는 이와 유사한 상담이 하루 20여 건 이상 들어오고 있다.
22일 오후 6시를 넘어서도 이곳에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카지노·경마·경륜·복권에다가 성인 오락실·성인 PC방이 주택가까지 파고들면서 이제 집만 나서면 도박의 유혹과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 돼 도박 상담은 더욱 늘어만 가고 있다.
도박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가족들의 외침은 거의 절규에 가깝다. 부산에 사는 강모씨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라는 말 한마디에 우연히 성인 오락실을 갔다가 인생이 확 꼬였다.
일주일에 2~3시간 정도 심심풀이 수준으로 시작한 것이 한 달이 지나자 급속도로 중독 상태로 빠져들었다. 강씨는 사업으로 모은 돈을 날렸음은 물론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경제적·인생적으로 파탄이 났다.
사글세 방 보증금까지 빼내 오락실을 찾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출근한다며 집을 나가 곧바로 오락실로 가 이제 중독이 됐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서울 40대 초반 가장). 퇴직금은 물론 전세 자금까지 다 날려 자살을 기도한 사람(인천의 한 50대) 등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도박의 덫에 걸려들었다가 상담한다는 것이 이곳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신을 지방 대학을 다니다 휴학했다고 소개한 한 학생은 “술해 취해 호기심에 성인 게임장에 갔다가 1000만원을 날렸다. 친구들한테 300만원까지 빌려 이젠 빚쟁이 신세가 됐다. 지금은 돈이 없어 가지 않지만 또 돈이 생기면 갈 것 같다”면서 “제발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호소했다.
이곳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성인 가운데 약 10%가 병적 도박 증세가 있다. 도박 중독의 폐해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파산·실직·이혼은 물론이고 자살률도 20%가 넘는다.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절도죄의 35%. 비폭력 범죄의 40%가 도박 탓이라는 보고가 있다는 것.
실명을 밝히길 꺼려 하며 ‘용산리’(용산에 사는 이씨라는 뜻)로 불러 달라고 부탁한 단도박 모임 사무장은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도박이란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며 “그러나 도박에서 헤어나오더라도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박 중독은 정신 질환이다”
신영철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
도박 중독은 의학 용어로는 병적 도박(pathological gambling disorder)이라 한다. 이는 충동 조절 장애의 일종이다. 그냥 병이 아니고 심각한 정신 질환의 일종이다. 술이나 마약과 마찬가지로 한 번 중독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도박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 신영철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쾌감을 느끼는 뇌의 회로가 잘못된 탓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사람들은 “가정이나 일도 안중에 없는 경우가 많고 오직 도박 생각과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도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1984년 시작된 한국 단도박 친목 모임(www.dandobak.co.kr·02-521-2141)에서 상담을 통해 치료받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이 모임은 도박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그 고통으로부터 회복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려움을 나누고 힘을 얻는 협심자들의 자발적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