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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용 기자의 무대풍경] '더데빌', 내용은 묻지마, 스타일이야!
논란의 뮤지컬 '더데빌'을 이야기하려면 영화 '명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명량'은 1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전문가들로부터 '플롯이 없거나 약하다'는 혹평에 시달린다. 그 말엔 동의하기 어렵다. '명량'은 굳이 이순신을 관객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사지로 뛰어든 이순신만 보여주었다. 그건 제작자 마음이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오마주인 '더데빌'도 마찬가지다. 이지나 연출은 굳이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 스토리를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탐욕의 월가를 배경으로 그가 새롭게 구현한 '내 마음대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대체자인 'X', 파우스트와 연인 그레첸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사실 소설 원작에서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죽음에 대해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뮤지컬에선 X가 파우스트의 가장 중요한 것, 즉 그레첸을 빼앗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인상적인 대사는 몇 가지 있다. "나한테는 네가 지옥이야!"(파우스트가 그레첸에게), "run run 달려라 run run high high…인생은 언제나 악마의 게임, 진실은 거짓을 이길 수 없어!" 등등이다. 이 작품에선 스토리가 아주 단순하고, 부분적으로 해체돼 있다. 세 배우가 공연 내내 한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대 세트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매 장면은 스토리 상의 현실인지, 그레첸이나 파우스트가 꾸는 악몽인지 구별이 안된다. 심지어 파우스트가 자살한 후의 장면도 사후 세계인지, 스토리 상의 현실인지 모호하다. 소설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지만 메시지가 뭔지, 관객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X 역을 맡은 마이클리의 캐릭터 해석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이번에 맡은 캐릭터는 아시다시피 X이다. X는 악마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그냥 X이다. X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미지의 수, 미지의 사물로 나와 있다. 무대 위에서 연기와 노래로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X라는 것은 존을 통해서도 볼 수 있고 그레첸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선한 것과 악한 것에 대해서 그것을 대신 표현해주는 캐릭터가 X이다." 어쩌면 이 대본을 쓴 이지나 연출 역시 메시지에 대해 스스로 정리되지 않았을 수 있다. 관객이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록 뮤지컬을 방불케하는 사운드 속에서 배우들의 노랫말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노래의 1/3 정도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더데빌'은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냥 스타일을 즐기는 작품이다. 이지나 연출은 과거에도 스토리를 해체한 뮤지컬 '바람의 나라'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계보로 보아야 한다. '더데빌'에게 메시지를 묻는다면 실례가 될 것 같다. 컬트적 광기로 가득찬 분위기. 닥치고 그것을 즐기면 될 뿐이다.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관객에게 '더데빌'은 지옥이 될 지 모른다.
2014.10.03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