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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겜2’ 박성훈이 그린 ‘트젠 군인’…엇갈린 시선은 ‘여전’ [IS포커스]

“포기하면 넌 천지신명이 아니라, 내 손에 먼저 죽어.” (‘오징어 게임2’ 중 현주)실패하면 목숨을 잃는 5인 6각 게임 중 연이은 실수로 패닉에 빠진 무당 선녀에게 같은 팀의 현주는 이렇게 말한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탓하기보단 거칠게나마 북돋는 현주는 확실히 특별한 트랜스젠더 캐릭터다. ‘오징어 게임2’에 등장한 이 본 적 없던 신선한 캐릭터에 호감과 아쉬움 등 다양한 시선이 따르고 있다.‘오징어 게임2’에서 처음 등장한 현주는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MTF 트랜스젠더로, 성확정 수술 비용을 마련하고 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게임에 참가하게 됐다. 이는 전편에서 신용불량자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민 등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아울러 다뤄온 황동혁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 황 감독은 “현주란 인물이 가진 인간에 대한 믿음,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좋은 시선으로 보여주면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했다”고 밝혔다. 현주 역은 배우 박성훈 캐스팅 소식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트랜스젠더라는 설정이 알려지자, 국내외 일각에선 성소수자 역에 성소수자를 캐스팅하지 않은 것에 관한 지적도 일었다. 미국 NBC뉴스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트랜스젠더 역할에 이성애자 남성을 캐스팅하는 것은 다양한 인종의 성소수자를 모욕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지난달 26일 전편 공개 후에도 과장된 ‘여성스러움’을 수행하기보단 담백한 톤을 가진 현주를 두고 스테레오 타입을 지양한 현실적인 트랜스젠더의 모습이라는 호평과 긴 머리와 가슴 분장, 조금 높인 목소리 톤이 단지 ‘여장’에 가깝다는 지적이 동시에 관측됐다. 이에 대해 박성훈은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현주가 절대 희화화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참가자 중 가장 이타적이고 배려심 강한 인격적 측면에 집중해 연기했다”며 “과도한 목소리 변조와 과장된 제스처를 가장 경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주의 게임 참여 동기는 성전환이지만, 게임 중엔 성정체성보다 이타심이 돋보인다. 특히 생존경쟁에서 후 순위로 밀린 노모와 그의 아들, 약해 보이는 소녀, 무당과 팀을 이뤄 마이너의 승리를 보여줘 응원 받았다. 트랜스젠더에 선입견이 있는 기성세대 금자(강애심)가 “난 (현주가) 이쁜 거까진 모르겠고, 이래 보니깐 괜찮아요”라며 이해를 뛰어넘은 유대를 보이는 장면은 감동적이다.또 특전사 중사 출신인 현주는 ‘오징어 게임2’ 하이라이트에서 능숙한 사격 실력으로 감시카메라를 백발백중 부숴 통쾌함을 안긴다. 그러나 이런 군인 설정은 지난 2021년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아 강제 전역을 당한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를 참조했기에 현실과의 괴리가 안타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비수술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출입 장면을 둘러싼 누리꾼들의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박성훈이 자신의 SNS에 일본 음란물 표지를 실수로 잘못 게시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비판에 배우에 대한 비난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 박성훈이 차기작인 ‘폭군의 셰프’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현실과 픽션 사이,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대중 작품에 넣었다는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다루는 드라마는 국내에서 거의 없었다”며 “실제 당사자성을 가진 배우가 연기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 국내 여건상은 앞서간 이야기다. 또한 박성훈의 해프닝 역시 캐릭터와는 분리해서 볼 문제”라고 짚었다.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또한 “특히 서구시장에선 성소수자 문제가 주요한 이슈이다.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해 글로벌 흥행 기록을 새로 쓰는데도 뒷받침이 됐을 것”이라며 “픽션이 현실과 다르다고 기만적이라는 건 지나친 비판일 것이다. 그보단 고 변희수 하사 사례를 참조하는 등 고증을 높인 점을 의의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이 같은 평들에 대해 박성훈은 “성소수자에 사회적 편견을 가진 분들의 시각이 현주를 통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진다면 뿌듯할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5.01.16 06:00
영화

[무비로그①] 상당한 남다름, 낯선 곳에서 ‘보고타’ [IS리뷰]

“상당혀.”대사처럼 곱씹게 되는 한 마디다. 보통은 콜롬비아를,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한 작은 한국 사회를 상상해 볼 일은 없다. 새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하 ‘보고타’)은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을 본 적 없는 세계로 초대한다. 그 모습은 상당히 광활해서 놀랍고, 상당한 역동감으로 가득 차서 쌉싸름하다.‘아싸라비아 콜롬비아’도, 커피의 나라도 아닌 콜롬비아를 보기 위해 작품이 택한 시대적 배경은 1997년 IMF가 터진 직후다. 의류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콜롬비아로 도망치듯 이민 온 국희(송중기)의 눈으로 현지 풍경을 담으며 영화는 출발한다. 폭력 심지어 죽음까지 도사린 어수선한 지구 반대편 도시에 긴장한 국희는 첫 강도를 당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다. 맨몸으로 달리는 오토바이를 정신없이 쫓아 당도한 언덕에서 국희는 보고타를 온몸으로 마주한다. 이역만리에서 믿을 건 동향 사람이라고 국희 가족은 아버지의 월남전쟁 때 후임인 박병장(권해효)을 찾아간다. 박병장은 산 안드레시토 시장에 터를 잡은 한인상인회의 실세다. 평화시장에서 밀수한 속옷을 팔며 큰돈을 벌었다. 돌아갈 곳 없어 물러설 수도 없는 국희의 생존본능은 박병장은 물론, 2인자 수영(이희준)의 눈에 들게 되고, 일을 배우게 된 국희는 ‘미국 가는 톨게이트’ 쯤으로 생각했던 콜롬비아에 눌러앉게 된다. 그렇게 장장 12년의 세월 속 국희의 일대기를 영화는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어딜 가도 변치 않는 한국 사람의 특성일까, 콜롬비아의 각박한 환경 탓일까. 국희의 삶과 그가 속한 한인 세계를 통해 영화가 진득하게 조명하는 건 생존경쟁이다. 작게는 집구석부터 한인상인회 내부의 갈등이기도, 콜롬비아 현지의 차별을 향한 투쟁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같은 톤은 결코 아니다. 각 세력 간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진짜 총성과 비열한 수가 난무하는 범죄 누아르 장르로 팽팽하게 그린다.우정을 주고받았던 인물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맞으며 국희는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도, 눈엣가시가 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얼굴을 휙휙 바꾸는 국희 역 송중기가 확실한 중심을 잡는다. 국희가 가진 소년의 순수함 그리고 혈기와 대비를 이루는 속성을 갖춘 인물들과 신구세대 대결도 ‘보고타’의 재미 요소다. 수영이 도전하는 신세대의 패러다임도, 박병장이 지키려는 구시대의 가치도, 그리고 그 근본을 직시하는 국희의 남다른 성장도 얽히고설키며 서스펜스를 높인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국내에선 생소했던 콜롬비아 현지 로케이션을 한국 영화 최초로 택한 것도 상당한 한 수다. 광활한 풍광과 그 속의 역동적인 시장 풍경은 시각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압도할 뿐 아니라, 타향살이 하는 등장 인물들에게도 여러 벽처럼 압도한다. “되는 일도 없지만, 안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는 대사처럼 법조차 뛰어넘고 펼쳐지는 총격전과 카체이싱 장면이 확실한 볼거리면서도, 타지에서 결국 우리 안의 보편적인 모습을 마주하면서는 곱씹을 거리도 안긴다.2019년 크랭크인 했으나 팬데믹 직격타를 맞아 촬영 중단과 재개 등 우여곡절을 거쳐 무려 5년만에 관객과 만나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창고영화’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엔 시차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날 대한민국, 혹은 세상 어디든 유효한 메시지인 터다.오는 31일 개봉하는 2024년 마지막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 한 해의 끝, 새로운 시작을 써 내려갈 뒤숭숭함을 다른 렌즈로 마주 해보면 어떨까.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4.12.23 06:00
예능

‘로드 두 킹덤’ 첫 탈락팀 발생... 최하위 에잇턴 반등할까

‘로드 투 킹덤 : 에이스 오브 에이스’ 첫 탈락 팀이 발생한다.오는 10일 방송되는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로드 투 킹덤 : 에이스 오브 에이스’ 4화에서는 2차전 ‘아이덴티티’ 미션이 시작된다. 지난주 방송에서는 1차전 ‘브이에스’ 미션이 마무리되며 반전을 거듭한 결과가 발표됐다. 앞서 진행된 평가전 최하위의 설움을 딛고 크래비티가 1차전 팀 랭킹 정상에 오르는가 하면, 평가전 팀 랭킹 1위였던 에잇턴이 1차전 최하위로 수직 하락하는 등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그려졌다.첫 탈락이 걸린 이번 2차전 ‘아이덴티티’ 미션에서는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팀 정체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1, 2차전 누적 점수로 탈락 후보가 결정되는 만큼 1차전 최하위 7위를 기록한 에잇턴을 비롯해 반등이 필요한 6위 더크루원, 그리고 상위권 팀들까지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그동안 한 명의 에이스가 각 팀을 대표했다면 이번에는 에이스가 한 명 더 합세해 치열한 생존경쟁에 나선다. 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4.10.09 09:33
예능

김병만→이승기, 정글 임장 나선다…치열한 생존경쟁 시작 (생존왕)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 4팀 팀장인 김병만X추성훈X이승기X박태환이 생존지 결정을 위해 직접 ‘정글 임장’에 나선다. 7일 오후 10시 첫 방송되는 TV조선 신규 서바이벌 예능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는 피지컬·정글·군인·국가대표 총 4팀으로 나뉜 12명의 정예 멤버가 정글 오지에서 10일간 자급자족으로 살아남으며 생존경쟁을 펼친다. 한정된 물자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되는 곳은 ‘생존지’ 즉 베이스캠프다. 베이스캠프 후보들을 둘러보고 ‘생존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 김병만은 “각 팀의 팀장들과 같이 다니며 한 곳씩 분양해 주겠다”라며 ‘정글 부동산’ 개업 소식을 전했다.군인팀이자 육군첩보부대 ‘HID’ 출신의 강민호는 “물가가 좋고 주변에 대나무가 있어야 한다. 바나나 나무가 있으면 더 좋다”며 최적의 생존지 조건을 팀장 이승기에게 급히 전수했다. 국가대표팀 박태환도 팀원 김민지와 정대세에게 어디가 좋은지 의견을 구했다. 정대세는 “문명은 항상 강가에서 탄생한다”며 물가를 적극 추천했다. 그런 가운데 피지컬 팀 추성훈은 “잠이 제일 중요하다”며 잠자기 좋은 곳을 사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동현은 “편한 곳 가도 힘들다. 방송 욕심내면 안 된다”며 추성훈을 단속했다. ‘정글 임장’에 나선 팀장이 과연 어떤 생존지를 선택해 팀원들에게 돌아가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편, 이승기는 최종 선택한 생존지에 집을 짓던 중 정체불명의 개미와 거미를 발견했다. ‘부동산 사기(?)’ 의심에 휩싸인 군인팀은 “죽거나 하는 거 아니겠죠?”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게다가 딱딱한 과일까지 머리 위에서 마구 떨어지자 군인팀은 “여기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며 공포에 질렸다. 특전사 출신의 생존력 만렙 이승기가 어쩌다 이리 험난한 생존지를 선택한 것일지, 그 이유는 7일 오후 10시 첫 방송되는 ‘생존왕 : 부족전쟁’에서 공개된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10.07 08:44
예능

[정덕현 요즘 뭐 봐?]‘더 커뮤니티’, 보다 나은 사회는 가능한지 묻는 신개념 서바이벌

사실 친한 친구들 간의 술자리에서도 정치적 성향 같은 건 드러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어차피 설득하려 해봤자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다만 서로 다른 성향 차이로 분란만 만들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살아왔던 삶의 환경이 저마다 다른 우리들은,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꼰대라고 비하하기도 하고, 빈부의 차이로 상대를 마치 괴물처럼 혐오하기도 한다. 정치는 바로 그런 차이들을 오히려 부각해 편을 가르고 그래서 선거를 통해 승자가 되면 마치 그들의 성향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원하는 정의인 양 호도한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분노와 배척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골은 그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까.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적인 신개념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의 네 가지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서민과 부유, 개방과 전통으로 출연자들을 구분해 그 사상적 성향을 꼬리표처럼 채워놓은 건 마치 성향이 다른 출연자들의 치열한 설전과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자극적인 서바이벌을 보여주려는 판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세 이런 예상은 이렇게 성향이 다른 이들이 서로 배척하고 경쟁하기보다는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며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깨져버린다. 물론 몇몇 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공존을 꿈꾸는 일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환상이자 이상이라고 지적하지만, 그들 역시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토론을 통해 합의된 사안들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서바이벌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제작진은 이들 사이에 분란이 생길 만한 여러 함정들을 세워 놓았다. 불순분자라는 존재를 심어 놓아 이들이 화합을 이끌어가려는 분위기에 ‘불신’의 불씨를 심어 놓았고, ‘사상검증’이라는 형태로 누군가의 성향을 맞추면 그를 탈락시키고 그 돈을 모두 획득할 수 있는 룰도 세워 놓았다. 하지만 커뮤니티라는 틀 안에서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공존’의 추구가 이상이라 여기는 현실주의자들조차 공론을 따르게 만든다. 물론 현실주의자들은 개별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런 선택들이 개인적 욕망을 속이는 ‘위선’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봄으로써 통제되는 욕망에 의해 커뮤니티는 유지된다.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떠올리곤 하던 치열한 경쟁과 배신 같은 자극적이지만 이제는 피로감마저 주는 흐름을 벗어나 예상 밖의 공존을 위한 선택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들과 함께 전개되면서 ‘더 커뮤니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 3, 4회가 공개되면서 전체 시청시간이 앞선 1주차 대비 120% 증가했고, 설 연휴에 4회차를 동시에 공개하는 파격편성은 추진력을 만들어 오픈 4주차에 첫 주 대비 420% 상승한 시청시간을 기록했다. 정치와 사상이라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재였지만 입소문을 탄 프로그램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매 신규회차 오픈 당일인 금요일 웨이브 예능 장르 신규유료가입자 견인 1위를 기록했다. 특히 30대 여성 시청시간 비율은 30%에 달했다. 하지만 ‘더 커뮤니티’가 의외의 흐름을 보인 ‘공존의 시기’는 8회에 이르러 탈락자를 배출하는 보다 독한 미션들이 제시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반드시 탈락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공지되면서 공고했던 결속에 균열이 만들어졌고, 탈락면제권을 가진 이들도 불안감에 휩싸이며 타인에게 그걸 선뜻 양도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장면들이 등장했다. 애초부터 이런 공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실주의자들은 그간의 노력들이 그저 환상에 가까운 ‘위선’에 불과했다며 한탄했다. 그렇다면 ‘더 커뮤니티’가 보여준 ‘공존의 노력’은 무의미했을까.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다른 사상을 갖고 있고 그래서 치열한 생존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저마다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욕망이 드러나는 현실을 맞이할 수 있지만, 적어도 한 커뮤니티로 묶이게 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을 대화를 통해 추구해나갈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생존의 자극적인 지점만을 당연한 현실처럼 꺼내놓고 했던 여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 ‘더 커뮤니티’가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4.03.04 05:48
드라마

[정덕현 요즘 뭐 봐?]‘닥터 슬럼프’, 슬럼프에 빠진 이들을 위한 박신혜, 박형식표 처방전

치열한 경쟁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린 사회가 주는 불안 탓일까. 최근 드라마들이 관심을 갖는 건 정신적인 문제들이다.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사용되고, ‘멘털 갑’, ‘멘털 관리’, ‘강철 멘털’ 나아가 ‘멘털 리셋’이라는 표현들이 나올 정도로 멘털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외과의사들 중심으로 그려지곤 하던 의학드라마들이 정신과를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혼수선공’이나 ‘조선정신과의사 유세풍’,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같은 드라마들이 그 사례다. 그런데 멘털에 대한 관심은 비단 의학드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웰컴투 삼달리’ 같은 작품을 보면 경쟁적인 도시의 삶에서 상처입은 주인공이 제주도에 내려와 그 곳 사람들과 지내며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건 일종의 멘털 치유 과정 그 자체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물론 ‘닥터 슬럼프’에는 성형외과 의사 여정우(박형식)와 마취과 의사 남하늘(박신혜)이 등장하고 그들이 병원에서 겪는 일들이 그려지지만 그렇다고 의학드라마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에서 의사라는 직업이나 병원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배경에 가깝다. 드라마가 실제로 다루는 건 그것들이 아니라, 그 곳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그간 잃었던 일상을 되찾으며 치유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이들이 의사라는 직업으로 등장하는 건, 다소 반어법적인 강조의 뉘앙스가 더해져 있다. 누군가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의사들도 아플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멘털의 문제는 이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걸 에둘러 알려주고 있다고나 할까. 이것은 또한 성공이라는 잣대로 선호하는 직업 1순위로서의 ‘의사’라는 직업의 허망함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진짜 인술에 뜻을 갖고 이 직업을 택하는 이들도 많지만, 성공하고 싶어 의사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세태가 아닌가. 학창시절부터 오로지 의대를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결국 의사가 되지만 그 곳에서의 경쟁 속에서 무너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것을 되돌아보는 ‘닥터 슬럼프’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도 낯설지 않은 서사다. 잘 나가던 성형외과이자 인플루언서였던 여정우의 삶이 한 순간의 누명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은 우리가 애써 성취했다고 여긴 것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또 선배의사들에 의해 이용만 당하다 결국 우울증까지 갖게 된 남하늘은 경쟁적인 현실이 우리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가 의심 없이 달려가는 막연한 성공을 향해 질주하게 되면서 오히려 일상의 행복들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을 대변한다. 이런 전제를 깔아놓고 있어서인지 ‘닥터 슬럼프’는 사실상 액면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요소들이 새로운 의미로 그려진다. 공부만 하는 모범생으로만 살아와 바다 한 번 가보지 못한 이들이 보는 바다가 남다르게 다가오고 연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의 연애가 특별하게 느껴지며 나아가 떡볶이를 사먹고 노래방이나 오락실을 가는 이른바 ‘노는’ 일상조차 새로운 가치로 다가온다. 이들은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오던 삶에서 튕겨 나가 바깥에 놓이게 된 후에야, 자신들이 그토록 ‘노오력’해왔던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우울증’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바깥으로 나오게 된 남하늘과 여정우가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공감하다 사랑하게 되는 그 달달한 이야기는 그저 멜로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잘못 산 것 같다”는 말에 “네 잘못 아니야”라고 해주는 말이 마치 아픈 이를 치유해주는 처방약처럼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한때 멜로가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건 그저 사적인 사랑타령에 대한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멜로는 언젠가부터 그 사랑의 이면에 놓인 사회적 맥락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시대의 사랑은 더 이상 낭만적일 수만은 없고 사회적 현실과 더 밀접해졌다는 반증이다. 그 언제든 ‘슬럼프’의 덫이 곳곳에 놓여 있는 사회가 야기하는 불안과 상처들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점점 더 위로와 응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4.02.26 05:20
드라마

[정덕현의 요즘 뭐 봐?]‘연인’, 임금보다 백성 지키는 남궁민, 안은진에 설득된 이유

“새야 새야 노랑새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게? ‘능군리 길채 애기씨요’라고 생각하면 짹짹짹짹, ‘다른 애기씨요’라고 생각하면 물구나무를 서 보련?”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서 길채(안은진)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 나오는 이 장면은 여러모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꺾는 작용을 한 게 사실이다. ‘백설공주’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라니! 요즘처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에 대한 대중적 요구를 떠올려 보면 이런 시작은 위태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장현(남궁민)의 등장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던 감정이다. 오랑캐들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에 연준(이학주) 같은 성균관 유생들이 박차고 나가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고 오랑캐를 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 “명나라가 반드시 오랑캐를 이긴다는 보장이 있소?” 게다가 초반 서사는 장현과 길채 그리고 연준과 은애(이다인)의 밀고 당기는 한가로운 멜로에 치중되었다. 연준은 은애를 연모하지만, 연준을 짝사랑하는 길채와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는 장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평이한 사랑타령처럼 보인 ‘연인’의 시청률은 2회 4%대로 떨어졌다. 그만큼 기대에 못 미쳤다는 뜻이다.하지만 이것이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벌어진 후 장현과 길채가 보여줄 반전과 성장의 서사를 위한 밑밥이었다는 건 3회에 이르러 금세 드러났다. 장현이 오랑캐들에 의해 남한산성에 갇혀있는 임금을 구하러 가자는 연준의 의견에 반대하며 차라리 피난을 가라고 한 건, 그가 전쟁과 오랑캐들의 실상을 알고 있어서다. 그렇게 무모하게 뜻만 갖고 전쟁에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 게다가 장현은 구해야 할 사람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이 아니라, 임금이 도망침으로써 버려진 백성들이라고 생각한다.길채 또한 전쟁이 터지면서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강인한 면모들을 드러낸다. 평시 오로지 낭군님 생각만 하던 모습 대신 은애와 종종이(박정연), 방두네(권소현)를 이끌고 피난을 가며 생존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 길채의 생존 투쟁과 그 길채를 비롯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든 장현의 변신은 그래서 초반의 그 한가로운 모습에서의 반전 효과를 더욱 극대화해 보여준다. 시청자들이 장현과 길채에 점점 빠져들게 된 이유다. 특히 ‘연인’에 시청자들이 설득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지금의 시대정서와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극들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선 영웅 서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나라 같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역사적 영웅들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영웅에 더 공감하게 됐다. 장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임금을 구하자 나서는 연준과 대비된다. 한 마디로 ‘임금님보다 내 임’이 더 소중하다는 게 이 사극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그래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연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할 터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와 래트 버틀러를 닮은 길채와 장현은, 병자호란이라는 참담한 전쟁 상황 속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면서 생존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전쟁을 벌인다. 물론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같은 작품에서 그려진 것처럼 이 병자호란 상황에서 최명길(김태훈)과 김상헌(최종환) 같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신하들의 대립과 백성을 지키기는커녕 제 한 몸 지켜내지도 못하는 무능한 왕 인조(김종태)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장현과 길채 같은 평범한 연인들이 이토록 힘겨운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하는 그 원인으로 다뤄진다. 우리가 흔히 ‘국뽕’이라고 하는 표현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드러내는 것처럼, 나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사라진 시대다. 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지고, 외교문제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흘러가며, 갖가지 사건들이 매일 같이 터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지금의 대중은 나라에 대해 그리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 이른바 ‘각자도생’해야 겨우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현실 아닌가. 나라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연인’의 장현과 길채가 그려가는 서사에 지금의 시청자들이 설득된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3.08.2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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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 앞세운 아우디 대기업 딜러사에 중소 딜러사들 “생존 위협” 아우성

아우디코리아 중소 딜러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이치오토모빌그룹(바이에른오토), 코오롱모빌리티그룹(코오롱아우토) 등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딜러사들이 높은 할인율을 앞세워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어서다.19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우디코리아의 공식 딜러사는 총 10개다. 이중 모기업의 자본력은 갖춘 곳은 코오롱아우토와 바이에른오토 2곳이 꼽힌다. 고진모터스도 모기업이 극동유화라 대기업에 속하지만 이들 2개 기업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다.문제는 두 딜러사가 자본력을 앞세워 중소 딜러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지 취재 결과, 이들 딜러사는 중소 딜러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실제 한 중소 딜러사는 이달 아우디 A6 TFSI 모델의 할인율을 17%로 설정했다. 이를 파악한 바이에른오토는 같은 모델의 할인율을 19%로 책정했다가 21%까지 올려잡았다. 해당 사실을 안 고객은 이른바 '딜러 갈아타기'를 통해 바이에른오토에서 차량을 구매했다.익명을 요구한 한 아우디 딜러사 관계자는 "바이에른오토의 경우 올해 신규 딜러사로 들어왔는데, 3년간 적자를 감수하고 최대한 많은 물량을 소화한다는 소문이 이미 있었다"며 "실제 경쟁사 대비 높은 할인율을 앞세워 고객을 빼앗아 갈지는 몰랐다"고 토로했다.중소 딜러사보다 더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기는 코오롱오토도 마찬가지다.이에 대해 바이에른오토와 코오롱오토 관계자는 "딜러 개개인마다 할인율이 다를 수 있다"며 "회사 차원에서 타 딜러사 대비 할인율을 높게 제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다른 수입차 브랜드 딜러사들은 이 두 딜러사의 행태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브랜드에 대한 지나친 독과점은 가격 상승과 시장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한 딜러사 관계자는 "아직도 지방 곳곳에는 많은 중소 딜러사들이 존재하는 데 지금처럼 대기업들이 수입차 시장을 장악해버리면 이들이 설 땅이 없어진다"며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이 시장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중소 딜러사들의 생존경쟁은 치열해지고 출혈도 각오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또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 산하 딜러사들이 파격적 할인 공세에 나설 경우 중소 딜러사들은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며 "동네 빵집이 대기업 진출 이후 사라진 것과 같이 수입차 딜러 시장 역시 빠른 속도로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그러면서 그는 "당장의 할인은 소비자에게 이득일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수입차 가격 상승, 서비스 품질 저하 등 소비자 피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아우디를 둘러싼 중소 딜러사와 대기업 딜러사의 갈등은 최근 아우디코리아의 목표치 할당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연초 아우디코리아는 올해 국내 판매 목표 대수를 약 3만3000대로 잡았다. 이는 전년 보다 1만대 이상 많은 수치다. 하지만 경기 침체, 고금리 등 시장 상황은 전년 보다 더욱 나빠졌다. 이에 딜러사들은 보다 높은 할인율을 앞세운 출혈경쟁을 해오다 결국 적자에 직면했다. 딜러사들은 아우디코리아가 제시한 판매 목표를 달성하면 '추가 보너스'를 받는다. 이를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딜러사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한 딜러사의 경우 1분기 보너스를 받기 위해 공격적인 할인 판매에 나섰다가, 8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딜러사들은 협의체를 구성해 아우디코리아에 목표치 할당을 낮춰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바이에른오토와 코오롱오토 등 대기업 딜러사들은 협의체에 참가하기는커녕, 높은 할인율을 유지해 딜러사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방해했다.아우디코리아 관계자는 "연초 판매 목표는 딜러사들이 직접 제시한 목표들을 모아 정한 것일 뿐 우리가 딜러사에 목표치를 할당한 적이 없다"며 "딜러사들의 요구에 따라 목표치는 일부 조정됐으며, 현재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그는 딜러사들의 할인 경쟁과 관련해서는 "아우디코리아는 딜러사에 차를 팔고 딜러사는 이 차를 다시 고객에 파는 구조"라며 "딜러사들의 할인에 관여할 수도 없으며, 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안민구 기자 amg9@edaily.co.kr 2023.07.20 07:00
드라마

[정덕현의 요즘 뭐 봐?]‘이번 생도 잘 부탁해’, 이생망 시대를 버텨내는 모든 이들을 위한 헌사

‘이번 생은 망했어.’ 이른바 ‘이생망’ 정서에 담겨있는 건 체념과 포기다. 농담처럼 툭 던지는 이 말 속에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삶이 주는 무력감이 자리한다. 이른바 어떤 ‘수저’를 물고 나오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되는 삶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노오력’ 사회로부터 절망감을 느끼는 이들의 정서가 바로 이 ‘이생망’에 담겨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이생망 시대에 이 드라마는 제목부터 어딘가 불순(?)하다.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가 그 드라마다. ‘잘 부탁해’라는 말에는 ‘이생망’ 정서와는 거리가 먼 어떤 기대감을 넘어 설렘까지 느껴진다. 게다가 ‘이번 생은’이 아니라 ‘이번 생도’다. 지난 생도 나쁘지 않았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도대체 무슨 긍정적인 시선이 이생망 정서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런 제목의 드라마에 드리워져 있는 걸까. 이제 19회차 인생을 사는 반지음(신혜선)은 모든 전생을 기억한다. 그러니 그가 삶에 어떤 애착이나 욕망, 나아가 꿈같은 걸 가질 리가 없다. 죽음이 끝이라는 인식이 결국은 삶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만드는 것일 텐데, 반지음은 죽은 후에도 자신이 환생할 걸 알고 있고 환생한 후에도 전생을 기억한다. 삶에 대단한 목표가 있을 리 없고, 태어난 김에 사는 그런 삶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에게 사건이 벌어진다. 18회차 인생에서 윤주원(김시아)으로 살아갈 때 만난 어린 서하(정현준)와의 사랑 때문이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교통사고로 서하만 살아남고 윤주원은 사망하게 된다. 19회차 인생에서 환생한 어린 지음(박소이)은 살아서 청년이 된 서하(안보현)을 찾아 나서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성장해 서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서하가 여전히 윤주원을 잊지 못하고 그 상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지음(신혜선)은 깨닫는다. 지금껏 매번 죽었다 환생하는 자신의 기구하고 슬픈 삶만을 생각했지만, 죽은 다음 남은 자들의 슬픔이 있었다는 것을. 그는 이번 생의 특별함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러 번 사는 동안 나의 아픔만 선명했어. 이번 생은 달라. 내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 그들의 슬픔과 마주하게 되는 이상하고 신선한 열아홉 번째 내 인생.’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반지음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전생을 기억한다는 설정은 여러 모로 이생망 정서의 시대에 ‘인생리셋’을 꿈꾸는 현 대중의 판타지가 들어있다. 이번 생은 망했어도 다음 생이 또 있다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의식도 들어있다. 그렇게 생이 또 이어지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해도 그걸 무한 반복하는 삶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드라마는 무의미해 보이는 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나 우정, 모성, 부성 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주고받는 그 관계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전혀 의미 없어 보이던 반지음의 삶이 특별해지는 건 서하라는 인물에 대한 남다른 감정이 생겨나서고, 그가 가진 상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반지음과 문서하의 전생과 현생을 뛰어넘는 멜로드라마지만 여기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환생 판타지 때문이다. 반지음은 이번 생에는 문서하보다 어린 나이에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18회차 인생에서는 문서하보다 나이 많은 윤주원으로 살았다. 또 17회차 인생에서는 서커스단의 단원이었던 김중호라는 남자로 살았는데 당시 형 내외의 남겨진 딸이었던 김애경을 돌봐준다. 그래서 19회차 인생에 환생한 어린 지음은 바로 그 나이 지긋한 김애경을 찾아가 자신을 증명하고 그래서 그에게 ‘삼촌’이라 불리는 기묘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즉 환생 판타지는 나이도 성별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은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이번 생도 잘 부탁해’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은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우정 같은 관계를 그려내는 휴먼드라마로 확장되는 요인이 된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농담 섞인 말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응원과 위로는 그래서 크게 다가온다. 다음 생이 또 있다 해도 그것이 의미 있어지는 건 결국 특별한 누군가와의 관계나 순간이라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 아마도 바로 이번 생에 당신 옆에 있는 그 누군가와 말이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3.06.26 05:42
프로야구

[IS 인터뷰] ‘조연’ 이병헌이 꿈꾸는 포수왕국 주연, "준비된 포수가 될게요"

강민호(38) 김태군(34) 김재성(27) 등 쟁쟁한 포수왕국 속에서 생존경쟁을 이어가는 어린 포수가 있다. 아직은 조연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주연의 기회를 기다리며 이병헌(24)은 묵묵히 포수왕국의 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2021년 가을 이병헌은 1군 데뷔라는 부푼 꿈을 안고 상무에서 전역했다. 하지만 이듬해 삼성은 포수 김태군을 트레이드로 품은 데 이어 자유계약선수(FA) 보상선수로 김재성까지 영입하면서 포수 확충에 열을 올렸고, 자연스레 이병헌의 입지는 좁아졌다. 결국 이병헌은 전역 첫해인 2022년 퓨처스리그에 머물며 대부분의 시즌을 보냈다. 이병헌으로선 팀의 결정이 야속했을 터. 하지만 이병헌은 묵묵히 2군에서 칼을 갈면서 1군 데뷔를 준비했다.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높디높은 1군의 벽. 하지만 이병헌은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에겐 20대 초중반이라는 ‘젊음’이 있었고, 여전히 그는 ‘라이온즈 안방의 미래’였다. 묵묵히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베테랑 투수 백정현도 그에게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다 보면 어느샌가 원하는 곳에 다다라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부담감과 조급함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열심히 하다 보면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베테랑 선배의 조언에 평정심을 찾은 이병헌은 묵묵히 훈련에 임하며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기다렸다. ▶‘(지금의 경험이) 열갑절 백갑절 더 소중하오’그랬던 이병헌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올 시즌 초반 백업 포수 김재성과 김태군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이병헌이 백업 포수로 낙점된 것. 물론 강민호라는 높은 벽에 출전 기회는 많이 찾아오지 않아도 간간이 찾아오는 출전 기회는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1군에서 선배들과 함께하며 조언을 듣고 그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매일 소중한 경험을 쌓고 있는 이병헌은 하루하루가 그저 소중하고 즐겁다고 이야기했다. 데뷔 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이병헌이 올 시즌 여유를 찾고 ‘웃상(웃는 얼굴)’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실전에서 속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이병헌은 꾸준하게, 자신의 속도대로 차근차근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병헌은 “포수 선배들의 출전 경기 수를 알게 된 적이 있는데, 선배들이 어마어마해 보였다. 난 고작 8경기에 나갔는데 ‘나는 언제 저런 선수가 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강민호 선배가 ‘그냥 하다 보면 이렇게 돼’라는 말 한마디에 조급함이 사라졌다. 내 속도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회상했다. 김태군도 지금의 이병헌 나이에 기회를 잡고 1천 경기 금자탑을 쌓았다. 아직 창창한 이병헌이 조급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병헌은 매일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박진만 삼성 감독은 이병헌에 대해 “열심히 준비하는 선수다. 분석도 많이 하고 야구 선수 중에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선수일 것이다. 삼성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선수”라고 평가했다. 선배 강민호 역시 “정말 성실하면서 경기 집중력도 강한 선수다. 조금 더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경험만 쌓는다면 굉장히 좋은 포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자신을 향한 기대가 감사할 따름이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된 포수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언젠가 다가올 주연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윤승재 기자 2023.05.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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