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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프로젝트] 배 불리는 건 플랫폼이고, 창작자는 굶는다고?

일간스포츠 주최, 실무프로젝트(주) 주관으로 진행하는 콘텐츠·엔터 기업 기획자&마케터 취업준비생을 위한 실무프로젝트에서는 엔터산업 분야 관련 기사 작성에 관해 강의를 했습니다. 이후 조별 과제로 제출받은 칼럼 중 우수한 것들을 일간스포츠 온라인을 통해 소개합니다. 일간스포츠가 차세대 K-메이커를 목표로 하는 취준생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편집자 주>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한 크리에이터는 광고 수익의 절반도 채 가져가지 못한다. 넷플릭스에서 제작에 참여한 창작자는 정작 계약 조건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작업을 마무리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든 전 세계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로 창작자들은 정당한 몫을 잃어가고 있다. 불공정 구조는 현장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내 웹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플랫폼이 판권을 가져가면 제작사는 사실상 한 번 받은 제작비 외에는 장기적인 수익이 없다”고 토로헸다. 드라마가 해외에서 흥행해도 그 성과는 플랫폼이 누리고,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이름값 외에는 거의 없다. 유튜브, 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의존하는 1인 크리에이터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 수익의 절반 이상을 플랫폼이 가져가면서, 정작 콘텐츠를 만든 창작자는 ‘을’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문제는 이 구조가 단순한 금전적 손해를 넘어 창작의 방향성까지 왜곡한다는 점이다.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편성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제작사들은 안전한 흥행 공식을 반복하고, 실험적이고 다양성 있는 시도는 설 자리를 잃는다. 결국 콘텐츠의 질적 다양성이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마저 약화될 수밖에 없다.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으로 본궤도에 오른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K콘텐츠의 산업 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업계의 필사적인 자구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공룡에 맞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제작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최소한의 협상력을 갖추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하지만 업계의 노력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엔 역부족이다. 미디어 정책 전문가들은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에게는 국내법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규제 공백이 존재한다”며 “프랑스가 자국 문화 보호를 위해 해외 OTT에도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자국 콘텐츠에 의무 투자하도록 법제화한 것처럼,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비대칭 규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토종 플랫폼이라는 토양이 있어야 K콘텐츠라는 나무도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거대 플랫폼 중심의 불공정한 수익 구조는 창작자의 권리와 산업의 건강성을 동시에 위협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비판을 넘어, 창작자가 정당한 몫을 보장받을 제도적 장치와 공정한 유통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정부는 규제 공백을 메워 균형 잡힌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토종 OTT는 창작자와 동반성장을 통해 상생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구축된 창작자와 이용자가 주체가 되는 생태계야말로 지속 가능한 콘텐츠 산업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작성자 : 김민지, 나선진, 나유진, 문태현, 좌경준 2025.10.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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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⑫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 저작재산권의 두 얼굴

여러분은 임창정의 ‘소주 한 잔’, 이영현의 ‘체념’을 즐겨 부르시나요? 이 두 노래는 ‘노래방 애창곡’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 외에 원저작자는 가수 본인이지만(‘소주 한 잔’은 작사만 해당), 두 곡 모두 ‘저작권을 팔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노래도 창작자의 성명도 변함이 없지만 법적 권리는 다른 주체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러한 저작권 판매 케이스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 더욱 비일비재합니다.대표적으로 마이클 잭슨과 비틀스 멤버 폴 메카트니는 원래 절친이었으나 마이클 잭슨이 비틀스 음악들의 저작권을 매입한 것이 이들의 우정을 갈라놓은 트리거가 됐다는 이야기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밥 딜런, 스팅, 저스틴 비버 등 글로벌 팝스타들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저작권을 매각했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습니다.◇ 사고파는 저작권? - 저작재산권의 관점저작물을 ‘사고파는’ 거래가 성립되는 이유는 저작물을 ‘재산’으로 인정하는 ‘저작재산권’의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앞선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저작권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두가지 권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재산’이기에 처분 또는 매각, 양도할 수 있고, 신탁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압류도 가능합니다.일례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저작권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이러한 저작 ‘재산권’에 한정해 권리의 행사를 대신 ‘관리, 집행’ 하도록 ‘신탁’ 받은 기관입니다.◇ 어떤 것을 사고팔 수 있는가?저작재산권은 크게 7가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먼저 저작권자가 자신의 음악을 공연하거나 다른 사람이 공연하도록 허락하거나 다른 사람이 공연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권리인 ‘공연권’, 저작물을 인쇄, 촬영, 복사, 녹음, 녹화 등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할 수 있는 권리인 ‘복제권’이 있으며, 저작물을 무선 또는 유선 통신의 방법에 의해 송신하거나 이용에 제공할 권리인 ‘공중송신권’, 그리고 원저작물을 개작, 편곡, 번역, 각색 등의 방법으로 변형해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대여권’, ‘배포권’ 등으로 세분화돼 있습니다. 이외 미술작품 등에 관련된 ‘전시권’도 있으나 이 권리는 음악저작권과 관련이 없습니다.이 중 공연권, 복제권, 공중송신권, 대여권, 배포권 이렇게 다섯개의 권리는 음악저작권협회에 신탁이 가능한 권리입니다. 다만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저작권법 제45조에 따라 양도를 하려면 특약이 있어야 하며 저작권협회 신탁 또한 불가능한 권리입니다.저작권법 제45조(저작재산권의 양도) ①저작재산권은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할 수 있다.②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제22조에 따른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한다.1항에 따라 이 권리 전체를 포괄적으로 사고팔 수도 있고, 일부만 부분적으로 사고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작권을 팔았다 = 아무 권리가 없다? 하지만 ‘저작권을 팔았다’는 말은 저작재산권 중 일부를 양도했다는 뜻일 뿐, 창작자로서의 지위나 인격적 권리까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따라서 저작권을 팔았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무권리자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성명표시권’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설사 ‘저작권을 팔았다’고 하더라도 창작자인 원저작자로서 지위나 인격적 권리(저작인격권), 성명 표시를 요청 혹은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이와 반대로 원저작자로부터 ‘저작권을 샀다’고 하더라도 원저작자의 이름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할 의무가 있으며 이후 사용이 발생할 때에도 성명 표시, 동일성 유지 등 저작인격권이 보장한 원저작자의 고유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어느덧 음악산업은 초고속 성장과 함께 고부가가치산업이 되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빅마켓이 됐습니다. 더불어 한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까지 담긴 음악 저작물의 자산 가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평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저작재산권 7가지 중 어떤 권리를 팔았는지, 어떤 것은 팔지 않았는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나아가 저작권을 사고파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더 큰 의미의 문화적 이동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굿보이’, ‘싱어게인’, 넷플릭스 ‘살인자0난감’, tvN ‘선재업고튀어’, MBC ‘굿데이’,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과 베이비몬스터, 변우석 등 아티스트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5.10.13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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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⑩ 성명표시권,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저작자는 이름을 남긴다

모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 저작권 업무를 맡았을 때 승인을 모두 마치고 여유롭게 프로그램 첫회를 보며 모니터링을 하던 중 ‘엇!’ 하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휴대전화를 찾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번호를 보자마자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제 작품인데 왜 다른 사람 이름이 작사·작곡가로 나오지요?”라는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매우 격양돼 있었고 이에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담당 PD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니, 이미 방송 나간 걸 뭘 어떡하겠어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데 그냥 대충 달래주고 정리해 주세요”라고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다는 반응이었습니다.과연 작사 또는 작곡가의 성명표기 오류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답은 “노!”, 바로 저작권법 위반입니다.하지만 실무 현장의 반응은 “아니 이름 좀 잘못 나갔다고 저작권법 위반을 이야기하시다니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관련 법 조항 보내드릴 테니까 사안에 대해서 법무팀 쪽에 공유해주시고요, 이거 수습해야 합니다.”카톡으로 바로 법조항을 보내드렸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이 인식됐고 그 후 재방송은 물론 유튜브 클립 및 IPTV, OTT 등등 전부 이름을 수정해서 재입고를 해야 했으며, 원저작자의 강경한 입장에 찾아뵙고 합의까지 진행해야 했습니다. 결국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성명 표기 오류로 해결까지 꽤 오랜 시간 고생해야 했습니다.◇ 성명표시권 - 저작권법 제12조 무사히 일이 다 마무리 된 후 담당 PD는 사과하면서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편집할 때 자막 바 시안 보내드릴 테니 이것까지 확인 좀 부탁드려요!”저작권법 제12조는 ‘성명표시권’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에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권리가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용자는 이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성명표시권’, 이 또한 저작인격권의 세가지 권리 중 하나입니다. 말 그대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이용자는 특별히 ‘제 이름을 기재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하지 않는 이상, 보편적으로 판단하기에 기재하지 못할 상황이 아닌 이상 반드시 기재해야 합니다.◇ 어디다, 어떻게 기재해야 할까요?음악 방송 프로그램들에서는 통상 곡 제목과 함께 작사·작곡자를 함께 기재합니다. 음원사이트에서는 곡 소개서 혹은 가사탭에 저작자명을 기재해 누가 작사·작곡자인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합니다. 유튜브 음악 커버 영상의 경우 영상 내 자막에 누락된 경우, 설명란에라도 반드시 기재해야 합니다.그렇다면 음악 공연 혹은 커버가 아닌 영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라마나 영화의 멋진 장면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 그 화면에 자막을 기재한다면 화면의 몰입감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에 삽입곡 정보로 기재하는 방식이 보편적입니다. 간혹 광고 같이 기재할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작품 승인 계약서에 ‘크레딧은 상호 협의하에 기재하지 않기로 한다’는 합의 문구를 삽입해 이를 해결합니다.가수는 작품을 통해 목소리를 남기지만, 저작자는 이름을 통해 존재를 남깁니다. “이름이 빠졌다고 뭐가 그렇게 큰일이냐”라는 말은, 창작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작권은 단순히 재산적 권리만이 아니라, 창작자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작품을 사용할 때, 원작자의 이름을 의도에 맞게 올바르게 기재하는 것은 법적 의무를 넘어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입니다.다음 편에서는 복잡한 성명표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러분이 즐겨 보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현장감 있게 전달드리고자 합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굿보이’, ‘싱어게인’, 넷플릭스 ‘살인자0난감’, tvN ‘선재업고튀어’, MBC ‘굿데이’,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과 베이비몬스터, 변우석 등 아티스트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5.09.29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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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⑨ 동일성유지권, 창작물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

최근 진행하는 승인 업무 가운데 두 곡의 상반된 요청과 결과가 있었습니다.하나는 가사와 주요 멜로디만 같을 뿐 그 외 정서 혹은 편곡이 원곡의 느낌과 너무 차이가 나는 파격적인 리메이크 승인 요청 건으로, ‘이건 거절될 확률이 높으니 다른 곡도 준비해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먼저 조언을 드릴 정도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귀 기울여 들어보아도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난한 정도의 편곡 승인 건이었습니다.하지만 승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많은 편곡과 변형이 있어서 걱정했던 첫번째 사례는 원저작자가 수월하게 승인한 반면 무난히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두번째 사례는 ‘죄송하지만 안되겠습니다’라는 뜻밖의 피드백이었습니다.앞선 칼럼에서는 ‘동일성유지권’과 관련해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글을 읽으신 몇몇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번에는 모호한 ‘동일성유지권’의 기준으로 인해 현장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견이 발생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동일성유지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사, 단어 조금 바꿔도 되나?이를테면 남성 가수가 여성이 화자인 노래를 부르는 경우 혹은 여성 가창자가 남성이 화자인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를 ‘그녀’로 바꾸면 안되는지, ‘치마’를 ‘바지’로 바꾸면 안되는지 등의 질문은 부르는 가수의 성별에 따라 필연적일 수 있습니다.언뜻 생각하기에는 두 글자 바꾸는 것에 불과한 ‘사소한 변경’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소통했던 많은 작사가들은 강한 심리적 거부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감성이 달라진다’였습니다. 대중가요에서 가장 흔한 주제인 ‘사랑’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표현 방식, 말투 등의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전체적으로 여성적 시각에서 쓴 가사에서 화자의 성별만 남성으로 바꿨을 경우, 원래 담았던 감정의 흐름이 무너져 이질적으로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이 점 역시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원래 그 곡을 작사했던 작가의 의도와 감정이 왜곡될 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노래, 멜로디 조금 바꿔도 되나?가수들이 ‘애드리브’로 음을 조금씩 바꿔서 부르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선하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2007년 서울지법은 열두 마디로 구성된 ‘손발체조’라는 곡의 마지막 8분음표 음 하나를 ‘미’에서 ‘라’로 바꾼 것이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곡 전체가 짧아서 음 하나로 전체 분위기가 크게 변할 수 있다는 해석이었습니다.음악 창작자 대부분은 멜로디 한 ‘음’을 가지고 며칠을 고민합니다. 과연 이 구간의 멜로디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이 좋은지,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이 좋은지를 놓고 며칠을 심사숙고하며 끝없이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고, 심지어 녹음 스튜디오에서도 특정 구간을 여러 라인으로 녹음 한 후, 나중에 선택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 이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음’ 하나가 창작자에게는 곡의 정체성과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편곡, 반주 조금 바꿔도 되나?한 PD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KBS1 ‘열린음악회’에서는 KBS 관현악단(팝스오케스트라)이 대부분의 노래를 연주하는데 그것은 편곡인가요 아닌가요?”사실 음대에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기법 수업이 따로 있을 정도로 오케스트라 편곡은 편곡 기법의 정수로 여겨집니다. 어떤 악기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사운드를 채우느냐에 따라서 색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편곡은 “뒷배경을 조금 다듬는 작업”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곡 전체의 정서와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원저작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반주 변화조차도 동일성 유지권의 침해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습니다.◇ 저작인격권의 보호는 too much?과연 어디까지가 ‘허용’이고, 어디서부터가 ‘침해’일까요?저작권 전문 변호사에 따르면 3분 남짓한 음악 저작물은 짧은 규모이기에, 작은 변경이라도 비율로 따지면 결코 작지 않은 변경으로 봐야 합니다. 즉, 음악 한 곡은 길이와 상관없이 하나의 완결된 창작물이고, 창작자가 부여한 정체성이 집약된 결과물입니다. 작은 단어 또는, 음 한두 개의 차이가 때로는 작품의 감정선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곡 전체의 성격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저작인격권’ 내 중요한 권리, ‘동일성 유지권’은 창작자의 과도한 방어기제가 아니라, 창작물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누군가의 창작 저작 결과물인 ‘음악’을 사용할 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가벼운 접근보다는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굿보이’, ‘싱어게인’, 넷플릭스 ‘살인자0난감’, tvN ‘선재업고튀어’, MBC ‘굿데이’,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과 베이비몬스터, 변우석 등 아티스트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5.09.2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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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⑧ 동일성 유지권, 음악의 본질을 지키는 권리

얼마 전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는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연지영(임윤아 분)이 미래로 돌아갈 유일한 희망인 ‘망운록’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후, 좌절한 나머지 막걸리를 거하게 들이켜며 서태지의 ‘컴백홈’을 자신의 사연에 맞게 ‘내일조차 없었어’라는 가사를 ‘망운록도 없었어’라고 개사해 부르며 춤까지 선보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이 장면은 사전에 음악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결과물이고, 이 또한 메이저세븐이엔엠이 업무를 진행했습니다.이 방송 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Q. 서태지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소속이 아니기에 서태지의 노래를 쓰려면 가수에게 직접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지난 저작권썰 - 3편을 읽어 보셨다면 바로 그 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즉, 어떤 노래를 쓰려면 ‘가수’가 아닌 ‘저작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며, 이는 음악저작권협회(이하 협회) 소속 여부와 상관이 없습니다.오히려 위 장면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소속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의 사연에 맞게 가사를 고쳐 부르는 ‘개사’를 진행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개사’는 원 저작자에게 보장되는 권리 중 ‘저작인격권’에서도 ‘동일성유지권’에 대한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저작권협회에 사용료 내니까 괜찮아요?많은 분들이 “수익 창출을 하지 않으면 저작권 문제는 없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방송사는 협회를 통해 사용료를 내고 있으니 협회와 계약이 되어 있는 저작자들은 해결이 되며, 유튜브 또한 협회를 통해 영상에 대해 발생하는 ‘수익’을 저작자에게 정산시켜주기 때문에 괜찮다는 주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수익을 창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저작권 중 ‘저작재산권’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문제는, 저작권은 저작재산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른 한 축인 저작인격권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작인격권은 ‘공표권’,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 등의 권리로 구성돼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일성유지권’입니다. 즉 ‘원 저작물의 본질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동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저작인격권은 협회에 신탁이 되지 않습니다. 저작인격권은 창작자 본인에게 주어지는 권리로, 남에게 팔거나 신탁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일신전속권’입니다.그러므로 ‘개사’를 할 경우, 원저작자에게 사용 허락을 받는 것은 필수 요건입니다. 그것이 한 문장, 아니 단순히 몇 마디를 바꾸고자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원저작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며, 이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사용료를 내는 것과 관련이 없습니다.◇ ‘동일하다’의 기준은?그렇다면 ‘동일성유지권’의 ‘동일해야 한다’는 기준은 뭘까요? 사실 이 ‘기준’은 모호합니다. 문학작품이나 그림, 사진과 달리 음악은 유형으로 있는 것이 아닌 무형의 소리로 식별되는 것이기에 듣는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게 느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자면, JTBC 싱어게인 등 무명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과거에 인기 있었던 명곡들을 파격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해서 선보이는 무대나 또는 다수의 뮤지션들이 유튜브를 통해 기존의 음악을 자신의 느낌으로 재해석해서 혹은 가사를 바꿔 부르고 업로드하는 영상들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창의적이다’, ‘신선해!’라고 평가하지만 한편에서는 ‘어, 이게 뭐야? 원곡을 망쳐놨네?’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엄청난 도파민을 유발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는 솔로’ 혹은 ‘나솔사계’의 경우, 일반인 출연자들이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하며 자신을 소개할 때가 있습니다. 가요, 클래식, 트롯, 심지어 찬송가를 부르는 분도 있었습니다.얼마 전 제가 보았던 장면은 ‘나솔사계’에서 출연자 중 한 분이 본인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통기타를 치며 ‘본능적으로’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이 출연자가 ‘본능적으로’를 부른 것은 당연히 원가수의 느낌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이 방송 분량에 대해 음악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하실까요? 악보상으로는 똑같지만 듣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결국 같은 설계도면인 ‘악보’를 놓고도, 자재 선택 (악기, 사운드), 시공 방식 (편곡 및 연주)에 따라 전혀 다른 건물 (곡)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이처럼 듣는 사람마다 ‘동일하다’, ‘다르다’ 등의 평가가 갈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변형이나 개사의 판단은 원곡의 저작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물론 자연스러운 예술적 재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창작자에게는 작품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느낌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호한 ‘본질’, 명확한 답은?결국 본질은 모호하고 법은 명확한 기준을 주지 않습니다. 대법원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판례는 “사회 통념상 창작자의 인격적 이익이 침해되었는지”로 판단하겠다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해석의 여지는 넓고, 위험은 이용자의 몫입니다.그러므로 방송, 공연, 온라인 배포 전, 원저작자의 의도와 핵심 창작 요소를 훼손하지 않도록 원 저작자에게 승인 절차를 거치는 것, 그것이 곧 저작권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다음에 누군가 “수익 발생 안하는 것이면 커버는 괜찮아. 협회에서 다 알아서 해주거든”이라고 말하거든 이렇게 전해주세요.“그건 재산권 얘기고요… 인격권은 따로 해결 해야 돼요.”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굿보이’, ‘싱어게인’, 넷플릭스 ‘살인자0난감’, tvN ‘선재업고튀어’, MBC ‘굿데이’,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과 베이비몬스터, 변우석 등 아티스트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5.09.15 05:40
영화

‘어글리 시스터’ 누가 신데렐라 의붓언니에게 돌을 던지랴 [정시우 SEEN]

백마 탄 왕자, 유리구두, 계모, 밤12시,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신데렐라’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데렐라 이미지의 대부분은 1950년에 세상에 나온 월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왔다. 전세계 많은 어린이가 ‘가난한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팔자 피는 이야기’를 해피엔딩이라 믿으며 자랐다. 신데렐라에 빙의했고, 결혼을 신분 상승의 수단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랬던 신데렐라 신화가 구겨지기 시작한 건, 미국 심리학자 코레츠 다울링이 1982년 ‘신데렐라 콤플렉스(Cinderella Complex)’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다. 스스로 자립할 자신이 없는 여성이 자신의 인생을 확 변화시켜 줄 남성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의존 심리를 뜻하는 이 용어의 등장 이후 신데렐라는 페미니즘의 적이 되기도 했다. 영국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것을 우려해 아이에게 디즈니 ‘신데렐라’ 시청을 금지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디즈니 ‘신데렐라’는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발표한 동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세상엔 수많은 신데렐라 판본이 존재하는데, 이 중 하나가 그림 형제가 쓴 ‘아셴푸텔(Aschenputtel)’이다. ‘아셴푸텔’에서 신데렐라의 의붓언니 둘은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엄지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낸다. ‘어글리 시스터’는 바로 이 잔혹 동화 ‘아셴푸텔’에서 출발한다. 그림 형제의 원작을 접한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은 “처음으로 의붓 언니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됐고, 사회의 기준에 맞추려 노력해 온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깨달았다고 한다. “아, 나 역시 계모의 딸”이었음을. 그러니 ‘어글리 시스터’의 주인공이 신데렐라가 아닌, 계모의 딸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는 아그네스(‘신데렐라’에 해당하는 인물)의 어글리한 의붓 언니 엘비라(레아 미렌)가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성형수술이 지금 같지 않은 시대이다 보니, 수술이 아니라 극기 체험에 가깝다. 엘비라는 둔중한 수술 기구가 자신의 콧대를 찍어내리는 고통과 바늘이 눈 밑을 꿰매는 고통을 마취 없이 견뎌낸다. 그리고 촌충알을 삼킨다. 배에서 자란 기생충이 자신이 먹은 영양분을 모두 빨아들여 자연 다이어트가 되리라 믿으면서. 보디 호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이 모든 장면이 가감 없이 스크린 위에서 재생된다. 엘비라 안에서 기생하던 기생충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눈을 질끈 감을 관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이 영화에서 기이하게 비틀어진 건 엘비라 뿐이 아니다. 돈을 위해 딸을 수술대 위로 거침없이 내모는 계모도, 여자의 외모에 죽고 못 사는 노상방뇨하는 왕자도, 심지어 마구간에서 마부와 정사를 벌이고도 신분 상승을 위해 사랑이 아닌 결혼을 택하는 아그네스마저도 ‘욕망’이라는 이름 앞에서 고꾸라진다. 물론 여기엔 신분제와 가부장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가 작동하고 있다. 결혼이 생존이고, 외모가 자산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느꼈을 압박감.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은 그 압박감을 바디 호러라는 독에 풀어 풍자하고 동화적 환상을 해체한다. 그래서다. 최종 간택 받은 아그네스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건. 아그네스는 아마도 육아 독박을 쓰거나, 바람둥이 왕자로 인해 외로움에 뼈가 사무치거나, 남들 눈치를 보며 살아가지 않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영화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한다. 신데렐라 서사가 득세하던 시절을 지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대중 문화에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외모는 신분 상승으로 가는 동아줄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유리 구두는 없지만, 세상이 정한 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이들로 인해 성형외과는 365일 문전성시다. 인구 대비 성형수술 건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2024년 기준) 성형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연약한가. 외모가 여전히 계급으로 작동하는 21세기 사회에 사는 이들 중 엘비라에게 거침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이 ‘어글리 시스터’를 가리켜 “외모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젊은 여성들을 위한 영화”라고 말한 이유다. 정시우 칼럼니스트 2025.09.12 06:00
연예일반

[심재걸 엔터잡학사전] 누르면 속수무책 ‘학폭 버튼’…폭로의 전성시대

폭로의 시대다. 방식은 간편하다. 접속자가 많이 몰리는 커뮤니티나 SNS에 몇 장면을 묘사하는 글 하나면 충분하다. 대상이 유명 아이돌, 배우일수록 파급력은 더 막강하고 당사자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이미 주홍글씨가 생겨버린다. 추가 증언이 나오기라도 하면 여론전을 펼치는 것도 무의미하게 대중의 인식 속에는 기정사실화된다. 최근 몇 년간 폭로의 단골 메뉴는 학창시절 ‘학폭’이다. 송하윤은 1년 전부터 의혹의 대상이 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고교 동문이라는 폭로자는 송하윤을 상대로 100억 원대 소송을 예고하기도 했다. 고민시 역시 학폭 의혹을 받고 첫 입장 표명까지 3개월이 걸렸다. 몇몇 아이돌은 팀 탈퇴와 소속사 계약 종료로 귀결됐고, 배우들은 출연 드라마에서 하차하거나 제작사에 수억 원을 배상하는 경우도 벌어졌다.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항변하지만 무참히 조각난 이미지를 환영하는 곳은 없다. 대부분 ‘퇴출’과 다름없는 처분을 받을 정도로 현실은 냉혹하다. 꿋꿋이 복귀를 해도 예전에 비해 한풀 꺾인 영향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폭로의 순작용은 뚜렷하게 존재한다. 특히나 학폭은 중대한 사회문제인 만큼 대중 앞에 서는 스타일수록 치명적이다. 그 당시 합당한 처벌을 받고 끝낸 사안이더라도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직업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대형 기획사들은 이 부분을 연습생 단계부터 엄격하게 관리한다. ‘과거 행위도 언젠가 책임지게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스스로 경계심을 만들어줬다.반면 사실관계가 과잉되거나 엇갈린 폭로는 새로운 피해자만 낳는다. 과거 피해자란 명목 아래 현재의 무차별 폭력을 용인해도 되는지도 생각해 볼 지점이다. 가담 정도와 사실 여부를 떠나 ‘학폭’이란 낙인이 주는 파급력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허위, 과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와 다름없어 더욱 그렇다.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확정판결이 난 사례는 드물다. 수년 전 일에 대한 객관적 증명도 어렵고, 수사기관 역시 한계에 부딪힌다. 기획사의 대처 역시 부인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한계만 거듭 확인될 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획사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리스크 관리 항목 중 하나다. 폭로는 예측 불가 영역이자, 일방적으로 위해를 당하는 영역이다. 수면 위와 아래에서 모두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들이 이어진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아티스트 당사자와 벌이는 진실게임은 고난도 심리전이다. 있는 그대로 과오를 밝히면 오히려 대책 마련이 수월하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빠른 반박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대응을 위해서 입체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피해자를 만나 최대한 정중히 사과하고 화해를 유도하는 일도 쉽지 않다. ‘Lose a battle to win the war.’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투에서 패배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그 한 발을 물러서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폭로를 통해 현재 입게된 막대한 피해만 생각하다가 감정적으로 접근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학폭은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합리화 돼서는 안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사인도 분명 아니다. 심각한 가해자가 대중의 사랑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추한 일도 없다. 억지로 활동을 한들 자연적으로 도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악의를 갖고 하는 과장된 폭로나 음해는 학폭만큼, 때로는 더 심각한, 폭력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낙인이자 끔찍한 가해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잣대가 현재보다 엄격하게 요구되는 일이지만 그 이전에 얼마나 잔인한 행위인지, 인지하는 사회 분위기가 시급해 보인다.심재걸 대중문화 평론가◇ 필자 소개 : 현재 브랜드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며 평론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연예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YG엔터테인먼트에서 업계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심재걸 엔터잡학사전’에서 엔터 관련 다양한 현상들을 해설하며 세대간 소통의 장을 마련합니다. 2025.09.11 05:55
드라마

[정덕현 요즘 뭐 봐?] ‘첫, 사랑을 위하여’, 끝에서 새롭게 시작된 첫 경험들이 보여준 기적

“사람이 정말 힘들 때 ‘아, 그만 살고 싶다’ 숨이 꼴깍꼴깍 차오르는 지경이 되는 거. 근데 그때 사람 살리는 게 뭔지 아세요? 사람. 그래도 사람이 숨을 틔워 주더라고.” tvN 월화드라마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이지안(염정아)이 하는 이 말은 드라마가 12회를 달려오며 줄곧 속삭여 온 메시지다. 숨이 턱턱 차오르는 죽고 싶은 상황에서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숨이 쉬어지더라는 이야기.살기 위해 죽어라 번 돈을 작업반장에게 빌려주고 고스란히 떼이게 될 상황에 놓인 지안은 그의 더 어려운 형편을 보고는 당장 돈 받는 걸 포기한다. 그런 그녀를 딸 효리(최윤지)는 ‘호구’라고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로맨티스트’라고 말한다. 기적을 믿는 로맨티스트. 그리고 그 기적이란 자신들처럼 빽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호구 소리 들어도 잠시나마 서로 살게 해주는 거란다.‘첫, 사랑을 위하여’는 마지막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평생 효리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살아온 지안이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산 결과는 절망적이다. 돈도 떼이고, 의대까지 들어간 효리는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효리는 그 상황에 이르러서야 의대가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해 버린다. 열심히 살았지만 이들의 삶은 끝자락에 서 있다. 더 이상 발을 내디딜 수 없는 벼랑 끝에. 하지만 그 끝에 선 이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엄마의 첫사랑 류정석(박해준)이 있는 마을 청해를 찾아간 효리는 그곳의 삶에서 생기를 회복한다. 딸을 찾아 내려왔던 지안은 그곳에 그들이 평생 원했던 집을 짓고 정착하게 된다. 소박해도 고개만 올려보면 별들이 지천인 그곳에서 이들은 드디어 ‘첫’ 행복감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로맨스도 피워보고 따뜻한 이웃들의 환대도 받는다. 난데없이 나타나 마치 모녀처럼 관계가 진전되는 정문희(김미경)와 이지안의 이야기는 낯선 타인이 저마다의 감정적 이유로 가족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웨인 왕 감독의 1995년작 ‘스모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담뱃가게 물건을 훔치던 소년이 떨어뜨린 지갑을 되돌려 주려 그 집을 찾아간 어기(하비 케이틀)가 그곳에서 만나게 된 소년의 할머니와 마치 가족인 양 연극하듯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어려서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는 지안과,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딸이 아픈 것도 모르고 지내다 딸을 떠나보낸 아픔으로 치매 증상을 겪는 정문희가 바닷가에서 만나 마치 엄마와 딸처럼 대화하며 그 감정들을 꺼내놓는 장면이 그렇다. 그 장면은 역시 이 드라마가 끝까지 일관되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살아진다는.‘첫, 사랑을 위하여’는 그 기적 같은 순간들을 우리는 늘 겪고 있지만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걸 드러낸다. 거의 숨이 꼴딱꼴딱 차오르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 살아내게 만든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고,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있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안 옆에서 늘 그녀를 걱정하고 위로해주고 편들어주고 안아주는 김선영(김선영) 같은 친구가 그런 존재다. 그녀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신애(전도연) 옆을 마치 ‘숨겨진 햇살’처럼 따라다니며 살게 해주는 종찬(송강호) 같은 인물로 지안을 다시 숨 쉬게 해준다.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비로소 발견하는 삶의 기적은 그래서 모두 첫 번째 경험이 된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랑이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람이며, 처음으로 경험하는 삶이 된다. ‘첫, 사랑을 위하여’라는 제목은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그저 숨만 쉰다고 살아 있다 여기며 사는 우리들이지만 진짜 살아있는 삶이란 그 첫 경험의 기적들을 마주할 때가 아닐까. 그래서 ‘첫, 사랑을 위하여’는 이 땅의 모든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다. 그들의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그곳에서부터 어쩌면 진짜 삶의 기적은 생겨날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그런 한 사람이 되어주는 삶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5.09.09 05:40
뮤직

[김지욱 저작권썰.zip]⑦ AI 음악저작물 저작권 등록: 통제의 폭군인가, 보호의 성군인가?

대학교 실용음악과 작곡 입시에서는 (학교마다 약간 다르지만) 입시생이 만든 곡을 음원 파일로 제출해 면접장에서 재생하거나 혹은 피아노, 기타로 연주해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곡이 입시생 혼자 만든 것인지,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입시생은 곡의 주제, 포인트와 창작 과정 전반을 기록한 레포트를 함께 제출하고, 면접관들은 제출된 곡과 레포트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통해 입시생의 창작 역량을 ‘검증’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100%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 학교는 두마디 정도의 동기(Motive)를 제시하고 아무런 악기가 없는 상태에서 제한 시간 내에 오선지와 연필로 곡을 완성하는 시험을 병행하기도 합니다.과연 AI 활용시대 AI 음악저작물 저작권 등록을 위해서는 대학입시처럼 인터뷰, 시험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진행돼야 할까요? 지난주 말씀드린 대로 핵심은 AI 음악저작물에 대한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어디까지’,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가입니다. 필자는 저작권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기 전,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드라마 OST 작·편곡, 음반 제작 및 강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활동에서 느낀 것은 ‘입증’하는 것이 추상적이고 막연하지 않으며, 현업에서 계속 논의되는 실질적인 과제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 ‘어디까지’, ‘어떻게’ 입증 가능한가?1963년 처음 발간된 나운영 작곡가가 집필한 ‘작곡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수학의 정석, 성문영문법처럼 작곡을 공부할 때 필수적으로 접하는 고서 중 고서입니다.(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은 선율론(Melody writing), 작곡 과정(Process of Composition) 및 기법 해설 등을 다루며 특히 저자의 ‘창작 방법론’을 잠언 형식으로 제시해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창작 방법론에서 우선시하는 것은 먼저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다음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 ‘먼저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물론 순서를 다르게 하거나 이와 다른 창작의 방법도 있겠지만, 저자의 방법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먼저 창작의 목표와 방향성을 구상하고, 곡의 스타일과 장르, 형식을 정하는 것이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입증할 수 있는 기본이라는 것입니다.예를 들자면 나만의 주제, 곡의 스타일, 장르 등을 정해서 멜로디를 흥얼대거나, 비트메이킹부터 시작해 ‘둠칫쿵따~치둠두둠-따’ 같이 입드럼으로 비트를 구상해서 음성 메모를 남긴 후, AI에게 이 음성메모를 전달하고 어떠한 느낌이 나는 비트 사운드를 생성하도록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메타데이터’, 즉 모든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을 통해 내가 이 노래를 언제 구상했고, 얼마나 초기 구상이 완료된 상태에서 AI와 교신을 시작했는지, 창작의 타임라인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2)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이후 기타, 건반 등의 반주악기로 사운드를 어떻게 채울지 선택해야 합니다. 악기와 주법을 정하고 이를 스마트폰 메모로 기록한 후, AI 프롬프터로 전달해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도 내용에 따라서 ‘창작적 기여’로 인정받는 근거가 될 수 있어, 구체적인 인간의 창작적 기여 내용이 반영된 AI 중간 결과물 또한 시간대별로 기록하고 수정 과정을 모두 보존해야 합니다. 3) 모든 작업을 메타데이터화 하기즉 구상은 언제, 어떤 장르로, 어떤 모티브로, 어떤 비트 또는 키로 설정했는지부터 AI에게 제시했던 프롬프트의 시간대별 로그, 수정 편집 과정의 내용, AI가 수행했던 중간 결과물과 최종 완성본의 버전별 파일까지 메타데이터와 함께 시간순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모든 기록이 ‘인간의 창작적 기여’에 대한 입증자료가 되는 것입니다.이미 전문적인 음악인들은 각자 본인들만의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특히 스튜디오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Protools’를 통해 모든 작업을 메타데이터화해 보존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간단하게 스마트폰이나 SNS에 기록만 남겨도 메타데이터가 생기는 시대이기에, 작업 과정을 증빙 자료로 보존하는 일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AI 음악저작물 저작권 등록에 있어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과제물론 지나친 입증 책임이 과도하게 부과될 경우, AI 음악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절차가 자칫 창작자를 억압하는 ‘통제’처럼 느껴질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정부와 유관기관들은 ‘인간의 창작적 기여도’의 입증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우지 않고, 플랫폼의 기록 제출 의무화 등의 시스템적으로 검증하고 중재할 수 있는 기술적·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AI 서비스 사업자 또한 ‘사람’이고, 사업자 또한 이런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AI에 구축된 데이터를 얼마나 활용했는지에 따라 저작권 등록 가능 여부를 구분해서 산출물에 태그를 삽입한다던가, 창작자들이 AI에 입력한 입증자료를 아카이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칼럼을 위해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 많은 유관기관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여러 걱정과 생각들로 복잡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현실로 다가온 AI 디스토피아를 맞아 다양한 의견 개진과 그에 대해 반박, 치열한 토론의 시간을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누군가는 양심에 따라 창작활동을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AI로 생성된 음악을 ‘아무도 모르면 그만이지’라며 ‘내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작품은 인격과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는 대전제와 함께 윤리나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삼가라’, ‘좋은 작품을 쓰려면 먼저 참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나운영 선생의 일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오늘이 아닐까 합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굿보이’, ‘싱어게인’, 넷플릭스 ‘살인자0난감’, tvN ‘선재업고튀어’, MBC ‘굿데이’,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과 베이비몬스터, 변우석 등 아티스트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5.09.08 05:50
영화

“더 어마어마한 ‘썅년’ 할 거야!” [정시우 SEEN]

“썅년!” 넷플릭스 드라마 ‘애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다. 쌍년(상년)의 사전적 의미는 ‘본데없이 막된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썅년들은 다 같은 썅년이 아니요, 썅년을 부르짖는다고 해서 다 같은 의미의 썅년도 아니다. 이야기기 진행될수록, 썅년이라는 의미가 휘어지고 꺾이며 시시각각 변모하기 때문이다.에에엥∼. 그때 그 시절, 매일 밤 자정에 울렸던 야간 통행금지 사이렌. 37년간 시행되던 야간 통금이 해제된 건, 1982년의 일이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젊은 세대의 저항감을 희석하기 위해 이른바 3S(Screen,Sex,Sports)에 의한 우민화 정책을 시행하면서부터다. ‘애마부인’은 이런 통금 해제 특수를 가장 크게 본 첫 심야 영화였다. 몰려든 관객으로 매표소가 박살 날 정도로 인기를 얻은 ‘애마부인’은 이후 13편까지 생명력을 이어나갔고, 수많은 아류작을 잉태했다. 이러한 에로 영화의 흥행 뒤에는 성(性)적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었던 여배우들의 고충이 있었다. ‘애마부인’ 제작 과정을 그린 ‘애마’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 제작자는 여배우를 권력자에게 성상납하면서까지 부를 축적하고, 언론은 그런 여배우를 성적 대상화하고, 영화 현장에서 여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던 야만의 시절. 70년대 노출 연기로 주목받은 톱스타 정희란(김하늬)이 폭압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건 스스로 ‘썅년’이 되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 사화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썅년’의 의미는 신애 배우 신주애(방효린)의 등장과 함께 그 의미를 확대한다. 한 영화에 여왕이 둘 일수는 없는 법. ‘애마부인’의 주연과 조연으로 만난 주애와 정희란은 초반 서로를 ‘썅년’이라고 부르며 대립각을 세운다. 그러나 촬영이 진행되고, 주애가 성상납 수렁에 빠진 일을 계기로 둘 사이엔 동류 의식이 싹튼다. 주애보다 먼저 같은 길을 밟은 희란은 그것이 인생에 어떠한 상처를 남기는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주애는 그런 희란이 중요한 순간 자신의 편에 서는 걸 보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희란이 어떤 모욕을 감당했는가를 헤아리게 된다. 이때부터 희란과 주애는 남성 판타지에 철저히 복무했던 충무로 제작시스템을 폭로하며 여성의 객체화된 이미지를 전복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희란이 주애에게 던진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더 이 악물고 썅년 해. 그래야 버텨.” 여기서 희란이 주애에게 건넨 썅년은 사전적 의미의 썅년이 아니다. 그건 세상의 무례와 맞서는 투쟁하는 존재로서의 썅년이다. 썅년이라는 욕설이 이토록 절절하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썅년’들의 멋진 연대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건, 첫사랑에게 쌍년으로 호명됐던 ‘건축학개론’의 서연(배수지)이다. 그는 왜 썅년이 되었나. 강북에 사는 대학생 승민(이제훈)은 사랑에 서툴다. 건축학 수업에서 만난 음악과 서연에게 반해 주위를 맴돌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직접 고백하진 못한다. 그리고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연애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가 “꺼져”라는 말을 서연에게 냅다 던지고는 작별을 고한다. 술에 취한 서연이 강남 사는 선배(유연석)의 부축을 받으며 자취방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열등감 때문이다. 강북을 강남보다 열등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승민은, 서연 역시 부잣집 킹카를 좋아할 것이라 의심하며 그의 행동을 계급적으로 판단해 버린다. 그러곤 자신이 상처받는 게 두려워 상대를 ‘썅년’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자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서연이 천박하기에 이 사랑은 끝났다고 굳게 믿어 버린 것이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편하자고 상대를 악마화한 승민의 태도는 찌질하고 졸렬하기 그지없다. ‘건축학개론’에서의 쌍년은 못난 남성에 의해 멋대로 왜곡되고 폭력적으로 규정돼 버렸지만, ‘투쟁’의 의미로 다시 쓰인 ‘애마’에서의 쌍년은 다르다. 여전히 우리 시대 썅년들은 전자의 이미지와 싸우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그래서다. 80년대를 다룬 ‘애마’가 동시대적으로 다가오는 건.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주애는 극 후반 이렇게 외친다. “세상은 여전히 엿같고, 맨날 우리는 엿을 먹고. 새로운 시대 같은 건 없어, 씨발. 그래서 난 앞으로 더, 더 어마어마한 썅년 할 거야.” 정시우 칼럼니스트 2025.09.0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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