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말레이시아 바투동굴, 이슬람의 나라에 왜 힌두 사원이 인기지?
동남아시아 중심에 자리한 말레이시아는 주변 국가에 비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1970~80년대 축구팬들에게 익숙한 '메르데카컵 국제 축구대회' 개최국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는 국가다. 현지인들로부터 '신이 내린 재상'이라 불리는 마하티르 수상이 재임 당시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선언했던 '비젼 2020'에 맞춰 정치·경제·산업·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발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코타키나발루를 비롯해 랑카위·레당·띠오만 등 세계적 휴양지가 베일을 벗으며 우리에게도 가까운 여행지로 다가오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이 수도 콸라룸푸르이다. 이 도시의 상징은 10년 전 당시 세계 최고 건물이었던 88층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이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또한 멋진 스카이라인과 맞물려 동서양의 문화가 어울리면서 깨끗하게 정돈된 풍경은 단숨에 말레이시아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콸라룸푸르 최고 명소 바투동굴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60%)·중국계(30%), 그리고 인도계와 원주민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중국계는 19세기 주석을 캐기 위해 중국 본토에서 건너왔고, 인도계는 비슷한 시기 영국이 야자나무 농장에서 일할 일꾼으로 투입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콸라룸푸르는 오히려 중국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밀림이었던 이 지역에 주석을 캐기 위해 몰려들었던 중국인들이 마을을 형성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콸라룸푸르는 도시 역사가 150여년에 불과하지만 볼거리가 적지않다. 대표적으로 인도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이 있는 바투동굴이 꼽힌다. 바투동굴은 콸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약 13㎞ 떨어진 작은 산에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주류를 이루는 국가의 심장부에서 힌두사원이 가장 인기있는 관광코스란 점이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우선 종교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높고, 바투동굴만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1891년 인도에서 건너온 힌두교도들이 사원을 세운 바투동굴은 이후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 열리는 타이푸삼으로 인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타이푸삼은 타이(Thai)와 푸삼(pusam)의 합성어. 타이는 힌두교도의 신성한 달인 1월 15일에서 2월15일까지, 푸삼은 보름달이 뜨는 날을 가리킨다. 3일 동안 진행되는 타이푸삼의 절정은 달이 가장 높이 뜨는 날 고행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의식이다. 침·꼬챙이·갈쿠리 등을 이용해 신체 각 부위를 찌른 후 행진하는데 이처럼 힘겨운 고행 속에서도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욱 특이한 점은 최대 수십개의 꼬챙이를 꽂았음에도 피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굴 입구에는 3년 전 세워진 50m 높이의 거대한 금빛 조형물이 버티고 있다. 힌두교 시바파의 최고신 시바의 둘째 아들로 힘·전쟁·파괴를 관장하는 무루가이다. 하지만 파괴 등과 같은 공포스러운 이미지와 딜리 표정 만큼은 더없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무루가를 지나면 동굴로 오르는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왼쪽부터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한다. 또한 계단은 모두 272개로 각 계단마다 1부터 272까지 숫자가 새겨져 있다. 힌두교 교리에 따르면 272는 인간이 태어나 지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의 숫자이다. 과거의 계단은 지었던 죄에 대한 용서를 빌고, 현재·미래의 계단을 통해 앞으로 지을 수 있는 죄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동굴 입구에 이른다. 자비스러운 얼굴의 시바상을 지나면 광장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천장까지 높이가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석회암 동굴이다. 아래로 쭉쭉 늘어진 종유석은 메말라 단순한 돌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아쉽다. 대신 곳곳에 세워진 힌두신의 형상과 힌두 신화를 그린 벽화가 화려한 장식처럼 늘어서 있다. 동굴광장을 지나 계단을 다시 오르면 또다른 동굴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천장이 뻥 뚫려 있어 하늘에서 광선이 바로 내려온다. 역시 힌두교와 관련된 예배단 등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바투동굴 관람을 더욱 재미있게 해주는 것는 야생 원숭이이다. 이들은 사람이 어색하지 않은듯 오히려 길목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놈들은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이나 음료수를 받어먹는 것을 넘어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보면 빼앗으려고 덤기기도 한다. 이를 쫓으려 무력을 사용하면 떼로 덤벼들기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다. ■입헌군주국, 그러나 세습 아닌 순번제 콸라룸푸르에서 왕궁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도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잘란 이스타나에 자리한 왕궁은 근위병이 없다면 일반 부유층의 저택으로 생각될 만큼 소박하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으로 상징적이나마 왕이 존재한다. 국군 통수권자이고, 수상 등 정부 각료를 임명하기는 하지만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왕위 계승은 세습이 아닌 순번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따른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말레이시아는 모두 13개 주가 모인 연방국가이다. 이중 주의 지도자로 세습되는 술탄(Sultan)이 있는 주는 9개. 이들은 각자의 순번에 따라 임기 5년의 국왕에 등극하게 된다. 현재 말레이시아 국왕은 2007년 등극한 트렝가누주의 술탄이다. 약 8만 3000㎡(약 2만 5000평)의 왕궁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으나 정문 주변에서 담 너머로 들여다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가운데 널찍한 잔디 광장이 있고, 그 뒤 숲 사이에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 있다. 왕궁의 입구에 있는 문은 3개. 차량 등이 통행하는 중앙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문이 있다. 이곳에는 붉은 상의에 검은 바지 복장의 기마병 2명과 말레이시아 전통 군복 차림의 일반 병사 2명 등이 지키고 있다. 커다란 체구의 근위병이 위엄을 보이는 유럽 왕궁과 달리 까무잡잡하고 작은 체구의 병사들은 오히려 관광객이 신기한듯 부동자세 속에서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는 모습이 재미있다.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박상언 기자
2008.02.12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