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는. 이수호의 닉네임이다. 와인 바 ‘탱고 레슨’에서. 인터넷 동호회나 사이버 카페에서도. 이수호는 다다라는 이름을 쓴다. 다른 바텐더들은 제이슨. 줄리엣. 이런 영어식 닉네임을 가지고 있지만 이수호는 다다다. 다다를 영어식 닉네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틀린 것일 수도 있다.
미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그를 다다라고 불렀다. 물론 나비넥타이를 맨 이수호의 하얀 바텐더 유니폼에는 ‘다다’라는 아크릴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손님들이 곧바로 ‘다다!’. 이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닉네임을 부르려면 그래도 여러 번 바에 드나들고 바텐더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주고받은 뒤에야 가능하다. 그러나 미리는 곧 바로 ‘다다!’ 이렇게 그를 불렀다.
“다다. 그게 무슨 뜻이야?”
가방 끈이 긴 먹물들은 “다다이즘의 그 다다?”라며 아는 체를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 뜻도 없다. 우선 받침 없는 것이 좋다. 다. 다. 모두 다. 혹은 가장 일상적인 종결어미 ‘다’를 이어붙임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려는 생각도 있다. 낮에 나가서 일하는 쿠폰 회사에서만 그는 이대리 혹은 이수호 대리일 뿐. 회사를 벗어나면 모두 다다라고 부른다. 닉네임 다다가 호적 이름 이수호보다 훨씬 친근하다. 어느 때는 자신의 실제 이름이 낯설기까지 한 것이다.
“다다. 빨리 해줘”
미리의 입에서 ‘빨리’라는 단어가 흘러나온 적은 거의 없다. 아무리 급해도 그녀는 뛰지 않는다. 지난 주 유채꽃 보러 간다고 제주도 여행갈 때도 비행기를 놓쳤다. 김포 공항 주차장에서 2층까지 뛰기만 했어도 탈 수 있는 비행기를 걷다가 놓친 것이다. 더구나 약속장소에 늦게 나온 사람은 미리였다. 공항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 13분전. 그런데도 미리는 뛰지 않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 20분 전까지 도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약했을 경우 10분 전까지 도착하면 탈 수도 있다. 그런데 미리는 뛰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급하게. 그리고 거칠게. 그의 옷을 벗기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모두 96번의 섹스를 했다. 그런 것을 다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겠지만. 있다. 미리의 다이어리 앞부분에 있는 월간 계획표 날짜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날은 그들이 섹스 한 날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16개월 전. 이수호가 와인 바에 취직하기 두 달 전이었고. 사이버 카페 ‘황금박쥐’에서 첫 채팅을 한 뒤 일주일 지나서였다. 그들은 처음 만난 날 섹스를 했다.
‘다다. 넌 천 개의 혀를 가졌어’
미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다. 정말 이수호의 혀는 천 개의 혓바닥으로 갈라져 섹스를 할 때마다 미리의 온 몸에 불을 질러 놓았다. 쓰나미가 지나가고 난 뒤 허탈하게 쓰러진 이재민처럼 미리의 몸속에는 1 그램의 욕망도. 1 칼로리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집에 들어올 때 이수호는 지쳐 있었다. 미리가 그를 껴안고 혀를 집어넣을 때도 섹스 할 기분이 아니었다. 최효주 아나운서는. 론 강의 가파른 경사면에서 계단식으로 재배되는 꼬뚜뒤론 지역 레드 와인 중에서도 가장 짙은 빛깔의 꼬뜨로띠를 엎질러 놓은 것처럼 피를 흘렸다. 칼에 찔려 죽은 시체를 목격하고 경찰과 기자들에게 몇 시간동안 시달리고 온 뒤. 여자친구와 섹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미리의 입에서 “빨리 해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역시 섹스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바지를 벗기려는 미리의 손을 저지하고 자신의 손으로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몸에 남아 있는 나머지 옷도 순식간에 벗어버렸다. 미리 역시 이수호가 옷을 벗는 그 순간 자신의 옷을 다 벗어버렸다. 그들은 알몸으로 마주섰다. 이제 겨우 새벽 2시 30분.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4시간이 조금 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