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발굴! 한국경마비화 ④] 우리나라 최초 경마법인, 조선경마구락부
1922년 4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경마시행 법인인 조선경마구락부(朝鮮競馬俱樂部)가 설립인가를 받았다. 1920년대에는 서울의 조선경마구락부를 본받아 전국에서 경마구락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20여개를 헤아렸다. 하지만 설립 인가를 받은 경마구락부는 전국 6도시에 6구락부뿐이었다. 인가받은 구락부는 서울의 조선경마구락부, 평양의 평남(平南)레이스구락부, 대구의 대구경마구락부, 신의주의 국경경마구락부, 부산의 부산경마구락부, 군산의 군산경마구락부다. 처음 약 10년간은 법인구락부의 인가만 제한할 뿐 경마의 개최를 통제하거나 단속하지 않았다. 따라서 임의단체가 경마를 시행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방임 경마'의 시기였다. 그러다가 30년대에 접어들어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군마의 수요가 급증하자 마필 자원의 확보를 위해 수립된 '조선마정제1기계획'에 따라 최초의 경마 법규인 조선경마령이 제정 공포됐다. 조선경마령의 시행으로 경마는 사단법인 경마구락부만 개최할 수 있었고 1933년에는 전국의 경마구락부를 조정·통제하는 사단법인 조선경마협회가 설립됐다. 1937년에는 함흥·청진·웅기의 3개 경마구락부가 신설돼 9개 도시에서 경마가 시행됐다. 조선경마협회는 1942년 조선마사회로 시행체가 단일화되기까지 약 10년간 경마계를 이끌었다.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1942년 조선마사회령의 공포와 함께 전국의 경마구락부가 조선마사회로 단일화됐다. 조선마사회는 조선경마협회와 조선경마구락부 직원을 흡수하여 조직을 꾸렸으며 각 경마구락부로부터 전국의 경마장을 인수했다. 조선마사회가 인수한 경마장은 서울의 경성경마장을 비롯해 부산·대구·군산·평양·신의주·함흥·청진·웅기의 9개 경마장이었다. 8.15 해방과 함께 조선마사회는 나명균 씨 등 한국인 승마 애호가들에게 인수됐다. 미군정은 1945년 11월 8일 조선마사회를 인수하는데 앞장섰던 나명균 씨를 초대회장으로, 이창래 씨를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조선마사회는 이후 1949년 한국마사회로 회명을 개칭했는데, 한국마사회는 회명을 개칭한 9월29일을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박수성 기자 ▷ 백범 김구, 주말마다 경마장 찾았다▷ 우리나라 근대경마의 시발점, 전선경마대회▷ 6.25 한국전쟁 시절에도 12경주 모두 시행▷ 우리나라 최초 경마법인, 조선경마구락부▷ 주산 1급 포진…60년간 주판으로 배당률 집계▷ 50년간 빚더미 위에 달린 한국경마▷ 최초의 장외발매소는 ‘귀로 듣는 경마’
2009.04.15 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