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지켜주세요, 300만 농아의 희망을” 문병길 아·태 농아인대회 조직위원장
“대회를 치르기 위해선 40억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1억 5000만 원밖에 마련되지 않았습니다.”오는 5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7회 아시아태평양 농아인체육대회(5월26일~6월2일)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 문병길 위원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대회가 두 달 남짓 남았음에도 아직 필요한 예산이 절반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농아인대회는 일반대회보다 운영에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모든 신호음은 신호등으로 교체해야 한다. 수영의 경우 물 속에 출발 신호등을 설치하고, 농구는 코트 네 귀퉁이마다 반칙을 알리는 경고등을 세운다. 이 모든 게 다 비용이다.더구나 나라마다 말이 다르듯 수화 역시 차이가 있다. 이번 아·태 농아인대회에 참가하는 나라는 총 30개국. 즉 30개의 서로 다른 수화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국제수화통역이 필요하다. 국제통역사를 비롯해 1000여명의 수화통역사가 있어야 대회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대회를 치르기까지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문 위원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소외받는 국내 300만 농아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서”이다. 문 위원장은 “농아인들은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그늘진 곳에 있는 계층”이라고 지적했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해 정상적인 사회·경제 활동이 힘들 뿐 아니라, 차별을 당해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는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농아인 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를 상기시켰다.문 위원장은 “이번 대회는 농아인들에겐 자부심이자 희망이다. 농아인의 국제적인 축제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 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한다”고 전했다. 서울시농아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문 위원장이 이번 대회 유치에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문 위원장은 “2008년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을 받고 유치에 나섰고, 2010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산하 ICSD(국제농아인스포츠위원회)로부터 개최 승인을 받았다”면서 유치 당시와 달리 소홀해진 지자체에 아쉬움을 드러냈다.이번 아·태 농아인대회는 2000년 쿠웨이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가 '오일쇼크’ 등으로 취소된 뒤 12년 만에 맥을 잇는다. 그만큼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열망이 클 수밖에 없다. 문 위원장은 “지난해 2009년 대만에서 세계농아인경기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 기업의 후원으로 800억의 예산이 투입됐다”며 “소외계층을 위한 스포츠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른 대만의 국제적인 이미지가 한 층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고 전했다. 그는 “전세계 농아인들이 참가한 지난해 대만 대회와는 개최국과 참가 선수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면서도 "우리 정부와 기업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시 대만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축구, 육상, 배드민턴, 탁구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문 위원장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농아 스포츠인들 역시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을 보며 꿈을 키워 나간다. 이들에 대한 관심도 기울여 달라”며 당부했다. 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사진=임현동 기자
2012.03.13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