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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여제' 김가영 "3쿠션 선수의 길, 이제 시작일 뿐…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IS 인터뷰]

“제 나이에 ‘시작’이라는 말,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은 자신의 3쿠션 커리어를 ‘시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프로당구 남·여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에 최다 우승(11회), 그리고 최다 연승(24연승) 신기록까지. 2019년 프로당구 출범 이후 그야말로 새 역사를 거듭 써 내려가고 있는데도, 3쿠션 선수로는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가영은 “3쿠션 선수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쿠션을 제대로 친 지 이제 3~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사실 아직 목표도 없다.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계획이 그려졌다면, 3쿠션은 아직 청사진을 못 그리겠다. 그저 선수로서 올인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김가영은 “이 나이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그렇지만, 3쿠션 선수로 조금씩, 또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김가영 천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프로당구 3쿠션 무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정점에 오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프로당구 3쿠션 대기록들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구 2000점' 목표로 시작된 김가영의 당구 인생실제 30년 가까운 김가영의 당구 인생에 3쿠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처음 접한 건 4구였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아버지께 매일 1~2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400~500점을 치면서 2000점을 목표로 삼았다. 특기 정도로 만들어놓으려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당시 한국계 미국인 포켓볼 선수 자넷 리(미국)의 방한이 화제가 되고, TV 광고도 찍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김가영의 시선이 쏠렸다. 공부보다 당구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당구 선수의 길을 고심하던 그는 4구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포켓볼 선수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포켓볼 선수로 정식 등록해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김가영은 “사실 당구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선수로 등록했을 때 바로 윗 선배도 20대 중반이었다”며 “자넷 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프로 하면 되게 좋은가 보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4구 2000점에서 포켓볼 세계 챔피언으로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일반 남자 운동부처럼 매일 훈련했다. 오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낮에는 수업을 받았다. 오후에 당구 훈련을 하다 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중생인 김가영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들이었다.김가영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5년이었다. 훈련을 혼자 다 버텨내야 하니까 기댈 곳도 없었다”며 “남자 선수들도 그렇게 안 하는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거나 사이클을 타야 했다. 꾀를 부리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혼도 났다. 당시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매일이 괴로웠다”고 돌아봤다.그러면서 김가영은 “다들 1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경험들은 뒤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이자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혹독한 훈련 속 김가영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만 국적이던 아시아당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 무대로 향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행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김가영은 “(처음 제안을 받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류신메이(대만)라는 선수의 존재였다”며 “유일하게 테크닉에 반했던 선수이자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전패를 당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만에 가서 다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언어도 통하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 김가영은 오롯이 포켓볼로 승부했다. 남다른 승부욕 속 류신메이에게는 설욕도 성공했다. 대만 진출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류신메이를 이겼고, 1년 정도 지난 뒤엔 승률이 비슷해졌다. 2년 가까이 된 시점엔 오히려 류신메이보다 승률이 더 높은 선수가 됐다. 세계 챔피언의 영예도 안았다. 2004년과 2006년 잇따라 우승해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올랐다. 세계 최초로 포켓볼 그랜드슬램의 역사도 썼다.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도 나섰다. 2006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가영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나라에서 귀화 제의도 받았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는데 한 마디로 잘랐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딸 기회 역시 신청조차 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대만에서 김가영은 결국 외국인 선수였다. 김가영의 실력이 급증한 건 곧 대만 당구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황당한 이유로 대만당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단의 요청으로 잠시 통역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김가영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 때 통역이 따로 없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기 도중 한국 남자 선수들이 판정과 관련해 나에게 통역을 요청해 한국 선수들의 입장을 대신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심판 판정은 대만 선수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런데 그 판정 이후 승부가 뒤집혔다. 경기가 끝난 뒤 대만 당구계의 모든 화살이 돌연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대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기자들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보도했고, 인격모독성 내용까지 담겼다. 대만당구협회장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화살을 나한테 돌려야 자기들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양쪽에 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자격정지는 6개월 만에 풀리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포켓볼 선수에게 내려진 사실상 사형선고대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김가영은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포켓볼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굳게 지켰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였다. 당시 새로 출범한 프로당구협회(PBA)의 초청을 받아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는 게 중징계의 이유였다.김가영은 “당시 와일드카드를 통해 단 한 번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PBA에 정식 가입한 것도 아니어서 서류상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것도, 당구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런 중징계를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당시 새로 출범한 PBA와 대한당구연맹 간 ‘대립’의 본보기 징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가영도 “‘PBA로 가면 김가영조차 제명’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이 PBA로 가지 못하도록 내린 징계였다고 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몇 번 우승을 했든, 국위선양을 얼마나 했든 본보기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특히 당시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한 것 역시도 그저 포켓볼과 나아가 한국 당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던 터라, 김가영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컸다.김가영은 “포켓볼을 더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쫓겨난 셈이다. 그때 대회에 참가한 것도 3쿠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당구 선수들을 위해서는 프로가 생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프로가 생겨야 당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고, 그래야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단체라 (선수들의 생활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그동안 프로당구를 만들겠다는 단체들이 몇 번 있었지만 미심쩍었다. 하지만 PBA는 준비 과정이 믿을 만했다. 첫 대회인 만큼 대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참가해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이었다”며 “PBA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켓볼 역시 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가 생겨야 당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 포켓볼 종목에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그런데도 돌아온 건 ‘영구 제명’이었다. 이 징계로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로서 국내 대회 참가는 물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모두 막혔다. 평생을 포켓볼만 해온 김가영에겐 사실상 사형선고였다. 김가영의 등록 말소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됐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김가영으로선 자신의 선수 생활의 위기만큼이나 후배 선수 등 포켓볼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그는 “후배 등 포켓볼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수분들이나 관계자분들에게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다. 포켓볼 선수로 돌아간다거나 대한당구연맹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포켓볼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포켓볼 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은퇴 기로에서 결심한 3쿠션 선수의 길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는 김가영의 인생 계획도 바꿔놨다. 사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이후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는 “원래 마흔 살 정도까지만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40대 초반부터는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도 ‘경기력도, 이론도 잘 돼 있는 사람이 체육계에서 인정받는다, 너는 가능하지 않느냐’고 해주셨다. 지도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도 포켓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자를 준비하려다 제명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김가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계획보다 더 이른 포켓볼 지도자의 길, 그리고 3쿠션 선수로의 전향이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엄연히 다른 종목인 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종목으로 전향한다는 것 그야말로 큰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김가영은 “결정하는 데까지 정말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초보자 때의 기억과 느낌도 없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큐 길이나 굵기, 공 크기, 당구대 높이 등 모든 게 다르다. 포켓볼을 칠 땐 최소한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탱해 줬다면, 3쿠션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생판 모르는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지도자와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3쿠션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3쿠션 전향 첫 시즌 6차 대회부터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두 번째 시즌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시즌 우승 역시 ‘반짝 우승’으로 비쳤다. 김가영은 “첫 시즌에 왜 우승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할 실력도 아니었다. (초창기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면서 “두 번째 시즌에 혼란기가 왔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나 치자고 했다면, 3쿠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혼란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 운이 좋게 포켓볼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면, 두 번째 시즌이 진짜 내 실력이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그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가영은 세 번째 시즌부터는 매 시즌 2회씩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적응을 마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4연승을 달성하며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기록을 넘어 프로당구 남·여 투어 최다연승 신기록까지 썼다. 평생을 포켓볼을 치다 3쿠션에 전향한 지 5년도 채 안 돼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었다.김가영은 “선수 경험이 많았던 게 컸던 거 같다. 3쿠션에 대한 경험은 적어도, 승부사나 경기인으로서의 경험은 남녀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곧 있으면 선수 생활만 30년 차가 되는데, 그 경험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하는 거 같다. 공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나 공을 다루는 건 아무래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어 “4회 연속 우승 등 이번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3쿠션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나 지금이나 훈련량이나 루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뒤집어엎은 것도 없다. 조금씩 루틴을 수정하고 조절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3쿠션을 시작할 때와 똑같다”며 “그저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김가영이 따라 걷는 레전드의 길지도자까지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가던 포켓볼과 달리, 김가영은 아직 3쿠션 선수로서 목표나 향후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전체적인 계획이 그려지는데, 3쿠션은 아직 안 그려진다. 사실 몇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켓볼과 달리 3쿠션은 선수 생명이 길다.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올인할 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더더욱 체력 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오프시즌 때는 당구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가영은 “오프시즌 때는 한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신경을 쓴다. 당구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할 정도다. 그때 몸을 만들어놓고, 시즌이 시작되면 몸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오프시즌 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여기에 틈틈이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빠졌다. 김가영은 “동호회는 처음 가입해 봤다. 경기 때 다이버 분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와주신다. 사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당구장 평생 안 가보신 분들이 이제는 당구룰을 꿰고 계신다. 반대로 당구 선수들은 저 때문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이어 “프리다이빙에 당구에 도움이 되는지 결론은 못 냈다. 다만 확실히 느끼는 건 있다. 열이 받거나 하던 게 잘 될 때, 긴장될 때 숨이 가빠지지 않나. 당구칠 때 역시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좋은데, 프리다이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며 “취미 생활을 할 땐 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구를 치거나 훈련할 땐 ‘늘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런 마음이라면, 취미를 할 때는 ‘재미있게 놀자, 못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칠 일도 없다. 나쁠 게 없는 거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자기 관리는 끝”이라고 웃어 보였다.이처럼 김가영이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체력 등 자기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다. 여기에는 김가영이 유독 마음속에 담고 있는 레전드의 조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포켓볼 레전드 앨리슨 피셔(영국)가 김가영에게 직접 건넸던 조언이다.김가영은 “예전에 피셔에게 ‘나도 당신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 잠깐 잘하면 그건 반짝 스타’라고 답해줬다. 그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랫동안 잘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선수 생활을 하는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해는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건 운이 아니라 제 노력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고양=김명석 기자 2024.11.22 16:22
프로야구

'이게 바로 KBO MVP 후보다' 쿠바 집어삼킨 김도영, 공격 '화끈' 수비 '철벽' [프리미어12]

KBO리그 히트상품 김도영(21·KIA 타이거즈)이 한국 야구대표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14일 대만 타이베이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리그 쿠바전을 8-4로 승리했다. 이번 대회 대만, 쿠바, 일본, 도미니카공화국, 호주와 같은 조에 속한 야구대표팀은 슈퍼라운드(4강) 진출을 목표로 1차전 대만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전날 맞대결에서 3-6으로 패해 초비상이 걸렸다. 쿠바전마저 패한다면 벼랑 끝에 몰릴 수 있었다.쿠바 선발 투수가 왼손 리반 모이넬로(소프트뱅크 호크스)라는 점에서 어려운 승부가 예상됐다. 모이넬로는 일본 프로야구(NPB)를 대표하는 에이스. 올 시즌 25경기에 등판, 11승 5패 평균자책점 1.88(163이닝 155탈삼진)을 기록했다. 규정이닝을 채운 퍼시픽리그 선발 투수 12명 중 유일하게 1점대 평균자책점(2위 타케우치 나츠키 2.17)을 지켰다. 하지만 모이넬로는 예상보다 부진했다. 2이닝 4피안타(1피홈런) 6실점. 철옹성에 가까운 그를 무너트린 일등 공신은 3번 타자·3루수로 선발 출전한 김도영(4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이었다. 김도영은 2-0으로 앞선 2회 말 2사 만루 찬스에서 모이넬로 상대 좌월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상단으로 향한 모이넬로의 초구를 힘으로 잡아당겼다. 타격 직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큼지막한 타구였다. 야구대표팀은 2회 2사 후 안타 3개와 사사구 2개, 도루 2개를 묶어 2점을 뽑았는데 김도영의 홈런까지 터져 초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김도영은 5회 세 번째 타석에선 우익수 방면 2루타로 멀티 장타를 해냈다. 상대 수비가 느슨한 틈을 타 한 베이스를 더 가는 상황 판단이 돋보였다. 7회 네 번째 타석에선 쐐기를 박는 솔로 홈런까지 책임졌다.김도영의 활약은 '수비'에서도 돋보였다. 2회 초 2사 후 야디어 드레이크의 3루수 방면 타구를 제자리 점프 캐치로 처리했다. 4회 초 1사 1·2루 위기에선 드레이크의 3루 땅볼 때 3루를 먼저 밟고 1루로 던져 매끄럽게 병살타로 연결했다. 압권은 5회 초였다. 연속 볼넷으로 무사 1·2루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월터스의 3루수 강습 타구를 다이렉트로 잡아낸 것. 머리 방향으로 향한 까다로운 타구였는데 김도영은 꿈쩍하지 않았다. 호수비로 아웃카운트를 하나 올린 야구대표팀은 후속타를 불발로 처리,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김도영은 올 시즌 리그 최우수선수(MVP)가 유력한 라이징 스타. 지난 4월 리그 사상 첫 월간 10홈런-10도루 달성을 시작으로 역대 5번째 전반기 20-20 클럽, 역대 최연소·최소 경기 30-30 클럽, 역대 최연소 선점·최소 경기 100득점, 역대 두 번째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단타부터 홈런까지 차례로 때려내는 기록) 등을 해내며 KIA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렸는데 명불허전이다. 대회 전 "지금 구자욱(삼성 라이온즈)도 없고, 노시환(한화 이글스)도 없고 김혜성(키움 히어로즈)도 없다. 김도영이 대표팀의 중심이 돼야 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잘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류중일 감독의 기대대로였다. 조별리그 1승 1패를 기록한 야구대표팀은 15일 숙적 일본을 상대한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11.14 22:16
프로야구

"유종의 미 거두겠다" 이제 프리미어 향하는 국대 김도영 [IS 피플]

3루수 김도영(21·KIA 타이거즈)의 시선은 이제 태극마크로 향한다.김도영은 30일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은 지난 23일 35명(최종 엔트리 28명)의 선수를 소집, 이튿날부터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훈련 중이다. 다만 한국시리즈(KS)를 소화한 KIA(7명)와 삼성 라이온즈(2명) 선수들이 대거 빠져 완전체가 아니었다. 지난 28일 시리즈를 마친 두 팀의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대표팀의 위용이 대부분 갖춰지게 됐다.가장 관심을 끄는 건 김도영이다. 김도영은 지난 4월 리그 사상 첫 월간 10홈런-10도루 달성을 시작으로 역대 5번째 전반기 20-20 클럽, 역대 최연소·최소 경기 30-30 클럽, 역대 최연소 선점·최소 경기 100득점, 역대 두 번째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단타부터 홈런까지 차례로 때려내는 기록) 등을 해낸 리그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유력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인 그는 지난 28일 소속팀 KIA의 통합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하루 휴식 후 곧바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도영의 프리미어12 출전은 기정사실이다. 류중일 감독은 아직 최종 엔트리를 확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공개적으로 김도영을 향한 기대를 내비쳤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대거 어려운 상황. 역대 대표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가 벌써 나오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지금 구자욱(삼성)도 없고, 노시환(한화 이글스)도 없고 김혜성(키움 히어로즈)도 없다. 김도영이 대표팀의 중심이 돼야 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잘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김도영에게 태극마크는 '애증'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참가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결승전에서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엄지가 골절돼 인대까지 파열됐다. 이번 프리미어12는 프로 데뷔 후 두 번째 출전하는 국제대회. 1년 전과 비교하면 주위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 김도영은 "(통합우승의) 좋은 기운을 가지고 가겠다. 만약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다면 지난해 못했던 내 플레이를 마음껏 펼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돌아오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프리미어12 대표팀은 일본·대만·쿠바·도미니카공화국·호주와 함께 B조에 편성, 다음 달 13일부터 18일까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1라운드를 치른다. 각 조 1~2위가 출전하는 슈퍼라운드는 같은 달 21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10.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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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 수질도 도전 못 막습니다" '양팔 없는 아이언맨' 김황태, '당당한' 세계 10위 약속 [파리 패럴림픽]

"센강 수질이 제 도전을 막을 순 없습니다. '당당한 꼴찌'로 누군가의 동기부여가 되겠습니다."2024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종목에 참가하는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의 목표는 꼴찌다.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이 종목 참가자 중 유일하게 두 팔이 없는 김황태는 수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김황태는 "당당한 꼴찌, 아니 '세계 10위'가 되겠다"라면서 완주를 약속했다. 10명만 참가하는 대회에서 10위면 최하위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에서 제일 강한 열 번째 사람'의 타이틀을 택했다.김황태는 2000년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 고압선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이후 1년간 절망과 술독에 빠져 살다가, 스포츠로 다시 일어섰다. 마라톤과 노르딕스키(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한 그는 트라이애슬론 종목으로 패럴림픽 무대를 밟는다. 부상 전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할 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강건했던 그는 계속되는 불운에 맞서 다시 일어섰다. 그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노르딕스키 종목 출전에 도전했으나, 훈련 중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2020 도쿄 하계 대회를 앞두고는 태권도에 도전해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그러나 대회에서 장애등급(PTS3, 중대한 근육 손상 및 절단) 분야가 채택되지 않으면서 패럴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시련 끝에 다른 종목(트라이애슬론)으로 얻어낸 패럴림픽 티켓만큼은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각오다. 두 팔이 없는 김황태는 수영 750m와 사이클 20㎞, 달리기 5㎞를 오로지 하체와 허리의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 사이클은 의수를 낀 채 타지만 그저 몸을 지탱하는 수준. 김황태는 "내가 패럴림픽 무대를 밟는 최초의 대한민국 트라이애슬론 선수라고 들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도 이렇게 힘든 종목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트라이애슬론 수영은 파리 올림픽에 이어 파리 센강에서 열린다. 센강은 이미 올림픽에서 수질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센강에서 경기 후 구토하는 선수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유속도 빠르다는 평가. 두 팔 없이 수영하는 김황태에겐 더 치명적이다. 많은 양의 강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내 도전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렵지 않다"며 "인생의 마지막 대회일지도 모르는데 센강(오염된 물)이 나를 막을 수 없다"며 의연하게 답했다. 김황태는 아내 김진희 씨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 김진희 씨는 김황태의 경기 보조인으로 대회에 참가한다. 경기 보조인은 종목과 종목 사이에서 선수의 경기복 환복과 장비 착용을 돕는다. 이 과정이 모두 경기 기록에 포함되기 때문에 빠른 교체가 중요하다. 김황태는 "아내와 함께 패럴림픽을 나서게 됐는데 함께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 집에 있는 딸이 내가 운동할 때마다 다치니까 '제발 이번엔 다치지 말고 오라'고 하더라. 건강하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돌아오면 좋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공항=윤승재 기자 2024.08.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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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물살·겨울엔 눈길' 여고생 김윤지, "동·하계 패럴림픽 모두 도전"

김윤지(17·서울시장애인체육회)는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했다. 2022년 2월 제19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이하 동계체전)에서 파라노르딕스키(크로스컨트리스키+바이애슬론) 부문 3관왕을 차지하며 신인상을 받은 그는 10월 처음 출전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이하 하계체전)에선 수영으로 3관왕에 오르며 또 하나의 신인상을 추가했다. 장애인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동·하계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모두 신인상을 차지한 주인공이 됐다.2023년엔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체전에서 더 많은 메달을 수확했다. 2월 열린 동계체전에서 파라노르딕스키 4관왕으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김윤지는 11월 하계체전에서 수영 4관왕에 올랐다. 동·하계 전국체전 MVP 싹쓸이는 실패했지만, 불과 고교 2학년에 동·하계 체전을 섭렵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척수 장애를 갖고 태어나 하체를 쓸 수 없는 김윤지는 재활 차원에서 세 살에 수영을 시작했다. 여덟 살 때 본격적으로 입문, 15년 동안 물살을 갈랐다. 인생의 대부분을 수영과 함께한 셈이다. 노르딕스키는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했다. 이승복 파라노르딕스키 국가대표 감독의 권유로 입문해 재능을 펼친 그는 수영과 노르딕스키를 병행하면서 2023년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여름엔 물살을, 겨울엔 눈길을 종횡무진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핀란드와 스웨덴, 미국 등을 오가며 노르딕스키 국제대회에 출전한 그는 5월 말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에 발탁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훈련원에서 여름을 보냈다. 10월 열린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APG)을 마친 뒤엔 11월 하계체전까지 소화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다시 파라노르딕스키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창 학업과 운동 사이 고민해야 할 나이, 해외와 훈련원, 학교를 오가는 일정이 벅차지 않을까. 김윤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책상에 앉아본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예전엔 공부 욕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라면서 “(강행군이) 힘들다기보단 재밌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하는 뿌듯함을 즐긴다”라며 활짝 웃었다. 힘든 만큼 성과도 많이 거뒀다. 지난해 12월 핀란드 부오카티에서 열린 2023 FIS(국제스키연맹) 파라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른 김윤지는 은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따내며 환호했다. 수영 대표로 나선 항저우 APG에선 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나, 국가대표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개인 기록을 8초 이상 단축(자유형 100m 기준)할 만큼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수영과 노르딕스키는 쓰는 근육 자체가 다르다. 수영은 이두근을, 노르딕스키는 삼두근을 쓴다. 종목을 바꿀 때마다 2주 이상의 피나는 적응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김윤지는 웃었다. 그는 “수영을 하면 심폐지구력이 좋아져서 장기전인 노르딕스키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노르딕스키를 하면 근육이 강화돼 단기전인 수영에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장애인 스포츠 전반적으로 동·하계 스포츠를 병행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사이클 APG 금메달리스트이자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노르딕스키 국가대표인 ‘철의 여인’ 이도연(51)이 있고, 평창 크로스컨트리 금메달리스트 신의현(43)도 하계 사이클을 병행한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두 종목 모두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김윤지가 차세대 주자로서 가능성과 미래를 밝히는 중이다. 김윤지의 롤모델도 바로 이들이다. 그는 "평창에서 훈련 중인데, (신)의현 삼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동계 패럴림픽 최초 금메달리스트 아니신가. 먼저 다가와주셔서 많이 가르쳐주신다. 항상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김윤지는 “언젠가 동·하계 패럴림픽에 모두 출전하는 것이 목표다. 멈추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언젠간 한 종목에 집중하겠지만, 지금은 시원한 눈과 물 위에서 모두 뛰는 것이 즐겁다. 더 열심히, 즐겁게 운동하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윤승재 기자 2023.12.0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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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세 '철의 여인', “오늘도 나를 이겼다”

장애인 스포츠계의 ‘철인’ 이도연(스포츠등급WH4·전북장애인사이클연맹)이 장애인아시안게임(APG) 3연패를 일궜다.이도연은 26일 중국 항저우의 춘안 제서우 스포츠센터 사이클 도로 코스 13.5㎞를 23분35초80에 주파하며 2022 항저우 APG 여자 핸드사이클(H1∼5) 도로독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도연은 2014년 인천 대회와 2018년 인도네시아 대회에서 연달아 2관왕을 달성했고, 이날 다시 정상에 서며 종목 3연패 대업을 완성했다. 장애인 사이클은 장애 유형에 따라 다른 자전거를 타는데, 하지 장애가 있는 이도연의 종목은 뒤로 누운 채 팔로 페달을 굴리는 핸드사이클이다. 도로독주에서는 출전 선수가 1분 간격으로 출발해 각자의 개인 기록을 겨룬다.이도연은 이날 첫번째 구간까지 10분21초91을 기록하며 중국의 순비앤비앤(10분17초80)에 4초11 뒤졌으나 후반부 출력을 높이며 역전했다. 최종 기록에서는 이도연이 15초65 빨랐다. 경기 뒤 이도연은 공동취재구역에서 기록을 전해 듣고 1위 사실을 확인한 뒤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서 가쁜 숨을 고르며 “제가 여기 선수 중 제일 연장자다. 젊은 친구들한테 겁도 먹고 있었는데, 국가대표로 왔기 때문에 나이는 핑계고, 죽기 살기로 달렸다”라고 말했다.운동선수로서 이도연의 행적은 경이롭다. 19살에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34살이 되어서야 탁구 라켓을 잡으며 처음 운동을 시작했다. 40살에 육상을 시작해 2012년 장애인 전국체전 3관왕(창, 원반, 포환 3종목 한국 신기록)에 올랐고, 2013년 다시 핸드사이클로 종목을 바꿨다. 전향 이듬해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장애인사이클 국제 대회(201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42살 혜성’의 출현을 전세계에 알렸다.2018년에는 스키를 배운지 1년여 만에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장애인 노르딕스키(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으니 타고난 운동 천재다. 그는 “조상님한테 감사드린다. 어렸을 때부터 체격이 남달랐다. 장애를 얻고 재활하면서 지쳐 있었는데 타고난 몸 덕에 매번 잘했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이도연은 “(사이클 도로독주는) 타인과 대결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가장 좋아한다”라며 “제 자신을 이겼다는 마음이 뿌듯하다”라고 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자신을 이겨낸 그는 “달리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힘이 부칠 때는)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라며 “내 몸과 자전거를 향해 ‘너희 둘이 하나가 돼서 잘 달려줘’라고 얘기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이도연은 27일 핸드사이클 41.4㎞ 개인도로 경기를 치른다. 이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할 경우 그는 APG 3개 대회 연속 2관왕에 오르게 된다.한편, 이날 앞서 치러진 남자 핸드사이클 13.7㎞ 도로독주에 출전한 윤여근(스포츠등급MH4·충청남도)은 21분52초01로 3위를 기록했다. 지난 2018년 인도네시아 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던 윤여근은 이번에는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윤여근 27일 핸드사이클 55.2㎞ 개인도로에서 다시 금메달에 도전한다.항저우=윤승재 기자·항저우공동취재단 2023.10.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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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의 우여곡절 국대 데뷔전, "나이는 늘 1등이었죠"

출발 직전, 2번 레인의 일본의 다카기 유타가 배 방향을 틀다가 전복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다카기는 경기를 기권했고, 돌발 상황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로 경기는 속개됐다. 2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푸양 수상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APG) 카누 스프린트 남자 카약 KL1 200m 결선을 5위로 마친 김광현(스포츠등급 KL1·전남장애인체육회)은 아쉬움에 쓴웃음을 지었다. 레이스 직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그는 “일본 선수가 물에 빠졌는데 경기가 곧바로 시작됐다.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스타트를 놓쳤더니 기록이 안나왔다”라고 말했다. 김광현은 이날 결선에서 1분00초507을 기록했다. 기권한 다카기를 제외하면 참가 선수 중 최하위이고, 우승한 사에이드 호세인푸자로니(이란)의 기록(50초468)에는 10초039 뒤졌다.성에 차지 않는 마무리였으나 김광현은 웃었다. 그는 “우리가 뒤에 따라올 선수들을 위해서 이 길을 닦았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라고 했다. 한국이 장애인 카누 종목에서 국제 대회에 국가대표 선수를 내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장애인 카누가 약 100년 전 올림픽(1924년 파리)에 등장했던 것과 달리 장애인 카누는 2016년 리우 패럴림픽에서 처음 시범종목으로 도입됐다. APG에서는 이번 항저우 대회가 첫 선이다. 국내에서도 2019년에야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들어왔다. 박욱일(36)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여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자비를 털어 훈련하기도 했고, 국제 대회 때도 체계적 지원 없이 각개전투를 벌여야 했다. 어려움이 컸으나 지난해 태국에서 APG 출전권을 따내며 항저우에 입성했다.2009년 모터사이클 사고로 척수장애를 얻은 김광현은 2018년 처음 카누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입문 5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지난 8월 독일 뒤스부르크로 세계선수권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그때도 그렇고 이번 항저우에서도 그렇고 나이로는 1등을 했다. 제가 52살인데 장애인·비장애인 통틀어서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더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광현은 “저도 직장 생활하는 사회인이다. 일하면서 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잘렸을텐데, 국가를 위해서 한다고 하니까 사장님이 ‘국가를 위하는 선수를 돕는 것 역시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며 배려를 많이 해줬다”라고 했다. 아울러 “제가 아이가 셋이다. 배우자에게 맡겨놓고 나와 있어 정말 미안하다”라며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좋은 결과가 아니라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덧붙였다.‘다음’을 묻는 말에 김광현은 “50대 중반이 되다 보니까 다음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저희 뒤를 잇는 선수들에게 물심양면 지원하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앞으로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한편, 이날 남자 카약 KL2 결선에 출전한 온윤호(스포츠등급 KL2·경기도장애인체육회)는 전체 7명 중 4위(47초326)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입상하지 못했고, 카약 KL3 종목에 나선 황승오(KL3·경남장애인체육회)는 예선과 준결승 모두 2위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같은 장소에서 24일 열린다.황승오는 경기 뒤 “동료들 성적이 제 생각보다 잘 안나와서 아쉽다. 제가 결승에서 그 몫까지 같이 이뤄내겠다”라고 각오를 전했다.항저우공동취재단 2023.10.23 21:44
스포츠일반

‘굴렁쇠 소녀’가 이렇게 컸어요

울긋불긋 화려한 경기복을 입은 5명이 동시에 똑같은 높이로 공을 올려 던지더니 서로 교차해 받아냈다. 공을 다시 올려 던진 후, 다리를 쭉 뻗어 돌고는 다른 공을 받아냈다. 한 편의 서커스 같은 이 경기는 리듬체조 단체 종목이다. 5명의 선수가 각각 수구를 들고 2분 15초~2분 30초 동안 10여개의 난도를 수행하는 경기다.완벽한 호흡이 중요하다. 5명 모두 틀리지 않고 정확한 동작을 수행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아이돌의 ‘칼군무’에 수구를 더했다고 보면 된다. 개인 종목보다 화려하고 연기가 꽉 차서 볼거리가 많지만, 리듬체조 불모지인 한국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아시아 최고 성적(4위)을 기록한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은퇴)는 개인 종목 선수였다. 단체 종목은 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아직 없다.그런데 최근 단체 선수가 되겠다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지난 6월까지 리듬체조 단체 국가대표로 활동한 김민(19·세종대)은 “손연재 언니처럼 유망한 선수들은 대부분 러시아에 전지훈련을 다녀오고 외국인 코치에게 안무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개인 국가대표 경쟁이 치열해졌고, 눈을 돌려 단체 국가대표 지원자가 늘었다”고 전했다. 전국대회 1·2등을 다투던 김민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단체 선수로 활동하면서 지난 2019년 단체 국가대표가 됐다.보통 리듬체조 선수라고 하면 여리여리한 모습을 기대한다. 그런데 단체 선수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훈련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김민은 “새벽 6시에 5㎞를 뛰었다. 15㎏ 모래주머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사이클도 탔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루는 상체, 하루는 하체 훈련을 나눠서 했다. 어깨가 넓어지고 허벅지도 탄탄해졌다”며 웃었다. 연기 시간이 개인전(1분 30초)보다 1분 정도 길고, 수구를 동일한 높이와 속도로 교환하는 데 힘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지난 6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주장 김민주(20·한국체대)가 발 골절상을 입었다. 김민은 “출국 사흘 전에 민주 언니가 다쳐서 기권할 상황이었다. 후보 선수와 손발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아서 모두 걱정이 컸다. 그런데 민주 언니가 통증을 참고 테이핑을 하고 뛰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국 리듬체조 단체 대표팀은 은메달을 땄다. 아시아선수권대회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지만,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은 한 장(우즈베키스탄)뿐이었다.한국 리듬체조 단체 대표팀의 올림픽 첫 출전은 무산됐다. 그러나 김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공개된 프로필 사진이 유명해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그는 “유난히 사진이 잘 나온 것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김민은 7년 전 이미 유명세를 탔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녀가 바로 그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 영상에 이어 하얀 굴렁쇠를 굴리며 나왔다. 이후 배우 장동건, 김수현과도 함께 등장, ‘굴렁쇠 소녀’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김민의 고모는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리듬체조 선수로 출전한 김인화씨다. 김민은 고모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유연성과 담대함을 자랑했다. 그는 “돌이 지났을 때, 발가락을 머리 위로 올려 통통 튀기면서 놀았다더라. 세 살 때는 놀이터 정글짐, 미끄럼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등 무서움이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여섯 살에 리듬체조를 취미로 시작한 김민은 1년 만에 전국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따면서 리듬체조 유망주로 떠올랐다.김민은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언젠가 올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민은 올해 태극마크를 내려놨다. 그는 “리듬체조 선수들의 최전성기는 10대 후반이다. 걸출한 후배들이 많아서 걱정이 안 된다. 후배들이 2024년 파리 올림픽 리듬체조 단체 종목에 출전하는 멋진 역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면서 “나는 이제 대학 동료들과 내년 6월 열리는 하계유니버시아드(중국 청두)에 출전해 입상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2021.12.10 08:28
생활/문화

27, 28일 사이클 태극마크 경쟁 개최

사이클 태극마크 경쟁이 27일과 28일 양일간 광명 스피돔에서 열린다. ‘2020 트랙 국가대표 선수 선발 평가대회’는 2019년과 2020년 전국대회 우수 선수(트랙 종목 개인 및 단체 6위 이내 입상자)가 참가해 이틀 동안 열띤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평가대회가 열리는 광명 스피돔은 아시아 최대의 사이클 전용 돔 경기장으로 국민체육진흥공단 기금조성총괄본부가 무상으로 장소를 사용 협조했다. 참가선수단의 안전과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재확산을 방지하고자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다. 방역관리를 위해 대회장 내 팀부스에 등록된 지도자 이외 인원은 출입이 불가하다. 또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는 물론 지도자도 대회장인 광명 스피돔 출입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QR코드 체크인 → AD카드 착용 확인 → 체온측정 → 확인도장 등의 입장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경륜 심판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이 늦어졌는데 이번에 광명 스피돔에서 열리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와 지도자 등 관계자들이 안심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역관리는 물론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평가대회에는 경륜 어벤저스로 불리는 ‘KSPO 프로 경륜 트랙팀’ 소속인 정종진, 황인혁, 류재열, 성낙송, 양승원, 정해민, 정하늘 7명이 스탠딩 스타트 333M, 1KM/ 플라잉 스타트 200M, 500M에 참가해 대결을 펼친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0.10.21 07:00
스포츠일반

베이징을 향해 달린다…형은 빨리, 동생은 멀리

정재웅(19·한국체대)과 정재원(17·동북고). 어디선가 들은 이름. 그렇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미래를 이끌 ‘골든 형제’다. 둘은 지난해 10월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고, 곧바로 지난달 겨울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다. 정재웅은 1000m에서 13위를 했고, 정재원은 이승훈(대한항공)·김민석(성남시청)과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땄다. 정재원은 특히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의 금메달을 위해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8위로 들어와 큰 박수를 받았다. 두 형제의 활약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지난 11일 끝난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로 이어졌다. 정재웅은 500m에서 한국 주니어 신기록(34초66)으로 금메달을 땄다. 정재원은 5000m에서 6분20초75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정재웅은 팀스프린트, 정재원은 팀추월에서 각각 금메달을 보태 나란히 2관왕이 됐다. 아직 10대인 형제는 벌써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을 지난 21일 서울 방이동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만났다. 형제는 “평창올림픽에서 기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정재웅은 “올림픽에서 1초 정도 기록을 단축했다. 세계 유명선수들과 같이 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술이 좋아졌다”고 했다. 정재원은 “전엔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경기를 치르면서 개인 종목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정재웅 7살, 정재원 6살 때 빙판에 처음 올라섰다. 정재웅이 학교 현장실습으로 스케이팅을 접했고, 정재원은 형을 따라다니다가 1년 후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정재원은 “처음에는 둘 다 취미였다. 부모님이나 친척 중에 운동선수 출신이 없다. 엄마는 자전거도 못 탈 정도로 운동 신경이 둔하다”고 했다.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재웅은 단거리(500·1000m), 정재원은 장거리(5000m)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똑같이 운동을 했는데 정재웅은 심장박동이 빨랐고, 정재원은 느렸다. 그 차이가 두 사람의 주 종목을 갈랐다. 정재원은 “심장박동이 느리면 심폐지구력이 좋다. 게다가 형은 스타트가 빠르고, 나는 느렸다”고 했다. 정재웅은 “동생과 장거리를 함께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장거리를 했으면 동생한테 밀려 태극마크도 달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둘은 성격도 각자의 종목과 딱 어울린다. 형은 추진력 있는 단호한 성격이다. 동생은 생각이 많은 신중한 성격이다. 정재원은 “엄마가 뭘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나는 다양한 제품 중 뭘 사가야 하나 고민한다. 반면 형은 아무거나 집어 바로 계산한다”며 웃었다. 형제가 본격적으로 태극마크를 꿈꾸기 시작한 건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직후다. 당시 형은 11살, 동생은 9살이었다. 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시청했다. 정재웅을 사로잡은 건, 당시 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모태범(은퇴)이었다. 정재웅은 “대표팀에 들어와서 (모태범) 형을 처음 봤는데 엄청 떨렸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와 다르게 정재원의 심장은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을 보며 두근거렸다. 정재원은 “(이승훈) 형과 대표팀 룸메이트였다. 함께 지내며 자기관리 법을 세세히 배웠고 큰 도움이 됐다”며 “형이 올림픽 때 고생했다고 사이클도 사줬다”고 자랑했다. 1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는데 형제는 데면데면했다. 정재웅은 “다들 우리 사이가 어색하다고 하는데 우린 모르겠다. 일주일 내내 같이 훈련하다 보니 익숙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둘은 전화나 문자도 자주 하지 않는다. 그나마 문자도 초성으로 건성건성 한다. ‘ㅇㄷ? (어디?)’ ‘ㅇ(응)’ 이런 식이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애틋한 형제다. 정재원은 “형이 월드컵에 나가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홈페이지에 들어가 계속 ‘새로 고침’을 하면서 기록을 확인한다”고 고백했다. 이에 정재웅은 “세계주니어 시상식 때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형제 스케이터로 명성을 얻으면서 팬이 급증했다. 두 사람의 소셜미디어 팔로워 수는 올림픽 전까지도 수백 명이었지만, 현재는 수만 명에 달한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정재웅은 “올림픽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 정도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는다. 감사하다. 더 열심히 훈련해서 베이징올림픽 땐 꼭 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재원은 “베이징올림픽에선 동반 메달을 가져오자”며 형의 어깨를 툭 쳤다. ■ ‘빙속 형제’ 정재웅·정재원은 「 ▶형 정재웅 생년월일: 1999년 6월 2일 체격: 키 1m74㎝·체중 60㎏ 주 종목: 500m·1000m 경력: 2018 평창올림픽 1000m 13위, 2018 세계주니어선수권 500m·팀스프린트 1위 ▶동생 정재원 생년월일: 2001년 6월 21일 체격: 키 1m75㎝·체중 62㎏ 주 종목: 5000m·팀추월 경력: 2018 평창올림픽 팀추월 2위, 2018 세계주니어선수권 5000m·팀추월 1위 」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3.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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