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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기자의 리얼 리뷰] ‘타워’, 재난영화의 전형성을 '돌직구' 휴머니즘으로 극복한 역작
2012년도 다 저물고 있습니다. '우~와'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 '2012'의 유통기간도 끝나가네요. 더구나 2012년 12월 21일에는 마야문명에서 비롯했다고 하는 지구종말론까지 겹쳐 온세상이 한바탕 홍역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21일 다행히 지구엔 아무 일도 없었으니 이젠 안도하는 마음으로 재난영화(Disater Movies) 하나쯤 즐기며 연말연시를 마무리해도 되겠네요.돈이 엄청 들어가는 재난영화 제작에 불리했던 한국영화시장에 다시 한번 대형 재난영화가 나왔습니다. '화려한 휴가'(07) '7광구'(11)를 연출했던 김지훈 감독이 순수 제작비만 100억원 이상을 쏟아부어 만든 '타워'(타워픽쳐스 제작)입니다.2009년 한국 최초의 재난영화를 표방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던 '해운대'이후 두번째인데요. '해운대'가 자연재해인 쓰나미를 소재로 했다면 '타워'는 인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108층 초고층 빌딩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이죠.국내에서 재난영화는 여전히 '하이 리스크' 장르입니다. 돈 많이 들죠… 그런데 관객의 눈높이는 할리우드 수천억원짜리 재난 블록버스터 때문에 매우 높죠.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기 때문에 자칫 뻔하다고 욕먹을 수 있죠. 한마디로 도박같은 베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수 제작비 100억원만 건질려고 해도 적어도 3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아야 하니까요.하지만 김지훈 감독과 이수남 타워픽쳐스 대표는 또 한번 과감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전작 '7광구'의 흥행이 기대를 밑돌아 손실이 적지 않았는데 두 분의 표현에 따르면 "관객을 향한 겸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타워'를 탄생시켰습니다.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재난영화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로 내러티브에 관련된 것이지만 몇 가지만 지적해볼까요? 첫째, 재난 전의 불길한 전조현상이 꼭 있습니다. '해운대'에서 김박사가 해저의 수상한 지각변동을 진작에 감지했던 장면 기억나시죠? 또 수많은 게들이 해변 제방을 가로질러갔던 장면도 있고요. 여기도 그런 게 있습니다. 화재의 원인인 헬리콥터 폭발 사고 전의 이상 기류, 주방에서 발생한 소규모 화재, 그리고 얼어붙은 스프링쿨러 배관 등등… 관객들에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준비하시고… 이제 불 납니다"둘째, 재난이 본격화하면서 정부가 개입하지만 이들은 늘 제대로 해결을 못합니다. 기껏 한다는 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거나 잘 하고 있는 사람들 훼방만 놓죠. 부도덕한 모습들도 이어지는데요. 여기서도 소방방재청장이 나서서 진두지휘하지만 진짜로 헌신하는 소방대원들의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 정말 화가 나는데… 이건 없어서는 안될 영화적 갈등에 해당하겠죠.셋째, 위기에 빠진 사람들 사이엔 꼭 필요 이상으로 나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혼자만 살려고 아우성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하죠. 여기서도 빌딩 중식당의 지배인 등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주인공 말 잘 듣고 그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장르의 공식에 역시 충실해요.넷째, 이같은 위기상황에서 인간관계가 회복됩니다. 금이 갔던 가족간의 사랑이 봉합되고, 대립했던 동료애가 복구됩니다. 빌딩 불길 속에 남겨진 어린 딸과 짝사랑 그녀(손예진)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위험을 무릅쓰는 빌딩 관리인(김상경), 아내 생일에 축하 케이크 한번 제대로 선물하지 못한 채 구조작업에 나서는 소방대장(설경구), 소방대장을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대원들(김인권·도지한)이 그들입니다. 다섯째, 재난을 해결하는 사람은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이고 때론 이들의 소중한 희생이 밑거름이 된다는 공식도 그대로입니다. 소방대장과 소방대원들의 투철한 사명감이나 평범한 시민의 활약도 어김없이 담겨있습니다.그럼, 이 영화 뻔한 영화 되는 건가요? 글쎄요, 그 정도로 깎아내릴 건 아닌 것 같아요. 분명히 재난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들에게서 일부 보이는 과잉 액션도 살짝 눈에 거슬립니다.하지만 할리우드 못지 않은 스펙터클로 관객을 시종일관 몰아붙이는 힘이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솟은 초고층 빌딩의 위용, 그 빌딩을 휘감은 어마어마한 불길, 끊임없이 닥치고 지나가는 건물 붕괴의 위협과 사람들의 탈출 의지 등이 실감나게 표현됐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할리우드 그것에 비해 손색이 없어 보이고요. 배우들의 액션이 리얼하고 진지합니다. 설경구나 김상경, 손예진을 보면서 울컥하는 마음도 순간순간 있네요.'해운대'부터 보였던 한국형 재난영화의 특징도 드러납니다. 한 명의 히어로가 아니라 공동체적 협동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점, 등장인물간 관계가 좀더 농도 깊은 점 등이 엿보여요.그리고 두 가지 장면은 비주얼적으로 신선함을 주기도 하는데요. 쌍둥이 빌딩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거나, 건물 밖 곤도라를 이용한 아슬아슬한 탈출 장면은 흔히 볼 수 없었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옵니다.재난영화하면 떠오르는 세계적 걸작들이 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96) '타이타닉'(97) '딥 임팩트'(98) '투모로우'(04)… 엄청난 스케일과 압도적인 비주얼로 영화팬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입니다.이젠 한국영화도 이 자리에 끼어들어야 되겠죠. '해운대'에 이어 '타워'가 미래 한국재난영화의 초석이 되길 기원합니다.전형적인 스토리는 죽어도 싫다는 분들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운대' 개봉 3년 후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으면 보세요. 설경구·김상경·손예진·김인권·안성기 등 초호화 캐스팅의 면면과 액션이 궁금하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25일부터입니다. 12세 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 타워픽쳐스 제공*IS 시네마 지수▲작품성 ★★☆▲흥행성 ★★★☆
2012.12.24 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