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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교체 후 깜짝 반등..실력일까? 행운일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2024년 10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에릭 텐 하흐 감독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맨유는 임시 감독으로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선임했다. 1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팀을 맡은 반 니스텔루이는 4경기를 치러 3승 1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맨유에서 감독대행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반 니스텔루이는 레스터 시티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레스터 시티 감독으로 첫 2경기에서 1승 1무를 거뒀다. 반 니스텔루이의 매직이 새 직장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 레스터 시티는 5연패에 빠지게 된다. 반 니스텔루이의 깜짝 성공은 왜 사라졌을까? 반 니스텔루이가 거둔 초반의 깜짝 성공을 잉글랜드 축구에서는 ‘새 감독 바운스(new manager bounce,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직후 팀이 급격히 향상되는 현상)’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장기간 부진하던 팀이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면서 즉각적인 실적 상승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여러 이유가 있다. 새 감독이 가져오는 열정, 새로운 관점과 전술이 이유일 수도 있다. 새 감독의 새로운 전술에 상대팀이 적응할 때까지 한동안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팀의 주전 선수들은 계속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새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다. 아울러 주전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에게도 새 감독의 취임은 재기를 위한 좋은 동기부여다. 이런 상황에서 새 감독은 빠르게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그럼에도 이러한 반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반등 기간도 팀마다 다를 수 있다. 이에 ‘새 감독 바운스’는 진짜인지 아니면 가끔씩 증명되는 속설에 불과한지 논란의 중심에 설 때도 있다.2021년 11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과거 데이터를 통해 감독 교체가 즉각적인 성적에 미친 영향을 발표했다. 2017~18시즌 개막 이후 네 번의 시즌 동안 EPL에서는 총 26번의 감독 교체가 있었다. 이 중 4분의 3이 넘는 20건에서 새 감독이 부임한 첫 5경기에서 부임 전 시즌 팀 평균보다 ‘PPM(Points Per Match, 경기당 평균 승점)’이 더 높았다. 게다가 9건(35%)의 경우, 새로 부임한 감독이 이 전 감독의 PPM보다 두 배 이상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하지만 초반의 성공이 반드시 장기적인 성공으로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2017~18시즌 12월부터 스완시 시티의 감독이 된 카를로스 카르발랼은 첫 5경기에서 팀의 PPM을 0.7점에서 2점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결국 그 시즌에 스완지 시티는 강등됐다. 반면 데이비드 모에스는 2019년 12월 17위를 달리던 웨스트햄의 감독으로 부임해 초반 5경기의 PPM이 1에서 0.8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웨스트햄은 그 시즌에 16위로 리그를 마친 데 이어, 다음 시즌에는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프리미어리그 리포트는 이러한 통계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 감독 바운스’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는 영국 워릭대학교의 연구 결과하고도 일치한다. 워릭 비즈니스 스쿨의 수 브리지워터 교수는 1992~2008년까지 EPL의 감독 경질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짧은 허니문 기간 동안의 상승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렇다면 새 감독이 부임하면 결과가 반등했다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야구에 ‘머니 볼(Money Ball)’이 있다면 축구에는 ‘사커노믹스(Soccernomics)’가 있다. 2016년 사커노믹스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사이먼 쿠퍼는 (브리지워터의 연구를 인용하며)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후의 짧은 허니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 클럽은 경기당 PPM 1.3을 얻고, 일반적으로 PPM이 1점에 불과할 때 클럽은 감독을 경질합니다.” 다시 말해 사이클의 저점일 때 클럽이 감독을 경질한다는 말이다.통계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점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저점 이후에는 클럽이 감독을 바꾸는 것과 상관없이 팀의 성적은 “평균으로 회귀(regress to the mean)”하게 된다. 즉 저점에서는 언제나 개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팀의 성적은 “정상으로 돌아온다(return to normal)”. 다시 말해 저점을 찍은 이유가 무엇이든 그 이후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반등한다는 말이다.쿠퍼는 2015년 12월 첼시에서 경질된 주제 무리뉴를 예로 들었다. 무리뉴가 경질될 당시 첼시는 16위였다. 첼시의 임시 감독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는 첫 12경기(리그, FA컵 등 모든 경기)에서 패하지 않았으나, 첼시의 리그 최종 성적은 10위에 그쳤다. 이에 쿠퍼는 첼시만큼 좋은 선수를 보유한 팀이 15위 아래로 떨어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시점부터 반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즉 무리뉴가 계속 지휘봉을 잡았어도 첼시는 어느 정도 성적을 회복했을 것이기 때문에, 히딩크는 구원자라기 보다는 수혜자에 가깝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첼시는 무리뉴를 고수하고 결과가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프로축구처럼 막대한 돈이 움직이는 비즈니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비즈니스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욕망을 갖지 않는가?사커노믹스는 축구 감독의 역할이 과대평가됐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축구는 농구, 미식축구 등과는 달리 감독이 게임을 중단시키고, 작전 지시를 할 수도 없다. 선수 교체에도 제한이 따른다. 따라서 감독의 전술은 물론 중요하지만, 축구 같은 연속적인 스포츠에서 경기를 이기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선수들이다. 이에 감독 교체에 쓸 막대한 돈으로 좋은 선수를 영입하거나 경기장 개선에 힘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5.01.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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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문의 진심합심] 올드 스쿨에 대한 약간의 변호

프로야구 이강철 KT 위즈 감독님이 ‘가을야구’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타이 브레이커(5위 결정전)부터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에 이르기까지 예측불허의 묘수를 꺼냅니다. ‘감’이 좋다는 말이 나옵니다. 지난 1일 열린 SSG 랜더스와의 타이 브레이커 스코어 1-3으로 뒤진 8회 말 대타를 쓰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SSG 간판 김광현 선수가 구원 투수로 나오자 이 감독은 오재일 선수를 타석에 세웁니다. 왼손 투수에 일반적으로 왼손 타자가 약하다는 통념을 깬 기용입니다. 이번 시즌 두 선수 상대 기록(4타수 1안타 3볼넷 1삼진)을 보면 대타 오재일 선수가 기존 라인업의 김민혁 선수(김광현 상대 5타수 1안타 1삼진)에 비해 크게 잘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오재일 선수의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 후속 타자 로하스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이 터지고 경기는 KT의 4-3 승리로 끝납니다. 다음날이 없는 단판 승부, 8회까지 2안타로 눌린 상황,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작은 불씨 같은 찬스에서 그런 수를 쓴 것이 놀랍습니다. 다음날 이 감독의 말입니다. "김광현은 슬라이더가 있고 (대타 교체된 김민혁의) 상대 전적이 안 좋아서 오재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재일은 제가 3년간 갖고 있는 데이터가 있다. 데이터와 감, 컨디션 그리고 장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여기서 감독이 말한 데이터는 무엇이었을까요. 투·타 상대 전적은 앞에서 살폈듯 큰 차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남은 건 ‘감’인데요. 성공했으니 마법처럼 칭송받지만, 요즘 널리 쓰이는 확률과 통계의 시대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측정 가능하고 분석적인 방법론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선택이라면 선호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식이라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감은 직관의 영역이기에 비과학적이고 단순히 구식 취급하는 데에 따른 반론도 있습니다.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2002년)을 수상한 대니엘 카너먼은 『생각에 대한 생각』이란 책에서 "의사나 간호사, 운동선수, 소방관이 마주하는 상황이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 질서정연하다. 포커 챔피언처럼 다년간 숙련된 전문가의 경우 여러 경우의 수를 빠르게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저는 야구 감독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래된 지난 경기를 복기할 때 세밀한 장면과 상황까지 기억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는데 무엇이 영향을 줬는지 하나씩 꺼낼 때 보면 어떤 세밀한 장면이 영향을 줬고, 이것이 쌓여 감독의 머릿속에 데이터로 저장된 것이었습니다. 오재일 선수의 대타 기용을 이렇게 예를 들어 보면 어떨까요. 분석팀에서 준비한 기존 타자와 구원 투수의 상대 기록도 훑었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오히려 시즌 중 오 선수가 구원 투수 상대로 얻은 세 차례의 볼넷 상황을 떠올립니다. 시즌 때 안타는 하나지만 상대 투수가 매우 까다롭게 여기고 어렵게 대결하는 순간과 여러 장면이 순식간에 떠오르고, 이들 장면의 의미를 지금의 상황에 대입하면서 결정의 버튼을 누른 겁니다. 그러나 이를 우리가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감’으로 불리고 ‘운’처럼 보입니다.인간의 직감이 제한된 경험이나 환경, 감각 등의 편향에 의해 왜곡돼 불완전하다고 봤지만, 그렇다고 카너먼 교수가 이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직관 판단을 깎아내린 것은 아니다. 직관은 적은 정보로도 빠르게 판단하게 해주고,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에 적응적”이라고 말합니다. 오랜 시간 규칙적 환경에서 훈련된 직관은 능력이라고 봤습니다.그래서 야구 감독의 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설명을 이후에라도 좀 더 자세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넷플릭스의 인기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 심사위원이 “이건 중국 어디서 맛본 무슨 요리인데…, 제 머릿속에 데이터로 들어 있어요”라고 하는 것처럼 야구 감독님들도 더 설명해 주시면 야구가 한층 재미있을 텐데요. 그래서 검증해 볼 수도 있고요.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 감독님들의 직관적 데이터를 넣는다면 야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올드 스쿨 감독님들을 위한 변호이면서 바람입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 2024.10.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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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리포트] 왜, 하필 야구에서 통계일까?

야구와 통계의 인연은 1916년 미국의 야구 잡지 편집자 페르난디드 콜 레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안타와 장타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타율 기록에 의문을 품었고, 레인이 던진 물음표는 미국야구연구협회(SABR)을 거쳐 야구 통계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바로 세이버 메트릭스(야구 통계학)의 시작이다.100여년이 지난 지금 세이버 메트릭스는 프로야구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선수나 구단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적인 팬들조차 익숙할 정도로 대중화에도 성공했다.이쯤에서 한 번쯤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세이버 메트릭스가 스포츠 통계의 선두 주자일까? 왜 가장 유명할까? 프로야구가 인기 종목이기 때문이라는 건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는 단연 축구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인기로는 미식축구(NFL)가 압도적이다. 미국프로농구(NBA)도 최근 성장세에 힘입어 야구를 위협하고 있다. 종목 역사가 길다는 것으로도 야구 통계의 발전을 설명할 수는 없다. 농구도 19세기에 시작됐다. 축구의 시작은 그보다도 훨씬 과거의 일이다. 야구의 인기나 역사는 위에서 던진 의문의 해답이 될 수 없다. 해답은 야구 고유의 특성에 있다. 야구는 한 경기에 많은 선수가 출전한다. 이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선수당 수집된 데이터의 크기가 충분해야 한다. 그런데 한 경기에 한 선수가 만드는 출장 결과는 한계가 있다. 한 경기에 등판하는 투수는 제한적이고, 타자는 5번 이상 타석에 들어서기 어렵다.하지만 야구는 '반복 스포츠'다. 경기 중 별개의 사건이 반복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독립적 특성’을 가진다. 독립 사건은 통계 분석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래서 야구 통계는 모형화하기 쉽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용이하다. 대표적인 게 PBP(play-by-play) 데이터다. PBP 데이터는 한 경기 결과를 잘게 쪼갠다. 타자는 타석별 결과(첫 번째 타석 3루수 앞 땅볼, 두 번째 타석 중견수 앞 안타)를, 투수는 상대 타자별 투구 결과(첫 번째 타자 2루 땅볼, 두 번째 타자 우중간 2루타)를 선수 개개인별로 모을 수 있다.PBP 데이터는 수집하기 쉽다. 경기에 끊김이 잦아서다. 선수들의 위치와 역할이 미리 정해져 있고, 아웃 카운트 3개로 공수교대가 이루어진다. 매 타격 결과와 투구 사이에는 모든 플레이가 중단되며 인플레이 상황의 시간도 길지 않다. 모든 투구와 타격 결과는 스트라이크, 볼, 파울, 안타, 장타, 삼진, 아웃 등으로 범주화 되어 정리된다.다른 종목은 야구와 다르다. 경기 중 각 사건이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종속적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통계를 통한 객관적 분석이 훨씬 어렵다. 축구가 대표적이다. 축구는 45분 안팎의 시간 동안 패스, 드리블, 슈팅들이 상호 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진행된다. 가령 어떤 공격수가 골을 넣었다고 해보자. 득점은 공격수의 온전한 성취가 아니다. 수비수가 상대방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미드필더가 공을 잘 넘겨줘야 한다. 여러 상황들이 어우러져야 최종 결과물인 골이 나올 수 있다.최근 데이터 활용이 도입되고 있는 골프나 종합격투기 UFC 종목 역시 종속성이 강하다. 골프는 첫 시작 지점을 제외하면 과거의 결과가 현재의 스윙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앞선 스윙의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그라운드와 주변 지형지물의 조건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UFC도 직전의 공격, 수비 결과에 따라 선수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크게 달라진다.경기 수 역시 야구를 분석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메이저리그(MLB)는 한 시즌에 팀 당 162경기를, KBO리그는 144경기를 치른다. 반면 NBA는 82경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은 38경기만 치르고 한 시즌을 마감한다. 심지어 NFL은 고작 17경기만 하고 시즌이 끝난다. 포스트시즌(PS)까지 고려한다면 프로야구의 경기 횟수는 타 프로 스포츠의 두 배 이상까지 늘어난다.경기 수가 많아지면 데이터의 양도 증가한다. 이는 통계학에서 검정력에 영향을 주는 '표본의 크기(샘플 사이즈)'로 이어진다. 통계 분석의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충분한 데이터의 양, 혹은 표본의 크기가 일정 수준 이상 필요하다. 이를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 LLN)'이라고 한다. 야구는 타 스포츠에 비해 큰 수의 법칙을 만족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거의 매일 열리는 경기 덕분에 통계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통계 발전에 화룡점정을 찍어준 게 개방성이다. 데이터가 아무리 쌓여도 공개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서 썩어가고 있었다면, 야구 통계의 발전은 빠르게 한계에 부딪혔을 거다. 하지만 현재 프로야구의 모든 기록지 데이터는 전산화돼 대중에 공개된다.공개된 데이터는 팬들의 '장난감'이 됐지만, 이는 놀이를 넘어 새로운 고찰과 식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야구 기록은 쉽고 재밌다. 간단한 사칙 연산이나 평균, 중앙값, 표준편차 계산만 할 수 있어도 누구나 기록을 뜯어볼 수 있다. 실제로 빌 제임스를 비롯해 세이버 메트릭스의 발전을 이끌었던 사람 대다수는 구단 관계자가 아닌, 야구를 사랑하는 다양한 직업군의 일반인들이었다.이들은 야구를 즐기기 위해 시작했지만, 곧 야구를 바꾸기 시작했다. '머니볼'의 등장 이후 MLB 구단들은 출루율을 중시하게 됐고,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의 의미를 고민하도록 변했다.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이론이 통계와 맞물려 장타를 양산하는 '뜬공 혁명'도 이제 MLB에서는 상식으로 꼽힌다. 통계가 본질을 바꾼 건 아니다. 야구를 지배하지도, 야구를 망치지도 않았다. 다만 본질을 탐구할 뿐이다. 1950~60년대 뉴욕 양키스 간판 스타였던 미키 맨틀은 "우린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놀랄 정도로 무지하다(It's unbelievable how much you don't know about the game you've been playing all your life)"고 했다. 80년 이상 지났지만 여전히 야구는 수수께끼 투성이다. 그때도, 지금도 숫자는 답을 찾고 있을 뿐이다.민경훈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 2023.12.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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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현의 야구 톺아보기] 빌 제임스의 지론과 염경엽의 변칙 운영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대가 빌 제임스는 한 가지 지론이 있다.그는 "불펜 에이스(마무리 투수)를 9회 2점 앞선 (세이브) 상황에서 기용하는 것보다 7회라도 동점일 때 활용하는 게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경기 후반 동점 혹은 역전을 위협받는 '하이 레버리지(High Leverage)' 상황이면 세이브 요건이 아니더라도 마무리 투수를 기용해야 한다는 의미. 제임스는 "(세이브 상황인) 3점의 리드를 지켜내기 위해 불펜 에이스를 사용하는 건 (능력이 좋은) 최고 경영진에게 (중요성이 떨어지는) 화재보험 협상을 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2004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보스턴 레드삭스는 그해 32세이브를 기록한 키스 폴크를 포스트시즌(PS) 전천후 자원으로 활용했다. 뉴욕 양키스와 맞붙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4차전에선 7회, 5차전에선 8회 폴크를 조기 투입해 불을 껐다. 고전적인 방식의 불펜 운영에서 탈피, 월드시리즈(WS) 우승 토대로 삼았다. 여러 실험에도 불구하고 제임스의 '마무리 투수 9회 등판 무용론'은 힘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감독은 불펜 에이스를 이른 타이밍에 투입하는 걸 꺼린다. 그만큼 위험 요소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세이브도 여전히 마무리 투수를 평가하는 중요 지표로 활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일 한국시리즈(KS) 3차전에서 보여준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의 운영이 눈길을 끌었다. 염 감독은 5-4로 앞선 8회 말 시작부터 마무리 투수 고우석을 마운드에 세웠다. 8회가 승부처라고 판단, 마무리 투수를 한 박자 빠르게 교체한 '변칙 운영'이었다. KS 4차전에 앞서 염경엽 감독은 상황을 복기하며 "(1번 타자부터 들어서는) 8회를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우석은 1과 3분의 1이닝 3실점했다. 9회 초 터진 오지환의 결승 역전 3점 홈런이 아니었다면 자칫 역전이 될 뻔했다. 전략은 실패였지만 한편으론 강한 여운을 남겼다. 염경엽 감독은 "내겐 모험이었다. 잘 막으면 '신의 한 수'가 되지만 결과가 안 좋았다. 결국 확률 높은 결정을 하는 건 감독이기 때문에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며 고우석 조기 투입을 후회하지 않았다.LG는 지난 7일 시작한 KT 위즈와의 KS를 앞두고 '선발 약세'라는 평가를 들었다. 선발 삼총사(윌리엄 쿠에바스·웨스 벤자민·고영표)가 건재한 KT를 상대하는 게 버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담 플럿코가 건강 문제로 팀을 떠나는 악재가 발생했다. 실제 시리즈 KS 1차전 케이시 켈리를 제외하면 4차전까지 어느 선발도 6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4차전까지 3승 1패로 우위를 점했다. 선발의 아쉬움을 채우는 건 불펜이다. 인해전술에 가까운 '물량전'으로 KT 타선에 맞선다. 그 배경에는 선수를 적재적소 넣고 빼는 LG 코칭스태프의 판단이 있다. 정규시즌과 다른 변주를 주면서 상대에 혼란을 안기려 한다. 고우석이 9회가 아닌 8회 마운드를 밟은 배경이다. 염경엽 감독은 "(정석대로 하고 패하면 욕을 덜 먹지만) 욕 안 먹겠다고 확률을 떨어트릴 수 없다. 이기는 확률이 가장 높을까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리가 감독"이라며 "결과가 잘못된 부문은 당연히 감독이 책임진다"고 말했다. 스포츠1팀 2023.11.1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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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문의 진심 합심] 리셋할 땐 완전히 바꾸자, 나균안처럼

지난주 칼럼에서 멈춤과 리셋 (reset)을 이야기했습니다. 소개한 A선수는 첫번째 기록에 이어 다음 차례 때도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냅니다. 이와 관련 어느 분께서 의견을 주셨습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믿고 기다려라, 본인의 진가는 시간을 두고 나타난다는 말인가요?’좋은 포인트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멈춤의 원인을 따지지 말라’고 했기에 그렇게 질문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말씀드렸듯이 어떤 이슈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찾으려 무척 애를 씁니다. 그런데 진짜 원인이 아닌 것을 이유라고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이러한 ‘어림짐작 (heuristic)’의 편향 (bias)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균이나 확률을 놓고 심사숙고하지 않고 어림짐작으로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고 빠르게 받아들인다는 내용입니다.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무차별 로켓 공격으로 공포에 떤 영국의 수도 런던에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런던 시내에 독일 스파이가 있어 특정 지역에 로켓포가 떨어진다’는 괴담입니다. 당시 기술로는 로켓이 무차별적으로 떨어진 것일 뿐, 더 많이 폭격받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크지 않았고 우연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폭격이 없는 지역에 첩자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카너먼은 통계학자 윌러엄 펠러를 인용,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유형을 얼마나 쉽게 찾아 내는가.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이 비전문가 눈에는 일정한 유형으로 반복돼 무리를 이루는 성향처럼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힘들어 멈추려는 동료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또는 여러분 스스로에게 따져 묻기 전에 먼저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어떨까요. 원인과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 문제를 해결해 돕겠다는 의도는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러나 작은 단서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거나 충분한 근거없이 단순한 현상을 원인으로 끼워 맞추다 보면 정작 당사자의 마음과 어긋납니다. ‘힘들 때 주위에서 해주는 위로와 충고가 어쩔 땐 더 힘들게 만들더라’는 어느 분의 말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면, 연결되고 싶다면, 힘든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이제 여러분 곁의 누군가가, 혹은 여러분이 멈춤에서 돌아와 리셋 버튼을 누르려 합니다. 그런데 리셋은 그냥 엔진을 다시 돌려 가던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리셋=전략의 재발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전략을 수정해 판을 완전히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는 그동안 나의 패턴에 익숙하기에 리셋 이후의 나를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리셋 효과 중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 저의 실패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야구단에 있을 때 다른 팀의 ‘저평가 우량주’를 찾아 다녔습니다. 잠재력은 큰데 부진을 거듭하는 유망주를 관찰하며 상대팀 미래를 예측하고, 트레이드 가능성을 따졌습니다. 수년 전 프로야구 롯데의 나균안 선수가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하는데 연고지역 출신이기도 해 유심히 살폈습니다. 자체 분석에서 투수로서 성공 가능성에 물음표가 나왔습니다. 구종 가치 등에 대한 평가가 낮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이 선수는 소속 팀의 대들보로 우뚝 섰습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데이터 그 자체는 정확했겠지만 완전히 리셋시킨 경우 분석의 한계가 보입니다. 왜 그렇게 까지 바꾸려는지 선수의 마음을 당장의 숫자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가 계속 수정하고 단련하는 과정을 파악하는데 부족했습니다. 일정한 패턴을 중심으로, 평균치를 활용하는 데이터 분석의 방식이 리셋 이후 여러 시도를 간과했을 수 있습니다. ‘잘 될까’ 의심한 제가 크게 한방 먹었습니다. 나 선수의 리셋을 늦었지만 응원하며 저도 또하나 배웁니다. 리셋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는 현상유지, 매몰비용, 손실회피 등 여러 행동 경제학의 개념과 사례 연구가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 더 깊이 다뤄보겠습니다.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AC)다. 2023.04.24 07:02
프로야구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 오치아이와 나이키 스윙

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2006년 나는 주춤했다. 앞선 세 시즌 동안 연평균 타율 0.320, 홈런 25개를 유지하다가 그해 타율이 2할대(0.291)로 떨어졌다. 홈런은 13개였다. 2006시즌이 끝난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뭘 어떻게 바꿔야 할까.일단 기술 훈련의 기초인 티배팅 때부터 다시 시작했다. 티 위에 멈춰 있는 공을 빵빵 때리면 속이 시원하다. 재미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티배팅 훈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날아오고, 급격히 꺾이는 공을 쫓을 때 잊기 쉬운 '타격의 본질'을 생각하는 훈련이 아니겠는가.정지해 있는 공은 강하게 치기 쉽다. 세게 친다고 무조건 멀리 날아가는 건 아니다. 정확히 쳐야 한다. 그리고 타구에 회전을 줘야 한다. 투수가 패스트볼을 던질 때 강한 백스핀(backspin·역회전)을 만드는 것과 원리다. 강한 백스핀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공의 낙폭을 줄인다. 그러니까 공이 더 날아가게 한다.타구의 백스핀은 어떻게 생성될까. 일단 투구의 가운데를 때려 정타(正打)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배트가 공 아래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방망이는 공과 점(點)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공과 붙어 15~20㎝ 앞으로 나가는 선(線)을 그리기 때문이다. 글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백스핀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배트를 잡은 두 손의 위치(톱 포지션)에서 콘택트 존까지의 거리가 짧아야 한다. 그리고 임팩트 후 폴로 스루(follow through)까지 배트가 살짝 올라가야 한다. 이 스윙 궤적을 옆에서 보면 마치 나이키 로고와 같다. 배트의 회전력, 코킹이 중요하다'나이키 스윙'을 만들기 위해 훈련 때 극단적으로 공을 띄우려 했다. 히팅 포인트를 몸에 최대한 가깝게 두고 간결하게 공을 때리면 강한 백스핀을 만들 수 있다. 이 스윙이 완성 단계에 이르자 배트를 갖다 대기만 해도 공이 다 떴다. 여기서 중요한 게 손목을 돌리는 동작, 즉 ‘코킹(cocking)’이다. 손목을 꺾었다가 풀면서 힘을 만드는 움직임인데, 코킹 동작을 잘 만들어놓으면 간결한 스윙으로도 파워를 전달할 수 있다. 내가 학창 시절만 해도 코킹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손목을 꺾으면 백스윙이 불필요하게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코킹을 하지 않고 곧바로 치라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 시속 150㎞의 스피드로 날아오는 투구의 힘을 이겨내기 어렵다. 요즘 투수들의 강속구를 공략하려면 배트의 회전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코킹은 파워 포지션(힘을 전달하기 위한 준비 동작)에서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타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배트를 뒤로 눕힌 채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면 공을 맞히기는 쉬우나, 빠른 공을 이겨낼 힘이 없다. 강한 타구를 만들려는 타자들은 코킹을 통해 회전력을 확보한다. 여기에 나이키 스윙 궤적이 더해지면 더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 이건 선택의 문제다. 코킹을 많이 하지 않고 콘택트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택한 타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또 나이키 스윙의 메커니즘이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더라도 실천하기 어려우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타격에는 정답이 없다.어퍼컷 스윙이 정답일 순 없다어떤 이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넌 힘이 좋으니까 간결한 스윙으로도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거 아니냐?”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프로 투수들이 던지는 투구에 대응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프로에 들어온 타자가 그 정도 파워가 없진 않다. 프로 선수라면 타고난 힘도 있고, 훈련으로 키운 근력도 있다.내 히팅 포인트는 다른 타자보다 조금 뒤에 형성되는 편이다. 내 힘이 특별해서 타이밍이 늦은 타구를 앞으로 끌고 나오는 게 아니다. 톱 포지션에서 콘택트 존까지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한 박자 늦어 보이는 타구도 안타로 만드는 것이다.결국 힘이 아니라 기술이다. 1990년대 이종범 선배가 힘으로 쳤을까. 아니다. 체격이 작은 이종범 선배는 방망이를 짧게 내려쳤다. 간결한 스윙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었다.동시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던 양준혁 선배도 ‘어퍼컷(uppercut·투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스윙’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지면과 거의 평행한 레벨 스윙으로 정확성을 높였다. 그리고 임팩트 후 팔을 들어올리는 양준혁 선배의 ‘만세 타법’은 나이키 스윙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201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라운드볼(땅볼)보다 플라이볼(뜬공)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건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를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날이 갈수록 그라운드 컨디션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내야 수비력도 향상됐다.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수비 시프트(타구 방향을 분석해 수비수 위치를 조정)까지 발달하면서 땅볼을 때려봐야 안타가 될 확률이 낮아졌다. 땅볼의 가치가 하락하자 타자들은 공을 띄우려 노력했고, 그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 혁명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플라이볼 혁명의 요체다.이 과정에서 어퍼컷 스윙이 유행했다. 타구를 띄우려면 콘택트 존에서 스윙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를 못 쳐도 뜬공을 날렸다면 만족한다”는 MLB 선수도 나왔다. 그러나 올려친다고 해서 타구를 띄울 수 있을까. 그 타구에 힘이 있을까.2015년 이후로 MLB 선수들은 경쟁적으로 어퍼컷 스윙을 시도했다. 성공 사례도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도 꽤 많았다. 뛰어난 성과를 낸 선수라고 해도 그게 정말 어퍼컷 스윙 덕분인지 나는 알 수 없다.이런 트렌드는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KBO리그에도 상륙했다. 2020년 전후로는 너도나도 어퍼컷 스윙을 얘기했다. 참 희한했다. 투수와 타자는 거의 그대로인데, 타격 이론이 이렇게까지 급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론이 아니라면 유행이란 말일까.이와 관련한 얘기를 MLB에서 뛰는 최지만 선수(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나눌 기회가 있었다. “MLB 타자들이 어퍼 스윙에 신경 쓰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아니다. 어퍼컷 스윙으로는 시속 160㎞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에 대응할 수 없다. MLB 타자들도 간결한 임팩트에 집중한다. 그리고 백스핀을 걸기 유리한 스윙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어퍼컷 스윙을 하는 타자 중 좋은 선수는 내 기억엔 없다. 올려 쳐서는 절대로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임팩트 후 배트가 위로 올라가면 톱스핀(top spin)이 걸린다. 백스핀과 반대 개념인 톱스핀은 배트가 앞으로 나가면서 공의 윗부분을 때려 만들어진다. 투수가 던지는 커브가 이런 원리로 떨어진다. 톱스핀이 걸리면, 마치 탁구의 드라이브처럼 공이 점점 가라앉는다. 타자에게 좋을 리 없다.테드 윌리엄스가 이상적이라고 말한 스윙은 억지스러운 어퍼컷이 아니다. 마운드 위에서 오버핸드 투수가 던져서 만들어지는 투구 각도만큼 약간(slight) 올려치는 게 아니다. 그러면 투구와 배트가 만나는 면적(윌리엄스는 임팩트 존이라고 표현했다)이 넓어진다.내 해답은 오치아이 스윙이다그러나 과연 이게 답일까. 물론 훌륭한 스윙인 건 틀림없지만, 저게 정답일까. ‘윌리엄스 스트로크’는 이론적으로 뛰어나다. 다만 타구에 스핀을 걸긴 어렵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윌리엄스의 스윙을 피칭에 비유하자면 무회전 볼 같다. 잘 맞은 타구는 배트와 15㎝ 이상 붙어 나간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배트의 중심과 공의 중심이 붙어 있다면(마치 팜볼처럼) 잘 맞은 것 같은 타구도 외야로 날아가서는 추진력을 잃게 된다. 투수는 패스트볼을 릴리스할 때 검지와 중지로 공을 꽉 눌러서 백스핀을 만든다. 타구도 그래야 한다. 그게 깎아 치기다. 배트로 공의 중심을 정확히 맞힌 뒤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백스핀을 만드는 것이다. 배트가 공의 아랫부분을 감싸 안아 올리는 느낌이다. 공을 때린 뒤 팔을 쭉 뻗는 동작, 즉 폴로스루 과정에서 회전력을 만드는 거다. 이 스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치아이 히로미쓰(일본)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은퇴 후 자신의 타격 비밀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는 ‘공의 아래를 파고들듯 때리라’고 말한다. 이 영상에서 본 오치아이의 페퍼 게임(pepper game, 가까이서 던진 공을 타자가 가볍게 치는 훈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타자들은 정면의 그물을 보고 때리는데 그의 타구 각도는 평균 45도를 넘을 만큼 컸다.선수 시절 오치아이는 경쟁자들에 비해 체격이 작은 편이었다. 키가 1m77㎝로 그리 크지 않았고, 풀스윙도 하지 않았다. 툭 친 것 같은데 그의 타구는 쭉 뻗어 나갔다. 그는 일본에서 홈런·타점·타율왕을 5번씩 수상했다. 오치아이의 타격 비결이 ‘깎아 올려치기’였던 것이다.오치아이의 이론은 내가 찾은 답과 가장 가까웠다. 2007년부터 나는 타구에 회전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티배팅 때부터 이를 의식했다. 임팩트 때 오른손 타자가 배트를 쥔 오른손을 ‘잡아주는’ 느낌으로 공을 친다면 나이키 스윙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스윙을 만들기 위해 페퍼 게임을 할 때부터 노력했다. 지나치게 깎아 치는 바람에 타구가 백네트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지기도 했다. 훈련 때 그렇게 극단적으로 깎아 쳐야 실전에서 유효한 타구 회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치아이의 영상을 보고 “내가 찾은 방법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며 안심했다. 무엇보다 나이키 스윙은 나와 맞는 타법이었다. 물론 그런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영상에 나오는 젊은 선수들도 오치아이처럼 치려다가 헛스윙을 연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 훈련을 통해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나이키 스윙은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메커니즘이다.고교 시절 날 보고 “오치아이의 타격과 닮았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오치아이의 영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백스핀을 만드는 스타일이었던 거다. 프로에 와서 슬럼프에 빠진 걸 계기로 나이키 스윙을 더 발전시켰다. 난 스윙을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더 멀리 칠 수 있었다. 2007년 다시 홈런 20개 이상을 때려내고, 2008년 홈런왕(31개)에 올랐던 비결도 내 스윙을 완성한 덕분이었다. 내 전성기가 시작된 거다. 2009년 경기 중 뇌진탕 부상을 입기 전에는 내 스윙은 나름대로 완성 단계였다. 타석에서 어떤 투수의 공이라도 다 쳐낼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큰 부상을 당해 상승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면, 내 전성기가 더 길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KBS 해설위원, 정리=김식 기자 2023.01.30 07:30
메이저리그

[레인보우 리포트] 다가올 도루의 증가,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한동안 야구는 도루에서 멀어져갔다. 세이버 메트리션인 빌 제임스는 "성공률이 70%를 넘지 못한다면 도루하지 말라"고 했다. 제임스뿐 아니라 세이버 메트리션들은 대부분 도루에 부정적이었다. 뛰다 아웃을 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에 비하면 득점 기여도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하더라도 성공률을 따지라고 요구했다. 부상 위험도가 높은 것도 문제였다. 프로 구단 입장에서 도루는 득보다 실이 많은 행위였다. 장타의 증가는 메이저리그(MLB)와 도루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2015년 MLB에 타구 추적 시스템인 스탯캐스트가 도입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 ‘플라이볼 혁명’이 찾아왔다. 선수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쳐내고 더 많은 득점을 만들었다. 뒤 타자가 장타를 만들 수 있다면, 앞 타자가 2루를 훔쳐야 할 필요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루의 득점 가치가 낮아진 이유다. 플라이볼 혁명이 이뤄진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MLB의 기대 득점표를 살펴보면 도루 등 주자 진루의 손익 분기점은 제임스가 주장한 70%가 아닌 71.4%였다. 도루의 가치가 하락하고 도루 시도가 줄어든 상황에서 최근 MLB 사무국은 재밌는 시도를 준비 중이다. 2023년부터는 피치 클락이 도입되어 투수는 주자가 없는 경우엔 15초, 주자가 있는 경우에는 20초 안에 투구를 시작해야 한다. 또 변의 길이가 15인치(38.1㎝)인 정사각형 베이스를 18인치(45.72㎝)로 늘린다. 타석당 견제구 혹은 투수 판에서 발을 빼는 횟수는 2번으로 제한된다. 이는 도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화다. 피치 클락으로 인해 투수는 주자를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해졌다. 베이스 크기를 늘릴 시 각 루 간의 간격이 4.5인치(11.43㎝) 줄어들고 리드 폭이 늘며 베이스를 오버해서 슬라이딩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또 견제 제한으로 인해 주자는 투수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도루 장려가 정말로 도루 증가를 가져올까? 사무국은 위 제도를 2021년 마이너리그 각 레벨에 먼저 실험했다. 트리플A에서는 베이스 크기를 늘렸고 상위 싱글A에서는 투수가 투수 판을 밟은 채 견제구를 던질 수 없게 했으며 하위 싱글A에서는 타석당 견제구를 2개만 허용했다. 이어 올해 트리플A에서는 기존의 베이스 크기 확대, 견제 횟수 제한과 함께 피치 클락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2022년 트리플A 경기당 도루 횟수가 2021년 0.95개에서 1.18개로 증가했다. 도루 성공률 역시 75.62%에서 78.47%로 증가했다. 물론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트리플A 사례를 통해 내년 MLB에서 도루가 증가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도루 시도가 많아지고 성공도 많이 한다면 도루의 손익 분기점에 변화가 생길까? 가장 많은 주자가 도루를 시도한 상황은 주자 1루이다. 이 상황에서 가정해보자. 단순하게 1루에서 2루로의 도루가 늘어난다면 1루 상황에서의 기대 득점은 늘어날 것이다. 이때 두 상황의 기대 득점은 해당 상황에서 이닝이 끝날 때까지 기대할 수 있는 평균적인 득점을 말한다. 1루 주자가 2루로 이동해 주자 1루에서 득점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해당 이닝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1루 도루의 손익분기점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자 1루 상황에서 도루를 성공한 타석의 수가 늘어도 그 수치가 극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표를 통해 알 수 있듯, 도루 성공이 차지하는 타석의 비율은 크게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도루 성공 이후 득점으로 이어진 타석만을 또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도루가 실질적으로 득점에 영향을 준 표본은 많지 않다. 즉 도루 증가는 손익분기점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루가 증가한다면 리그의 어떤 부분에 변화를 주목해야 할까. 공격팀 입장에서 도루 성공률이 높아진다면 도루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수비 팀이다. 도루가 많아지고 투수가 견제할 수 없다면 수비팀은 다른 대응책이 필요하다. 특히 경기 후반 접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투수들도 견제 대신 슬라이드 스텝을 통한 시간 단축을 시도하겠지만,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신 포수가 견제를 하거나 피치 아웃을 이용한 주자 견제 활용 폭이 커질 수 있다. 투수와 달리 포수의 견제는 새 규정에서도 제한이 없다. 주자들이 과감한 리드와 적극적으로 도루 시도를 할 가능성이 큰 만큼 과감한 포수 견제와 피치 아웃도 이전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 다만 이 부분을 좌우하는 건 포수의 송구 능력과 노련함이다. 위협적인 주자들이 줄어든 동안 묻혀왔던 강견 포수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겠다. 올해 포수 팝 타임(포수가 2루까지 송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 1위 J.T 리얼무토(필리델피아 필리스·1.82초)는 이미 현역 선수 중 최고의 포수로 꼽힌다. 여기에 2위 레네 핀토(탬파베이 레이스), 3위 호르헤 알파로(샌디에이고 파드리스), 4위 크리스티안 베탄코트(탬파베이·이상 1.89초) 등은 향후 가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한 세기 이상 이어진 야구는 주기적으로 환경이 변해왔고, 선수들도 여기에 적응해왔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는 내년 MLB의 데이터는 야구계가 연구하기에 재밌는 자료가 될 것이다. 포수의 가치가 높아지고, 홈런에 치중했던 야구 말고도 빠르고 수비력을 갖춘 야구가 다시 주목받을 수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고 성과를 거두는 팀이 나타난다면, 그들이 새로운 '트렌드 세터'가 될 수도 있다. 순재범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경상국립대학교 정보통계학과) 2022.10.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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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리포트]WAR,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

선수 평가 척도에서 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표가 됐다. 서로 다른 포지션과 시즌에서 활약한 선수를 일관된 하나의 숫자로 평가할 수 있다는 편의성, 작은 단위의 숫자로 표현되어 외우기 쉽다는 직관성,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지표로써 접근성 덕분이다. 여러 장점에 힘입어 WAR은 세이버메트릭스를 대표하는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WAR이 선수 평가의 참고 지표 정도를 넘어 오남용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야구팬들의 선수 줄 세우기 기준에 WAR만을 활용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방송에서는 WAR 지표 하나만을 콕 집어 선수들을 평가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WAR 지표의 장점이 역으로 다른 훌륭한 지표들을 무시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WAR은 타율이나 출루율처럼 통일된 기준이 없기에 무작정 신뢰할 수는 없는 지표다. 실제 2022시즌 KBO리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WAR은 산출 기관별로 크게는 1~2가량 차이를 보인다. 여러 기준에 따라 같은 선수를 두고도 서로 다른 값이 내놓고 있다. 이유가 있다. 우선 WAR의 어원인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대체 선수'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대체 선수란 1군과 2군을 오가는 비주전선수로 이따금 주전 자리가 빌 때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을 갖춘 선수를 의미한다. 이들은 각 리그에서 최저연봉 수준의 임금을 받고, 언제든지 타팀으로의 이적과 영입이 가능하다. 바로 이들이 WAR 0의 값을 가지며 WAR 계산의 기준이 된다. 훌륭한 팜 시스템과 많은 인구, 엄청난 시장 규모에 힘입어 선수 수급이 수월한 미국은 WAR 지표의 기준으로 대체 선수를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선수의 정의는 대단히 추상적이다. 타율, 출루율, 평균자책점 등 일정한 기준이 없고 리그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개념이다. 특히 메이저리그(MLB)에 비해 대체 선수 수급이 어려운 KBO리그 환경에서의 대체 선수 기준은 더욱 모호해진다. 이에 반해 WAR 계산 방식은 MLB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KBO리그의 WAR은 출발점부터 신뢰도에서 감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승리 기여도'는 어떨까? WAR 계산을 위해서는 우선 타자, 투수, 수비수, 주자로서 리그 평균에 비해 팀에 기여한 정도인 리그 평균 대비 득점 기여도(RAA)가 필요하다. RAA을 활용해 '대체 선수' 대비 팀에 기여한 점수(RAR)를 계산한다. 이후 피타고리안 계산법을 활용해 RAR을 승리로 환산하면 WAR을 산출할 수 있다. 그런데 RAA 계산을 위해 활용하는 지표가 산출 기관별로 제각각이다. 타격기여도 측정은 대체로 선형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가중 출루율(wOBA)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외의 영역에서는 기관별로 각기 다른 지표를 활용한다. MLB의 WAR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대표적인 2개 기관(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의 WAR인 bWAR, fWAR 역시 기준이 다르다. 투수 기준 bWAR은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을 포함한 전체 실점(RA9)을 평가 기준으로 한다. 반면 fWAR은 비자책점과 수비의 영향을 제거하여 삼진, 홈런, 볼넷으로만 구성된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FIP)을 활용한다. 같은 투수라도 전체 실점에서 비자책점 비중이 크거나 피홈런의 비중이 낮은 선수일수록 fWAR의 평가는 bWAR에 비해 우수하다. 수비 기여도 척도 또한 DRS(디펜시브 런 세이브), UZR(얼티메이트 존 레이팅)로 나뉜다. 두 수비 지표는 평가를 위해 그라운드 구획을 나누는 방법, 수비 위치별 파크팩터 적용 범위, 선수 간 수비 활약을 비교하는 데이터의 표본 크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외의 피타고리안 승률 활용 정도, 파크팩터 반영 범위, 포수 평가 등 WAR의 다양한 구성 변수가 산출 기관별로 제각각이다. KBO리그도 마찬가지로 스탯티즈, KBreport, 스포츠투아이의 WAR이 서로 다른 지표를 활용한다. 위의 그래프가 같은 선수를 두고도 WAR 값에 차이를 보이는 이유이다. 한편 수비 기여도 측정은 WAR의 또 다른 골칫거리이다. 일단 타석에 들어서면 측정할 수 있는 타격 능력과는 다르게 수비 능력 측정은 타구가 본인 근처로 날라왔을 때 가능하다. 수비 기회는 타격 기회에 비해 꾸준히 주어지지 않는다. 타격 기회에 비해 수비 기회의 횟수가 적어 충분한 표본 크기를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특정 수비가 훌륭했거나 형편없다고 평가할 기준도 모호하다. 타격 결과는 아웃/루타/홈런/볼넷 등으로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수비 평가 기준은 수비 범위, 포구 능력, 송구의 정확성과 빠르기 등으로 나뉜다. 타격 결과처럼 범주화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게다가 타구 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사람이 직접 눈으로 수비 상황을 지켜보면서 주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KBO리그 산출 기관들은 수비 측정에 애를 먹는다. 가령 스탯티즈는 수비 기여도를 포함한 타자 WAR 이외에 수비 기여도를 제외하고 포지션 보정만을 추가한 타자 WAR*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WAR 산출 기관조차도 본인의 수비 평가에 100%의 확신이 서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WAR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팬그래프의 지침을 참고할 만하다. 팬그래프는 WAR 차이가 크지 않은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릴 때 소수점 아래에서의 차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수비 능력이 주된 선수의 WAR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KBO리그에서 똑같은 정상급 외야수지만, 이정후와 나성범은 대체로 2 이상의 WAR 차이를 보인다. 이 경우에는 이정후가 확실하게 더 뛰어난 선수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점 범위의 WAR 차이를 보이는 김광현과 에릭 요키시의 우열은 WAR로 가릴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뛰어난 수비로 WAR의 상당한 부분을 채운 박해민과 최지훈의 WAR도 100% 믿기는 어렵다. WAR은 훌륭한 선수 평가 지표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WAR의 소수점 단위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의 의미부여를 삼가고, WAR 이외의 다른 훌륭한 지표들도 함께 참고하는 것이 WAR의 올바른 사용법이다. 민경훈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통계학과) 2022.10.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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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리포트]프로야구에 찬물 끼얹은 양극화… 10구단 체제 이후 최악

2022년 프로야구는 지난 2년의 어려움을 뒤로한 채 우리 곁으로 온전히 돌아왔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사회적으로 크게 일었던 '보복 소비' 열풍은 KBO리그를 비껴갔다. 9월 20일 기준으로 2022시즌 프로야구의 평균 관중 수는 경기당 8224명이다. 10개 구단 체제 이후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관중 1만명 붕괴(코로나로 인해 관중 입장이 제한됐던 2020~2021시즌 제외)가 확실하다. '양극화'는 프로야구 재도약에 찬물을 끼얹은 주범 중 하나다. 작년만 하더라도 치열한 순위싸움이 시즌 끝까지 이어졌다.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가 정규시즌 우승을 다퉜다.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SSG 랜더스는 가을야구 진출을 두고 마지막 144번째 경기까지 치열하게 경쟁했다. 올 시즌은 사정이 다르다. 시즌 초반부터 일부 팀들이 승리를 독식했다. 1위 싸움은 SSG와 LG 두 팀 만의 경쟁이 됐다. 5위 싸움도 5할 아래서 이뤄졌다. 비단 1위와 5위 싸움이 아니더라도 2022시즌에는 '역대급'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 시즌 리그 양극화 현상을 RSD 지수(ratio of Actual to idealized standard deviation, 팀 승률 기반으로 리그 내 전력 평준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살펴봤다. RSD는 1에 가까울수록 리그 내 전력 균형이 좋고, 1보다 높을수록 불균형 정도가 심각함을 나타낸다. 9월 20일 기준 2022시즌 RSD 지수는 2.30으로 측정되었다. 10개 구단 720경기 체제가 자리 잡은 2015시즌부터 순위를 매겨보면 2019시즌(2.34)에 근접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범위를 21세기 전체로 넓혀도 세 번째로 높은 값이다. 다만 2002시즌의 경우 당시 롯데 자이언츠가 일찌감치 리빌딩을 선언, 순위경쟁을 포기하며 최악의 승률(0.265)를 기록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올 시즌은 최하위 한화 이글스도 승률 0.333을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2022시즌은 2019시즌과 더불어 21세기 최악의 양극화가 벌어진 해로 간주할 수 있다. 수도권 팀과 지방 팀 격차도 알아봤다. 역시 2015시즌부터 측정한 결과 올 시즌의 수도권-지방 팀 평균 승률 격차는 0.126으로 2019시즌(0.154)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단순 순위로 비교하면 더 직관적이다. 2019시즌 KT를 제외한 수도권 4개 팀 두산, 키움, SK 와이번스, LG가 1~4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역시 두산을 제외한 SSG, LG, KT, 키움 수도권 4개 팀이 1~4위를 달리고 있다. 한편 2017시즌 이후 수도권 팀의 평균 승률은 단 한 차례도 지방 팀에 우위를 내주지 않았다. 우승 횟수 기준으로 2015~2021시즌 수도권 팀은 5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나, 동기간 지방 팀은 2회에 불과하다. 올 시즌의 우승팀 또한 수도권 팀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기에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팀 역사와 TV 시청률, 원정 관중 동원력에서 대대로 우위를 점했던 지방 팀들의 동반 부진이 올해에도 이어지며 리그 전체의 흥행을 저해하고 있다. 올 시즌 양극화의 양상은 지난 2019시즌과 상당히 유사하다. 두 시즌 모두 10구단 체제 이후 팀 간 승률 격차와 수도권~지방 팀 격차에서 1·2위를 다퉜다. 흥행 성적표 역시 부진했던 2019시즌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19시즌은 프로야구 인기에 본격적으로 빨간불이 켜지는 시점이었다. 창원NC파크 개장 효과에도 불구하고 총 관중이 2018년 대비 10%가량 하락, 800만 관중 시대가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전 시즌 LG, 두산, SK가 달성한 100만 관중 기록도 2019시즌 LG만 해냈다. 직관 성적만큼이나 '집관' 성적도 저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9시즌 정규시즌 평균 TV 시청률은 0.88%로 2018시즌(0.97%)보다 9.3% 감소했다. 2019시즌은 리그 양극화가 프로야구 흥행에 큰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수치로 증명했다. 2022시즌 또한 9시즌(2020·2021시즌 제외) 만에 600만 관중 시대가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찍이 경고등이 켜졌다. 코로나 대유행의 늪을 겨우 빠져나와 재도약을 꿈꾸는 프로야구에 양극화가 찬물을 끼얹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2022시즌 양극화는 정도의 차이일 뿐 최근 몇 년간 지속하여 온 현상이다.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한 2017시즌부터 지금까지의 6시즌 중 4시즌의 RSD 값이 2를 초과했다. 마찬가지로 수도권 팀의 승률이 지방 팀을 앞서는 현상도 5시즌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 KBO(한국야구위원회) 사무국이 전력 평준화를 위해 1차 지명 폐지와 샐러리캡 도입에 서둘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동성이 실종된 야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 대한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야구의 경기 시간과 리그 진행 기간이 타 종목보다 길지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2020년 여름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태형 두산 감독이 이를 한마디로 정의했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예측 불가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점수 차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꼴찌 팀이 1위 팀을 이긴다. 전년도 부진했던 팀이 이듬해 갑작스럽게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스포츠가 야구다. 이렇듯 역동적이기에 많은 팬이 야구의 매력에 빠지고, 응원팀이 잠시 부진한들 쉽사리 관심을 끊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스포츠에 누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볼 것인가.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리그 양극화에 조금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 민경훈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통계학과) 2022.09.2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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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리포트] 사직구장 커져도 소용 없다고? 롯데 투수들도 할 말 있다

지난겨울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 사직야구장을 리모델링했다. 홈플레이트를 2.9m 뒤로 밀었고, 4.8m였던 외야 펜스를 6m로 높이는 등 홈구장을 투수 친화적으로 바꿨다. 지난해 롯데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4.8km/h로 KBO리그에서 가장 빨랐다. 이런 빠른 공을 살릴 방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직야구장을 투수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바꾼 것이다. 지난해 롯데는 10개 구단 중 홈에서 가장 많은 실점(435점)을 했다. 올 시즌도 홈에서 389실점(울산구장 제외시 374점)으로 가장 많은 점수를 내주고 있다. 그렇다면 바뀐 구장의 효과는 없는 것일까? 또 롯데가 꿈꿨던 '투수 왕국'은 허상이었을까? 사직구장에서 65경기를 마친 14일 기준으로 바뀐 사직야구장과 함께 올 시즌을 들여다봤다. 2021~2022년 사직야구장에서 나온 홈런을 계산하면 유의미한 경향성이 보인다. 작년에는 원정팀들이 사직에서 롯데보다 21개 더 많은 홈런을 때려냈다. 올해는 4개 차이다. 롯데의 손해가 줄어든 셈이다. 홈·원정경기 전체 피홈런을 계산해도 선전했다. 롯데 투수진은 지난해 홈런 133개(전체 3위)를 허용했지만, 올해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76개의 홈런만 맞았다. 탈삼진과 볼넷 수치에서도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K/9(9이닝당 삼진)은 지난해 7.47개(4위)에서 올해 8.35개(1위)로 늘어났다. 반면 BB/9(9이닝당 볼넷)은 4.65개(9위)에서 3.47개(5위)로 감소했다. 탈삼진이 늘고, 볼넷은 줄어든, 아주 이상적인 결과다. 인플레이 타구에는 운과 수비가 작용한다. 인플레이 타구를 제외하고 위에서 언급한 탈삼진, 볼넷, 피홈런은 순수하게 투수의 책임이라 볼 수 있는 세 가지 지표들(TTO·Three True Outcomes)이다. 롯데 마운드는 이를 기반으로 한 지표인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가 뛰어났다. 지난 시즌 롯데의 FIP는 8위에 불과했으나 투수들이 성장한 올 시즌에는 2위(3.63)로 껑충 뛰어올랐다. 즉 롯데의 투수들은 새로운 구장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이뤄냈다는 뜻이다. 하지만 팀 평균자책점과 함께 살펴보면 앞선 지표들이 무색하다. 올해 롯데의 팀 평균자책점은 4.53으로 9위에 그치고 있다. 팀 평균자책점과 팀 FIP 값을 뺀 값을 살펴보면 0.89로 리그에서 차이가 가장 크다. 평균자책점의 경우 투수의 몫뿐만 아니라 운과 수비의 영역도 들어가는 지표이다. 그렇기에 투수의 책임으로 몰아가기에는 불공평한 부분이 있으며 운과 수비의 영역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올 시즌 롯데의 수비는 어땠을까? 팀의 수비력을 판단하기 위한 지표로 인플레이 타구 중 팀이 아웃으로 처리한 비율인 DER(Defensive Efficiency Ratio, 수비효율)이 쓰인다. DER은 1에서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인 BABIP를 뺀 값이다. 롯데의 DER은 0.659로 리그에서 가장 좋지 않다. 즉 롯데 야수들은 다른 팀 야수들보다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많이 처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특히 포지션 조정을 한 스탯티즈 외야 수비 WAA(Wins Above Average, 리그 평균 대비 승리 기여)는 -4.743으로 가장 좋지 않았으며, -1.926으로 9위인 두산 베어스와의 차이도 컸다. 결국 롯데 야수들은 팀 평균자책점이 높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투수들의 활약에 비해 야수들의 수비력은 아쉬웠다. 올 시즌 넓어진 사직야구장 외야로 인해 외야 수비의 중요성이 일찍이 언급됐다. 롯데 구단도 이를 인지했다. 그래서 롯데는 외야 수비가 약한 손아섭과 결별을 택했다. 또 유격수 딕슨 마차도와 재계약하지 않았고, 외국인 타자로 외야에서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보여준 DJ 피터스를 영입했다.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손아섭까지 보내면서 강도 높게 외야진을 개편했다. 하지만 피터스는 타격 부진으로 방출됐다. 또한 고승민, 잭 렉스, 전준우, 황성빈 등 외야에 포진된 선수들이 수비에서 부진하다. 변화한 사직 야구장은 투수들에게 성적 향상의 기폭제였다. 반대로 롯데 외야수들은 넓어진 수비 범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홈구장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환경이 되었고, 투수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롯데 투수들은 분명 할 말이 있었다. 우리는 수비 뒷받침이 절실했다고. 순재범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경상국립대학교 정보통계학과) 2022.09.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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