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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블의 추락은 어디까지..날개 잃은 ‘캡틴 아메리카4’ [IS리뷰]

“그렇게 쉽지 않을걸.”새롭게 방패를 계승한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만만히 보지 말라는 뜻이었으나 그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오랜 부진을 뒤집을 수 있을지, 그 미래와도 겹쳐 보인다.12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4’)는 MCU의 페이즈5에 해당하는 작품이자, 9년 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새 영화다. 지난 2019년 전임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해 토니 스타크 등 대중에게 익숙한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끝으로 퇴장한 후 6년째 과거의 아성을 뛰어넘는 작품이 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전장을 내민다.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선 건 안소니 마키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2014)에서부터 스티브 로저스의 조력 히어로 ‘팔콘’ 샘 윌슨을 연기 해왔다. ‘비백인’ 캡틴 아메리카로 주목받은 만큼 윌슨의 설정도 로저스와는 결이 다르다. 2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해 슈퍼 솔져 혈청을 맞고 강화 인간이 된 백인이었기에 작품 밖에서도 ‘보수의 아이콘’으로 통한 전임 캡틴 아메리카와 달리, 윌슨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한계를 최대한 타개해야 한다.작품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미국의 새 리더,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출발한다. 선출된 건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를 비롯한 여러 시리즈에서 원년 어벤져스의 앞길을 막아오며 고심 끝에 해체의 원흉 국무장관 새디어스 로스(해리슨 포드)다. 그는 신물질인 아다만티움을 두고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자원을 공평하게 배분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새 어벤져스를 내세우고자 한다. 윌슨은 그의 행보가 탐탁지는 않지만, 평화에 뜻을 함께하기 위해 정부에 기꺼이 힘을 빌려준다.윌슨과 대조를 이루는 건 스크린에선 처음 등장하는 최초의 흑인 캡틴 아메리카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다. 그는 정부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졌기에 제자 격인 윌슨의 행보가 우려되던 가운데 수상한 배후에 의해 로스 대통령 저격 사건에 조종당한다. 윌슨은 브래들리의 의혹을 벗기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빌런 추격에 발 벗고 나선다. 공군 출신 새 캡틴의 전장은 하늘이다. 날개도 비브라늄으로 무장했으며 시원하게 창공과 적을 가른다. 특이점은 인질은 물론이고 적의 목숨조차 구하려하는 그의 선량함이 반영된 전투 방식이다. 또 업그레이드된 슈트의 화려한 기믹이나 “혈청 맞을걸”이라고 후회하면서도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보여주는 그는 팔콘 시절을 다시 보게 한다.다만 세계 정세 힘겨루기와 배후 추적을 그린 정치 서스펜스 요소와의 밸런스는 아쉽다. 긴장감 없이 분량을 할애한 탓에 몰입을 해친다. 또한 미국이 우방국이었던 일본과 충돌을 빚지만, 윌슨이 대표하는 ‘새로운 미국’이 구해내는 점도 속이 훤해 유치하다. 국가에 충성한다는 대의보단 개인의 선의를 믿는 윌슨의 캐릭터 성은 매력적이지만 그 행동이 결과적으론 세계가 외계 침공으로 망해도 패권은 미국이 쥐겠다고 읽히니 공감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리더십이 부재한 작품 밖 현실 미국의 욕망이 읽히는 건 흥미롭다. 작고한 배우 윌리엄 허트를 대신해 해리슨 포드가 빚은 로스 대통령은 무능하고 심약하지만 통제욕이 강한 보스다. 종국에는 그 자신이 경계해 온 존재가 되어 ‘붉게’ 변하는 장면은 현실을 겨냥한 블랙 코미디로 읽히기까지 한다. 그런 리더를 품고 초인이 아닌 ‘새 캡틴’이 역설적이게도 멋진 신세계(브레이브 뉴 월드)를 재건한다는 불확실성이 새 어벤져스의 주요한 테마가 될 전망이다. 심지어 17년 만에 MCU에 복귀한 이번 주요 빌런의 이명또한 공교롭게도 ‘리더’다.글로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일단 20년 전 한국 영화 ‘달콤한 인생’을 소환해 벽돌 액션을 오마주 했다는 줄리어스 오나 감독의 팬심 고백은 ‘K국뽕’을 겨냥한 기만 같다. 한국 관객이 글로벌 최초 개봉 시험대로 여겨지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빛바랜 MCU 영광을 되찾아 보겠다는 궁여지책으로 느껴질 정도로 임팩트 있는 장면도 아니다. 그간 비판을 받아온 어색한 CG도 만연하다. 개봉 하루 전 기자시사회를 열고 소셜 리액션조차 단속해 리뷰 엠바고를 개봉 당일 해제하는 게 자신감 부족의 방증인 듯 하다. 118분. 쿠키 1개.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5.02.12 10:00
영화

‘하얼빈’ 우민호 감독 “참담한 현실, 위로가 되는 영화이길” [IS인터뷰]

“담담하지만 힘 있고 숭고한 영화로 풀어지길 바랐습니다.”영화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이 신작 ‘하얼빈’으로 겨울 극장가 대전에 합류했다. 지난 24일 개봉한 ‘하얼빈’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기까지, 독립투사들의 긴 분투를 그린 작품이다.우 감독은 영화 개봉에 맞춰 일간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제작사(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먼저 ‘하얼빈’ 연출 제안을 했는데 그때는 거절했다. 전작들에서 부정적인 사람들을 많이 다뤄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을 다룰 용기가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그러고 있다가 우연히 안중근 장군 자서전을 읽게 됐는데 제가 몰랐던 지점이 꽤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가 어떤 심정으로 엄청난 거사를 치렀는지 호기심이 생겼죠. 동시에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씀에 큰 울림이 왔어요. 이건 현재 우리에게도 힘과 위로를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제작사에 다시 연락을 했죠.”우 감독은 연출을 결심한 후 곧바로 각색 작업에 돌입했다. 기존에 제안받은 작품은 순수 오락영화에 가까웠던 터라 전면 수정이 필요했다. 우 감독은 오락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가장 클래식하고 묵직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 과정에서 액션도 최소화했다.우 감독은 “저도 오락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진심을 다해 찍으면 관객도 알아줄 거로 생각했다”며 “신안사 전투는 무술감독이 쾌감 넘치는 액션을 짜와서 많이 덜어냈다.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가 일제에 유린되는 걸 통쾌한 액션으로 찍을 수는 없었다”고 부연했다. 영화의 핵심 인물인 안중근은 처음부터 현빈이어야만 했다. 현빈의 눈빛에서 당시 안중근이 가졌을 양가적인 감정을 모두 읽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현빈이었다. 현빈은 우 감독의 출연 제안을 무려 세 차례나 거절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우 감독은 대뜸 영화 속 대사 하나를 언급했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라는.“말 그대로 될 때까지 했어요.(웃음) 삼고초려 끝에 출연을 결정했는데 만약 또 거절했으면 10번까지 제안했을 거예요. 끝까지 거절했으면 이 작품을 안 했을 수도 있고요. 전 이 영화로 우리가 아는 영웅 안중근의 이면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눈빛이 현빈에게 있었죠. 강인함 속에 부드럽고 처연하고 또 쓸쓸한 눈빛이요.”영화가 공개된 후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절제된 신파를 놓고는 의도한 것이라고 짚었다. ‘하얼빈’은 여느 역사 영화들이 그러했듯 얼마든지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이른바 ‘국뽕 마취’가 가능한 작품이지만, 우 감독은 그 길을 일부러 피해 갔다. “일단 제가 신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신파로 풀고 싶지 않았죠. 신파는 뭔가 쉽게 휘발되는 기분이에요. 사실 우리가 정말 마음이 깊으면 눈물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보이는 통곡으로 연기해 달라’고 했죠.”현재 ‘하얼빈’은 시국 맞춤형 영화로도 주목받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을 겪고 있는 현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대사가 다수 등장하는 까닭이다. 우 감독은 “저 역시 비상계엄 선언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 참담했다. 견고하다고 생각한 자유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순간이었다”고 개탄하면서도 “그걸 막아내는 시민들에게서 희망도 봤다”고 말했다.“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대극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해요. ‘하얼빈’ 찍을 때도 스태프들끼리 ‘흥행과 상관없이 삼일절, 광복절에 TV에서 계속 틀 영화니 정말 잘 찍자’고 하면서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요.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모든 독립군에게 누가 되지 않길, 대중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영화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12.27 06:04
영화

[단독] 장재현 감독 “‘파묘2’, 동어반복에 불과…차기작은 뱀파이어물” [송년인터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네요.”오랜만에 마주한 장재현 감독은 근황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장 감독은 최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진행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12.3 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시위 첫 금요일에 퇴근길에 친구들과 여의도를 잠깐 들렀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라고 개탄했다.장 감독은 유난히 소란했고 지난했던 올 한 해 한국 영화계에 숨통을 틔운 주역이다. 그는 지난 2월 개봉한 ‘파묘’가 119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했고, 국내 유수 시상식 감독상, 작품상을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로 극장가 성, 비수기의 경계를 허물고 오컬트 불모지인 한국영화 시장에 새 역사를 쓰는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영화 개봉하고 한동안 정신 차리는 시간을 보냈어요. 기쁨과 혼돈이 공존하는 시기가 한 6월까지 갔죠. 처음엔 뭔가 잘못된 거 같더라고요. ‘이게 1000만명이 볼 영화는 아니지 않나’ 싶었죠.(웃음) 잘돼도 300만 정도 예상했거든요. 그래도 축제 분위기라 기분은 좋았어요. 고마운 분, 감사드려야 할 분도 많아서 이리저리 바쁜 시간을 보냈죠.”‘파묘’를 복기하면서는 자신의 예상을 빗나간 관객들의 반응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파묘’는 전, 후반부가 명확하게 나뉘는 작품. 무덤 이장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다루던 영화는 중반부 오니(일본 귀신) 출현을 기점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 버린다. 후반부는 호불호가 많이 갈렸는데 특히 오컬트 마니아들 사이에서 의아한 반응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장 감독은 후반부야말로 그들을 위한 장면이었다고 했다.“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어요. 만들 때도 앞부분은 다 클리셰니까 힘을 빼고 찍었어요. 진짜 공을 들인 건 뒷부분이었죠. 옛날 강시, 미라 영화 때 볼 수 있었던 것들을 리얼하게 녹이고 싶어서 온갖 기술을 총동원했어요. 마니아들, 서브컬처 오타쿠들도 이 부분을 신선해 할 거라고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전 이 영화가 완전히 마니악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반 관객들이 또 다른 요소로 좋아해 줘서 여러모로 신기했어요.” 장 감독이 언급한 일반 관객들이 좋아한 요소는 바로 민족주의적 메시지, 이른바 ‘국뽕’이다. 관객은 캐릭터 이름, 차량 번호 등 영화 곳곳에 녹은 항일 코드(이스터에그)를 찾아 공유했고 이것은 ‘파묘’ 흥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하지만 정작 장 감독은 “전 이 영화를 직업 의식적으로 접근했다. 풍수지리사, 무당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근데 영화가 안 그러다가 그런(항일 코드) 부분이 조금 나오니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국뽕’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물론 장 감독의 예상 혹은 의도가 모두 비껴간 건 아니다. 정확히 닿은 것도 있다. 최대한 시원한 오락 영화로서 관객들의 시간을 ‘순삭’시키는 것이었다.“‘왜 이렇게 빨리 끝나’란 말이 가장 듣기 좋았어요. 이 영화는 ‘재미없는 신은 한 신도 만들지 말자’, ‘오락성을 띤 화끈한 극장용 영화를 만들자’라고 시작했거든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노력했던 지점이죠. 실제로 앞에 작품들보다 레이어도 적어요. 문학적 부분, 메타포를 줄이고 심플하고 직관적인 걸 선택했어요.” 장 감독의 이러한 선택에는 전작 ‘사바하’의 영향이 컸다. ‘사바하’ 개봉 후 일반관을 찾았던 그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장 감독은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상상한 관객, 예를 들면 ‘션 베이커 영화 나왔대. 가자’ 하는 관객은 10%였다. 나머지 90%는 극장에 놀러 온 관객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그때 제가 엄청난 걸 간과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이제 관객은 여운이 남는 영화보다 시원하게 끝나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바하’처럼 음흉한 것보다 뜨겁고 심플한 걸 원하는 거죠. 재밌는 구경거리로서 몰입감이 중요해진 거예요. 그래서 ‘파묘’도 직관적으로 방향을 틀었죠. 물론 그 탓에 ‘너무 다 보여줬다’는 혹평도 들었지만요.(웃음)” ‘파묘2’ 제작 여부를 묻는 말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무당, 풍수지리사, 장의사를 다 모이게 하려면 묘밖에 없는데 또 묘를 파는 건 동어반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핀오프 형태는 어떨지 궁금했다. 실제 ‘파묘’ 개봉 후 팬들 사이에서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윤봉길(이도현)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제작을 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저도 그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렇게 되면 완전 무당 콘텐츠가 돼요. 그럼 재미도 매력도 없을 거예요. 잼 안 바른 식빵 같겠죠. 이 두 캐릭터도 다른 사람과 협업해서 빛나 보인 거예요. 둘뿐이면 가짜, 허구의 이야기만 나오겠죠. 그렇다고 히어로, 소시민 영웅으로 접근하고 싶지도 않고요.”‘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 ‘파묘’의 세계관을 뒤섞는 일명 ‘장재현 유니버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내놨다. 장 감독은 “할 이야기가 없다. 주인공이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재미없는 이야기를 말도 안 되게 맞추는 것뿐”이라며 “카메오로 나오는 것도 장난 같아서 선호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그러면서 장 감독은 “물론 ‘검은 사제들2’나 ‘사바하2’는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는 있을 거다. 다만 1편보다 잘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한 작품 만드는데 제 인생, 수명의 5년을 끌어다 쓴다. 그걸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지 돈장사를 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사실 장 감독은 이미 차기작 준비에 돌입한 상태다. 이번에도 종교를 다룬 영화다. 핵심 키워드는 동방정교(천주교·개신교와 함께 칼케도니아 기독교의 세 가지 주요 분파 중 하나), 뱀파이어, 추적극이다.“동방정교가 뱀파이어, 드라큘라와 가장 잘 어울려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장르는 꽤나 종교적인 추적극이 될 거 같아요. 생각보다 에스피오나지스럽죠. 좀 캄하고 다크한 분위기가 될 듯해요. 추적극에 액션이 아닌 호러를 가미할 예정이죠. 뱀파이어가 요즘 액션화, 멜로화됐는데 저는 클래식한 요소를 가지고 와서 하려고 해요.”장 감독은 신작 준비를 위해 석 달째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당에도 다니고 있다. 목표하는 크랭크인 시점은 빠르면 2026년 상반기다. 장 감독은 너무 늦지 않느냐는 반응에 “전 시나리오가 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빌드업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또 빨리 나온다고 박수 쳐 줄 사람도 없다”며 웃었다.“지금은 차기작 생각밖에 없는 거 같아요. 정신 바짝 차려야 되겠다 싶죠.(웃음) 아무쪼록 올 한 해는 ‘파묘’가 참 뜨거웠어서 너무 고마웠어요. 덕분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요. ‘파묘’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12.26 05:35
영화

[무비로그①] ‘하얼빈’ 애국 영화 울림에 첩보 영화 스릴까지 [IS리뷰]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이나 업적을 조명하는 작품은 많다. 그러나 이를 오락영화로 제대로 변주시킨 작품은 많지 않다. ‘하얼빈’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낸 작품이다. 영화는 안중근의 일대기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첩보 영화로서도 온전히 기능한다.이야기의 시작점은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이다.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진공 작전을 통해 일대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한다. 이들은 기습 공격을 통해 일본군을 격파하고 생포하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안중근은 “사로잡힌 적병이라도 죽이는 법이 없으며 또 어떤 곳에서 사로잡혔다 해도 뒷날 돌려보내게 돼 있다”는 만국공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를 석방한다. 이 일로 안중근은 내부의 불만을 사고 급기야 의병부대 위치가 노출되며 수많은 동지를 잃는다.이후 영화의 시점은 1년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간다. 안중근의 곁에는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이창섭(이동욱)이 함께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동지들과 다시 한번 뜻을 모은다.‘하얼빈’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다만 그간의 안중근 콘텐츠가 그의 거사(이토 히로부미 저격) 준비, 사건 당일, 순국의 순간 등에 집중했다면, ‘하얼빈’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기까지 독립투사들의 긴 분투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얼개 자체는 역사에 기반한다. ‘하얼빈’은 단지동맹, 이토 히로부미 저격 등 안중근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나열되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차례로 짚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역사적 고증을 최우선으로 둔, 역사가 스포일러인 영웅담은 아니다. 안중근, 우덕순, 최재형을 제외한 주요 캐릭터들은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일부에 영화적 상상을 더한 허구의 인물이다.우민호 감독은 러닝타임 내내 이들 캐릭터를 서로 얽히고설키게 하며 짙은 밀도의 관계성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우 감독이 꾀한 건 첩보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다. 특히 영화는 안중근이 예기치 않은 일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지는 순간을 기점으로 첩보 영화로서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독립군 사이 밀정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과 공유한 후, 후보군을 하나둘 추리며 긴장감을 구축하는 식이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은 생각보다 낮은 끓는 점이다. 장르적 재미를 위함인지 ‘국뽕’ 혹은 신파 경계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하얼빈’은 조금 더 가도 좋을 곳에서 멈춰서기를 반복하며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 독립군들의 고뇌와 활약은 충분히 느껴지지만, 더 큰 절정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다. 반면 독립군들의 외로운 길을 광활한 자연 풍광으로 묘사했다는 점은 호불호가 나뉠 수 없는 이 영화의 강점이다. 우 감독은 몽골, 라트비아를 오가며 담은 드넓은 얼음 호수, 설원, 사막 등에 독립군들을 세워놓는다. 자연이 주는 황량함 속에서 이들의 쓸쓸함은 더욱 극적으로, 절절하게 다가온다.광활한 풍경을 압도하는 것도 있다. 바로 배우들의 연기다. 극을 이끄는 현빈은 분노, 슬픔,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안중근의 얼굴에 시시각각 실어 나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안중근의 표정은 후반부 다소 엉성해진 신과 신 사이를 단단하게 조이는 역할까지 해낸다.현빈을 둘러싼 인물들,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등도 빈틈없는 열연으로 서사에 깊이를 불어넣는다.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와 이동욱은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 주연 못지않은 인상을 남긴다. 다만 특별 출연으로 힘을 보탠 정우성은 악수다. 최근 불거진 사생활 잡음은 차치한 평가다. 외모도 연기도 홀로 겉돈다.영화의 소재가 소재이고,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의미 부여를 하게 되는 대사도 여럿 있다. 주로 현빈의 몫인데, 정작 귀에 꽂히는 건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를 맡은 릴리 프랭키의 입에서 나온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오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12.20 06:00
스포츠일반

군인의 아들...만기 전역 약속한 '병장 사수' 조영재, 이게 K-국뽕 [2024 파리]

운동 선수 병역 혜택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인기 구기 종목 스타들이 일부로 입대를 늦춰 국제대회 대표팀 승선하는 사례가 논란을 만들었다. 파리 올림픽 남자 25m 속사권총에 출전한 사격 대표팀 조영재(25·국군체육부대)는 5일(한국시간) 열린 결선에서 2위에 올라 은메달을 획득, 병역 혜택 대상자가 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AG)을 앞두고 병역법이 개정되며, 군 복무 중인 군인도 조기 전역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조영재는 "부대에서 동기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군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라며 만기 제대를 예고했다. 그는 올림픽 개막 전 인터뷰에서도 이와 같은 의지를 전한 바 있다. 조영재가 전역하는 날짜는 9월 19일이다.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말년 병장'이라 내부 생활도 힘들 게 없다. 하지만 이 점을 고려해도 조영재의 주저 없는 선택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는 "나는 부대 사람들이 다 좋고,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다"라며 병역 혜택을 거부할 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조영재에게 파리의 낭만은 전우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자대와 군 생활을 향한 애정이 진심 같다. 군 복무는 한국 남자 통과 의례다. 조영재는 자국 콘텐츠 찬양 경향을 뜻하는 '국뽕'을 자극했다. 비슷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황저우 AG에서 남자 핸드볼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한 이창우도 전역까지 3개월을 남겨 두고 있었지만, 남은 기간을 모두 채웠다. 조영재가 주목받은 다른 이유는 그의 아버지 조병기(49)씨가 무려 30년 동안 복무하고 지난해 준위로 제대한 '진짜' 군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영재는 메달 획득 뒤 인터뷰에서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조영재가 메달을 획득한 뒤 본지와 통화한 조영재씨에게 아들의 만기 제대 의지에 대해 "당연히 군 생활을 더하고 마무리 해야 한다. 내가 군인이었다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군 생활을 오래 한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본받으려는 아들의 모습에 내심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군인은 총과 사격이 익숙한 직업. 조영재가 사격 선수 길을 걷고, 올림픽 무대에서 정상급 기량을 보여준 것에 타고난 게 있지 않았을까.하지만 조병기씨는 "전혀 아니다. 아들 스스로 사격에 재미를 느끼고 직업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슬럼프도 있었는데, 잘 극복해 올림픽 무대까지 섰다. 나는 한 게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자신을 "그저 엄하게 대하는 게 맞는 줄 알았던 어리석은 아버지"라고 돌아본 조병기씨는 "나는 자식을 키울 줄 몰랐다. (조)영재 스스로 잘 성장해 이렇게 나라를 빛내는 데 기여했다. 너무 자랑스럽다"라고 감격했다. 무뚝뚝한 기운을 주는 '전직 준위' 군인 아버지는 아들이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부자(父子) 사이 좀처럼 꺼내지 않던 애정을 드러내 교감하는 것도 스포츠 팬 감성을 자극했다. 병역 혜택 관련 에피소드에 모처럼 미담이 더해졌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4.08.07 09:00
연예일반

하니가 던진 만루 홈런... 뉴진스 월드투어 기대감으로

팬 미팅을 가장한 단독 콘서트였다. 여타 팬 미팅처럼 게임, 이벤트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음악’ 자체로 150분 동안 현지 팬들과 교감했다. 2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에서 뉴진스는 ‘디토’, ‘오엠지’, ‘하입보이’ 히트곡은 물론 커버 무대, 밴드 라이브, 디제잉 등을 선보이며 도쿄돔을 함성으로 가득 채웠다. 원래 도쿄돔 주변은 평소 일본 프로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색상인 주황색으로 물들지만, 이날은 뉴진스를 상징하는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도쿄돔 외부와 내부를 장악했다.◇ 혜인 합류와 뉴진스 멤버들의 눈물 팬 미팅의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발등 미세 골절로 활동을 중단했던 혜인의 합류였다. 이는 현지 언론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룬 대목이었다. 혜인은 일본 데뷔 싱글 ‘슈퍼내추럴’ (Supernatrul) 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터라, 일본 현지 팬들과는 팬 미팅에서 처음 만났다. 혜인은 팬 미팅 양일간 대부분 무대를 소화하며 부상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특히 개인 독무대 시간에서는 다케우치 마리야의 ‘플라스틱 러브’와 게스트로 온 일본 가수 리나 사와야마의 노래 ‘배드 프랜드’를 함께 부르며 매력적인 음색을 자랑했다.혜인은 무대가 끝난 뒤 소회를 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도쿄돔에서 이틀이나 함께 하게 돼 너무나 감사하다”며 “언니들이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눈물을 쏟았다. 그러자 뉴진스 멤버들은 서로 포옹하며 “너가 더 고생 많았어”라고 위로했고, 현장에 있던 버니즈들 역시 울컥한 듯 눈물을 보였다. ◇ 하니, 일본에 만루 홈런 제대로 던졌다 ‘아아, 와타시노 코이와 미나미노 카제니 놋테 하루시와(아아,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가네.)~’정말 센세이션했다. 2010년생인 하니가 1980년대 일본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끈 전설의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부를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푸른 산호초’는 넘실거리는 리듬에 청량한 멜로디가 특징으로, 일본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단순히 노래만 커버한 게 아니다. 예스럽게 컬을 넣은 단발에 흰색 긴 치마와 구두를 신고 세이코가 활동했을 당시를 완벽히 재현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일본 유명 걸그룹 멤버가 밀집모자를 쓰고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를 부르는 셈이다. 누구라도 내가 좋아하는 외국 가수가 자국 전통 노래를 부르는 데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제대로 된 ‘국뽕’자극이었다.실제로 하니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하자 관객석에서는 “와아!”하는 남성 팬들의 묵직한 함성이 쏟아졌다. 팬 미팅이 끝난 뒤 한 50대 팬은 “오늘(27일) 하니의 ‘푸른 산호초’는 일본의 수많은 아저씨들을 열광케 할 거다. 듣는 내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하니의 ‘푸른 산호초’ 커버 무대는 바다 건너 한국 SNS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누리꾼들은 “일본 가서 만루 홈런 제대로 날렸네”, “기획, 연출, 비주얼 삼박자 완벽”, “무대를 찢었다”, “일본인이 이렇게 소리 지른 거 처음 본다”라며 도쿄돔 팬 미팅 기획력에 칭찬을 쏟아냈다.◇ 일본 데뷔 5일만 도쿄돔, 월드투어 전초전 제대로 “일본 도쿄돔 팬미팅은 월드투어 하기 전에 확실히 감을 잡는데 좋은 무대다.”27일 오후 뉴진스 도쿄돔 마지막 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기자들과 인사하며 나눈 이야기다. 이날도 민 대표는 자신의 공식(?)처럼 자리 잡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모자 그늘 때문에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전날 현지 언론의 큰 관심과 팬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료한 뉴진스 팬 미팅에 대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하면서 “다만 어제는 떨렸는데 오늘은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즐기다 가시라”고 당부의 말도 빼먹지 않았다. 민 대표의 여유로운 미소는 도쿄돔 팬 미팅이 성공적으로 끝날 거라는 자신감으로도 해석됐다.뉴진스는 데뷔 1년 11개월이라는 최단기에 도쿄돔에 입성하고, 일본 데뷔 5일 만에 관객 9만여 명을 동원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기획력과 멤버들의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 및 여유로운 무대매너는 뉴진스의 월드투어를 기대시키기에 충분했다. 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4.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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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니는 은어를 좋아하는가..장재현 감독이 밝힌 ‘파묘’ A to Z [전형화의 직필]

“‘검은 사제들’(544만명)보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감사할 뿐입니다.”장재현 감독은 ‘파묘’가 올해 첫 6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자신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영화 전반부보다 후반부를 오컬트 마니아들이 더 좋아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일반 관객들이 더 호응해주고 있는 탓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는 그에게 ‘파묘’의 A부터 Z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물었다. 때로는 의도한 것부터, 더러는 관객이 의미를 부여해준 것까지 ‘파묘’의 아주 긴 뒷이야기를 전한다. 이 인터뷰는 ‘파묘’의 스포일러를 대거 포함합니다.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호불호가 있는 장르라 엄청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검은 사제들’보다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내심 있었을 뿐이다.-어렸을 때 이장을 하는 것을 보고 ‘파묘’의 원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는데. 본격적인 준비는 ‘사바하’ 이후부터였을텐데.살던 동네가 그런 일들이 많았다. 이장을 했는데, 굿도 하고 제사도 크게 지냈다. 무덤을 파고 관을 뜯었다. 고백하자면 그 때부터 관을 좋아했다. 무덤에서 갓 꺼낸 낡은 관이 주는 이미지를 좋아했다. 관을 놓고 이야기를 발전하려 했다. ‘사바하’ 끝나고 한국장례협회를 찾아 대표님을 만나서 이틀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풍수지리사 분들도 만났고. 통상적으로 지관이라고 하는데, 지관은 조선시대 관직이고 풍수지리사가 더 맞는 말이다. 풍수지리사협회가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풍수지리협회 분들을 만났고 협회에 소속 되지 않고 혼자 재벌집 묫자리를 봐주는 분들을 만났다. 동시에 장의사분들도 만났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분들이 살면서 쌓아온 코어랄까, 내공이랄까, 거기에 공통된 것들이 있더라. 대체로 이장의 80% 정도는 땅을 팔거나 재개발이 돼 하는 경우다. 나머지 20%가 다른 경우인데, 무덤을 꺼내는 것 자체가 잘못됐던 걸 꺼낸다는 의미다. 그게 과거로 가는 여정 같다고 생각했다. 뭔가 과거의 잘못된 것을 꺼낸다는 것, 거기에서 이야기가 출발했다. -파묘와 친일파, 일본제국주의를 연결한 까닭은.소재를 계속 파헤치면서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올까 고민했다. 그런데 파묘를 검색하다보면 친일파 파묘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가까운 과거이면서 더 밑에는 뭐가 있을까로 계속 들어갔다. 티눈 수술을 했는데 고름을 빼도 끝이 아니더라, 뿌리까지 뽑아야지 새로운 게 나온다. 그것처럼 친일파 밑으로 뿌리까지 파 내려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영화 초반 틀니 일화는 감독의 실제 일화에서 비롯 됐다던데.친척 분 중에 무속인이 계신다. 난 할머니가 거의 키워주시다시피 해서 할머니에 대한 정이 많다. 돌아가신 뒤 할머니를 기억하려 틀니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척 분이 할머니 틀니를 갖고 있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갖고 가셔서 불 태워서 공양하셨다고 하더라.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는, 사실 실체가 불분명하다. 말뚝을 박아서 정기를 끊는다는 이야기는 정조실록에 정조가 인재가 없는 걸 한탄하자 고려말 명나라 도사가 와서 정기를 끊기 위해 말뚝을 박아서 그렇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 이야기를 영화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 이유는. 그말대로 쇠말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사로도 “99%는 가짜다. 그럼 1%는?”이란 대사를 넣었다. 영화 속에 실제 쇠말뚝을 안 넣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깐. 게다가 쇠말뚝을 넣으면 너무 ‘국뽕’일 듯 했다. 그래서 쇠말뚝을 대체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는 걸 넣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걸 오컬트 장르에 붙여보자고 생각했다.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에 ‘사무라이의 시대’란 게 있다. 그걸 재밌게 봤는데, 4화인가에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무라이들이 조선인을 죽이는 게 삽화로 묘사되는데 기분이 너무너무 안 좋더라.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 침략의 상징과 사무라이 정령을 결합시키고 그걸 쇠말뚝을 상징화하는 걸로 만들었다. 그걸 뽑으면 이 땅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파묘’에 그 상징을 한반도 허리에 해당하는 곳에 박아놓는 음양사 이름을 무라야마 준지라고 설정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귀신’ 등을 집필한 무라야마 지준에서 따온건가.노코멘트다. ‘사바하’ 때 고생을 많이 해서리. -최민식이 맡은 상덕, 김고은이 맡은 화림, 유해진의 영근, 이도현의 봉길 등 주요 인물들의 이름들이 다 독립운동가에서 비롯됐다. 나라를 지킨다는 뜻의 보국사나 그 절을 세운 스님 이름이 원봉이라는 것도 그렇고, 의열장의사란 이름도 그렇고. 이렇게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언제부터 마음 먹었나.처음부터다. 원래 전작들에서도 극 중 인물들 이름을 영화 주제에 맞게 지었다. ‘파묘’는 앞에는 오컬트, 뒤에는 항일이다고 하는 평이 있는데 난 두 개가 같은 맥락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무덤을 한 번 더 파는 것이라고. 친일청산과 항일을 나눠서 생각하는 게 아닌 것처럼. 독립기념관에 갔는데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분들이 너무 많더라. 그 분들의 이름을 어감을 고려해 되살리려 했다.-네 명 주인공들의 옷색이 파란색(좌청룡)과 검정색(북현무), 빨간색(남주작), 하얀색(우백호)인 건 사방신의 의미를 고려한 것인가. 캐릭터 포스터에서도 이들이 각 사방을 보고 있는데.의상을 설정 할 때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가장 먼저 고려한 건 최민식-유해진 세대와 김고은-이도현 세대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초반에 화림이 의뢰를 받은 미국 저택에서 불상 뒤에 야차상을 꺼내 놓는 건, 2부 오니의 등장을 알리는 복선으로 준비한 것인가.그렇다. 영화가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갈 때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도깨비, 요괴 등 이물감을 줄 수 있는 물건들을 곳곳에 배치했다.-왜 이야기를 이렇게 두 갈래로 만들었나. 원래 구상을 할 때는 미국 의뢰인 박지용이 주인공이었다. 깔끔한 오컬트 같은 구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극장에 가서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보는데 많이 답답하더라. 그 당시 작가주의 작품들이 많이 개봉하기도 했는데, 여느 때라면 극장에서 사유할 거리를 얻고 극장문을 나서는데, 코로나 때는 답답하게 나오게 되더라. 그럼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게 됐다. 난 체험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앞의 빌런과 뒤의 빌런을 다르게 하고, 정통 오컬트에 다른 장르를 접목시키고자 했다. 난 뒷부분을 크리처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뱀파이어, 미이라, 강시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것들 역시 광의의 오컬트물이고. 초자연적 존재들의 이야기니깐. 그리고 그런 뒷부분을 이런 장르물 마니아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었던 건, 앞에는 보편적이고 뒤에는 마니아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는 점이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처럼 영화 속에서 장르가 바뀌는 부분이 덜 대중적이고 마니아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라 의외였다.-무속인들이 LA에 출장을 많이 가나.실제로 많이 간다. 특히 일본으로 가장 많이 간다. 일본에는 우리 같은 의미의 신내림이 거의 없어서 알음알음 소개로 많이 간다. 미국도 재미교포들 소개로 많이 가고. 풍수사들도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닌다.영화에 편집된 장면이 있는데 화림과 봉길이 일본으로 출장을 갔던 장면이 있다. 무당길드라고 해야 할까, 스승님이 있고 거기서 파생된 신자매, 가족들이 있다.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 스승님이 일본과도 연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첫 장면에 김고은이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건가.화림이 일본어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영화의 톤앤매너, 지향하는 바를 그 대사로 보여주고 싶었다. -컨버스를 신고 에어팟을 꼽는 MZ무당이 화제를 모았는데.실제로도 그렇다. 무속인들을 만나면 생각보다 많이 젊다. 세대교체도 되고 있고. 많이 뛰다 보니 도가니가 아파서 컨버스 같은 편한 신발, 편안한 구두를 많이 신는다. -이도현이 맡은 봉길이 몸에 새긴 문신은 태을보신경인가. 그 캐릭터도 실제 인물에서 가져왔다던데.태을보신경이 맞다. 잡귀신으로부터 몸을 보호해달라는 경이다. ‘사바하’ 때 야구선수를 하다가 신병이 와서 무당이 된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이 몸에 그렇게 문신을 새겼다. 언젠가 그 캐릭터를 꼭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봉길로 가져왔다. -대살굿이 원래 있나? 타살굿인데 영화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대살굿으로 바꿨나.통상적으로 타살굿이라고 많이 한다. 저승사자가 왔을 때 마지막으로 제물이 대신 죽는 굿. 그걸 대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대살굿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영화적으로 대살굿으로 썼다.-김고은이 대살굿을 할 때 받는 건 몸주신인 할머니인가, 아니면 다른 귀신인가. 할머니와 대살굿이 어울리지 않는데.대살굿을 할 때는 장군신을 받는다. 아주 강력하게 맞서야 하니깐. 대살굿은 저주 같은 오펜스굿이 아니라 방어하는 디펜스굿이다. 그래서 그 때는 자신의 몸주신이 아니라 장군신이 오는 것이다. -대살굿은 실제 굿의 동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가.그렇다. 원래는 4시간 짜리 굿을 5분 안에 보여줘야 했기에 어떤 걸 보여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김고은이 무속 선생님 집에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하루 종일 리허설을 했다. 그 뒤 하루에 몰아서 카메라 4대로 찍었다. 그 감정을 나눠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깐. 일단 김고은에게 즐기는 모습을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무속인은 신을 받으면 즐긴다. 웃음도 보이고. 김고은이 굿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칼로 자신의 얼굴을 긋는 장면, 뜨거운 숯에 손을 넣는 장면 등은 자신에게 신이 들어왔는지를 확인하고 남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 안에 신이 들어와서 나도 멀쩡하니 당신들도 안전할거야라고. 그걸 보고 인부들이 일을 시작한다. 칼을 땅에 묘지 방향과 반대로 던지는 건, 원래 모든 굿이 그렇다. 이 근처의 나쁜 것들이 이 칼 밖으로 나가 일종의 결계가 쳐지는 것이다. 화림이 동물 피를 마시는 건, 신에게 일종의 밥을 바치는 의미이고. -굿을 시작하기 전 봉길이 화림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게 많은 연성러들을 자극시켰는데. 둘의 관계는 이성적인 게 담겨 있거나 발전 가능성이 있는 건가. 둘의 전사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 계획은?무속 세계에선 스승이 굿 준비를 하면 제자나 신아들,딸들이 옷도 입혀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다 준비를 해준다. 둘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그 장면을 넣었다. 이성적인 마음이 담겨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둘의 전사를 담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파묘’보다 더 재밌는 좋은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산소탈로 직계 장손들이 해를 입는데, 왜 직계가 아닌 의뢰인의 어머니 즉 친일파 유령의 며느리까지 죽임을 당하는 건가. 영화적 설정 오류이지만 며느리가 죽는 건, 엔딩크레딧에 써 있듯이 이름이 배정자이기 때문인가? 일제시대 대표적 친일파?노코멘트다. 설정이 어긋나는데 작가의 개입인 것만은 분명하다. -친일파 영혼이 LA집 창문을 열어달라거나 프라자호텔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사실 문을 열어줘야 들어간다는 건 뱀파이어물의 특징이지, 동양적인 오컬트 특징은 아닌데. 맞다. 연출적으로 재미를 주려고 섞은 것이다. -전반부 친일파 귀신 장면은 덜 자극적인 것 같은데.일부러 담백하게 담았다. 더 직접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있었는데 편집했다. 전반부가 담백해야 후반부에서 더 강렬할 것이라 생각해서 그리했다. -친일파 귀신이 사실 영화 속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유리에 비추기도 하지만, 잘 찾아보면 많은 곳에 있다. 심령사진을 보면 귀신은 찍는 게 아니라 찍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찍힌다는 느낌으로 영화 속에 담았다. -첫 번째 묘를 꺼낼 때 등장하는 뱀은 일본요괴 누레온나인데. 하필이면 돼지띠 일꾼에게 죽임을 당한다. 돼지랑 뱀은 상극이기도 한데. 그래서 동티 난 그 일꾼은 틀니 파묘할 때 나온 인물이기도 한데. 일이 해결된 뒤 어찌 되나. 누레온나는 물의 요괴다. 잘못된 것을 건드렸다는 설정으로 넣었다. 물의 요괴라 그걸 건드리자 비도 오고 그러는 것이다. 원래 묘가 탈이 나는 경우 뱀이 관에 들어오는 ‘사염’, 벌레가 들어오는 ‘충염’, 바람이 든다고 해서 ‘풍염’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는 뱀이 관에 들어갔는데 밑의 요기가 너무 세서 뱀이 변태가 일어나지 않았을까란 설정이다. 그래서 비슷한 대사도 넣었다. 그 인부는 틀니 파묘할 때 나온 인물이 맞다. 일부러 동티 나는 인물로 연결하기 위해 틀니 파묘할 때 포커싱을 잡았다. 편집됐는데 나중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그 양반도 좋아진다는 장면이 있었다. 동티풀이가 된 셈이니깐. -조선총독부가 보이는 프라자호텔은 세트 촬영인가.내부는 세트고, 창에 보이는 광화문 정경은 프라자호텔에서 소스 촬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스를 LED월을 띄우고 촬영했다. 블루스크린를 놓고 합성을 하는 건 색감이 잘 안맞는 것 같았다. -친일파 귀신 혼부르기를 할 때 화림이 그 장례식장 주소를 읊는데.실제로 그렇다. 혼이 와야 할 위치를 부른다. 무속인에게 고증을 받아 만들었다.-의뢰인에게 진짜 상덕이 거는 휴대전화 진동음과 친일파 귀신이 거는 휴대전화 진동음이 다른가.아니다. 같다. 쇼트 길이가 차이가 나서 같은 음을 넣는데 리듬이 달라진 것이다.-의뢰인이 욕조에 누워있는 것을 비롯해 전반부에 물의 이미지가 많은데.그렇다. 욕조도 그렇고 땀도 그렇고 비도 그렇다. 후반부에는 불의 이미지가 많다. 드럼통 불도 그렇고. 그렇게 물과 불의 이미지를 전반부와 후반부에 대비시켰다. -친일파 관을 태울 때 일제 시대 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훈장이 들어있는데.그래서 이장할 때 그 신분이 드러날까봐 관을 열지 말고 그대로 화장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염을 할 때 먼길옷을 입히는데,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생전에 고인을 상징하는 옷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고인이 좋아하는 물품을 넣기도 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숫자는 실제로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인가. 어디며 어떻게 짚었나.풍수사들에게 물었더니 모두 같은 곳을 이야기하더라. 강원도 고성 향로봉이다. 영화 속에도 나온다. 상덕 화림 등이 얼굴에 문신하고 산에 올라갈 때 드론샷으로 산의 정경을 인트로로 잡는데 바로 그곳이 향로봉이다. -관을 두 개 넣는 첩장은 새로운 건 아니지만 밑에 넣는 관을 세로로 넣어서 마치 못의 형국으로 만든 게 기발한데.이야기했지만 실제 쇠침, 쇠말뚝을 넣는 게 아니라 그걸 상징하는 걸 넣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자체를 못처럼 만들었다. -흉한 것인 오니의 설정은.전쟁터에서 신처럼 모셔지려면 외형부터 거대해서 위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척 거구를 생각했고, 2미터 40센치미터로 설정했다. 임진왜란에도 참전했고, 그 뒤 세키가하라 전투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반대 진영에 참전했다가 패배한 뒤 영화 내용처럼 된 인물이란 설정이다.-한국의 도깨비와 일본의 오니는 다른 존재인데. 그래서 5장 도깨비불 옆에 일본어로 오니라고 적었다. 다른 소제목은 다 한글 옆에 한자인데 그것만 일본어다. 원래는 그 장의 제목을 도깨비라고 했다가 너무 의미가 많을 듯 해서 좀 더 명징하게 가고자 도깨비불로 가고 옆에 오니를 넣었다. 그때부터 막가는 설정이니 좀 더 직관적인 제목으로 관객을 인도하고 싶었다.-도깨비불로 주인공들이 환각을 보는 데 별다른 설명은 없는데.자연스럽게 관객이 같이 홀리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왜 나이트클럽 들어가면 처음에 사이키 조명에 홀린 것처럼. 플래시백 느낌으로 만든 게 아니니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니가 오백년 전에 불경을 정복했다고 하는 장면은 ‘드라큘라’가 떠오르는데.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광팬이다. 거기에서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이미 정복했다고 한 장면의 오마주다. -오니가 은어와 참외를 좋아한다는 설정은.일본만화 ‘음양사’를 좋아하는데, 은어와 참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거기에서 전국시대 사무라이가 좋아할 법한 음식들을 고민해서 가져왔다. -화림이 탑으로 가니 안전했다는 건. 탑, 곧 부도는 스님의 사리가 있는 곳이고 그래서 신성하다는 의미로 설정했다. -보국사 보살이 봉길 위에 올라간 뒤 자신의 옷을 찾는데. 불교에서 선종할 때 부처의 옷을 입고 육신의 원한을 잊는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 보통 영은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그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스님의 옷을 매칭시켰다. 그 장면을 그렇게 해석해도 될 듯 하다. -음양오행을 마지막 문제 해결의 원리로 사용했는데.오행이 원래 풍수지리의 베이스다. 풍수사가 과연 어떤 걸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국 풍수사가 오행을 고민해서 싸우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화림과 봉길은 ‘음양’, 상덕 영근은 ‘오행’이란 설정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거론되는 그 무덤을 만든 기순애는 일본어로 여우인 키츠네에서 온 것인가. 그렇다. 일제 때 우리나라 문헌에도 여우를 기순애라고 표현한 것들이 있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보국사 표시판에 있는 풍수사 표식은 원래 있는 것인가.그렇다. 풍수사협회에 따라 다양한 표식들이 있는데 가장 이 영화에 맞는 걸 가져왔다.-화림의 몸주신인 할머니는 일본 음양사랑 맞섰거나 그런 전사가 있는 인물인가. 실제 무속인인 고춘자님이 연기했다던데.화림의 조상 중 음덕을 많이 쌓은 분이란 설정인데 그런 전사까진 설정하진 않았다. 일종의 수호천사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고춘자님이 두 번 정도 등장하는데, 그 장면들은 직접 찍으셨다. 그런데 워낙 바쁜 분이라 보충 촬영은 대역이 찍었다. -여느 퇴마극과 달리 주목을 사이에 놓고 오니와 화림이 대화를 나누는 게 이채로운데.어느 산이든 산주인이라 불리는 큰 나무가 있고, 그걸 주목이라 불렀다. 일본은 그런 경우가 많은데, 우리도 성황목이라 불리는 나무들이 있었고. 그걸 일본의 정령신앙을 대입해서 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병실에 누워있는 봉길을 놓고 도깨비놀이를 하는데. 제주도에 있는 굿인데, 귀신을 속여서 정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오니 투구에 지네 문양이 있고, 봉길을 놓고 닭으로 대살굿을 준비하는데. 지네와 닭이 천적이라는 걸 고려한건가.지네는 항상 북쪽으로 간다. 뒤로 가지 않고 전진을 하고. 그걸 오니의 캐릭터에 은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닭은 그걸 고려했다기보다 봉길이 닭띠라 닭을 준비한 거다. 일종의 대살굿이니 앞에서 돼지 띠 인부들을 위해 돼지를 준비한 것처럼.-유해진을 교회 다니는 설정으로 한 건.그래도 제가 교회 다니는 집사인데 이런 영화 만들면서 교인들에게 면피를 하고 싶었다. 실제로도 만난 장의사 중 한 분이 교회 장로님이기도 했고. -음악 설계는 어떻게 했나. ‘사바하’도 같이 했던 김태성 음악감독과 작업했는데.전체적으로 저음이 많다. 불협화음이 도드라지고. 김태성 음악감독님이 훌륭히 해주셨다. -마지막 결혼식 사진 장면은 독립운동가 사진들을 은유한 것인가. 또한 ‘사바하’ 이다윗이 등장하는 건 장재현오컬트유니버스를 고려한 설정인가.독립운동가 사진처럼 찍은 것이냐는 질문은 노코멘트하고 싶다. 이다윗이 등장하는 건 사실 원래 조명팀 중 한 명에게 그 장면을 부탁했는데, 마침 다윗이 시간이 있다고 해서 찍었다. 특별히 장재현오컬트유니버스를 고려한 건 아니다.-‘사바하’의 이정재 이다윗, ‘파묘’의 김고은 이도현이 한 사건을 쫓는 설정으로 ‘사바하2’를 만들 계획은 없나.오컬트유니버스가 계획에 없는 건 아니어서 매 작품마다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 하기는 했다. 시나리오를 빨리 쓰기야 ‘사바하2’보다 ‘파묘2’가 빠를 수는 있겠지만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 장담을 못하겠다. 등장인물보다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여야 하는 가가 가장 중요하다. -‘검은 사제들’에선 사람을, ‘사바하’에선 하늘을, ‘파묘’에선 땅을 이야기했는데. 차기작은 어떤 걸 이야기할 계획인가.신에 대한 이야기다. 믿음에 대한 이야기고.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건국전쟁’ 감독이 ‘파묘’에 좌파가 몰리고 있다고 했는데.일단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겠나. 난 ‘파묘’가 색깔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땅에 사는 한국사람이라면 무의식에 담겨 있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전형화 기자 brofire@edaily.co.kr 2024.03.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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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도 웰메이드면 조크든여’… ‘파묘’ 삼일절 연휴에 600만 간다

영화 ‘파묘’가 지난해 ‘서울의 봄’에 이어 또 한 번 한국 영화계에 단비를 뿌리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 이후 파죽지세로 누적 관객 수 100만, 200만, 300만을 넘어선 ‘파묘’는 이 속도대로라면 이번 주말 500만 돌파는 확실시된다. 운이 좋을 경우 600만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2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7일째인 28일 누적 관객 수 300만을 넘겼다. 200만을 돌파한 지 고작 3일만이다. ‘파묘’는 개봉 당일 33만, 개봉주 주말 18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3일 만에 100만, 4일 만에 200만 고지를 넘었다. 개봉 4일째에 100만, 6일째에 200만, 10일째에 300만을 넘겼던 ‘서울의 봄’과 비교했을 때 ‘파묘’가 관객을 쌓아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항일코드 담은 영화, 삼일절 특수 기대‘파묘’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잇는 장재현 감독의 새로운 오컬트 작품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영화 중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그 주인공. 배급사 등 영화 관계자들은 이 부분이 관객들에게 스포일러로 작용할까 싶어 시사회 및 인터뷰 이후 기자들에게 수차례 영화 속 등장인물이나 캐릭터 등을 너무 직접적으로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바꿔 말하면 바로 이 부분이야 말로 ‘파묘’의 백미라는 의미다. 그냥 귀신 나오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 ‘파묘’를 통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던 장재현 감독은 ‘파묘’의 중후반부부터 갑자기 장르적 색을 바꾸는 과감한 연출을 했다. 이 중후반부에서 중요한 건 ‘항일’이다. 영화는 ‘땅’이라는,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를 활용해 땅 속에 스며든 민족의 트라우마를 정화한다. 개봉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0815’, ‘1945’ 등 주인공들이 타는 자동차의 번호, 독립운동가들에게서 따온 캐릭터의 이름 등 ‘파묘’ 속에 숨겨진 각종 항일코드를 찾아 공유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박현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떻게 보면 ‘파묘’는 오컬트의 외피를 쓴 시대극, 혹은 크리처물로 볼 수도 있다”며 “오컬트라는 장르 속에 민족의 트라우마를 ‘파묘’한다는 감독의 의도를 숨겨놨다.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숨겨진 것을 직접 발굴하는 느낌을 안겼다”고 짚었다.이어 “‘파묘’ 스토리에서 ‘첩장’이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오컬트로 교묘하게 시대극과 크리처 장르를 숨겨둔 모양새와 맞닿는다”면서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숨겨둘 경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은데 ‘파묘’는 그렇지 않다. 그만큼 대중성과 만듦새가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항일코드가 삼일절 연휴와 만난 게 특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그 기간이 지나면 누적 관객 600만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게 영화계의 기대다.앞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영화 ‘오펜하이머’는 광복절인 지난해 8월 15일 개봉해 무려 55만 명이란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를 썼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지난해 12월 12일 전후로 관객들 사이에서 누적 관객 수 1212만 명 만들기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국내 극장가는 단순히 연휴가 길다고 흥한다기 보다는 이렇게 시의적으로 맞는 작품들이 나올 경우 관객들의 지지를 더 받는 경향성을 보였다. ◇국뽕? 중요한 건 ‘만듦새’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말한 건 바로 영화의 만듦새다. 영화 자체가 재미있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화 속에 숨겨진 여러 코드들도 주목을 받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히 항일코드가 있고 삼일절이니까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와중에 일제강점기에 대해 알게 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도 이번 연휴 스코어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밝혔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펜하이머’도 그렇고 ‘서울의 봄’도 그렇고 단순히 때를 잘만나서 흥행했다기 보다는 작품이 가진 재미와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라고 본다”며 “당연히 삼일절 영향이 ‘파묘’에도 있겠고 호재인 건 맞지만, 그건 어쩌면 부수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정 평론가는 “결국은 작품이 좋다는 거다. 오컬트라는 게 마이너성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컬트를 ‘무섭다’고 느낀다. 그런데 ‘파묘’는 네 명이 팀을 모아 다니기 때문에 무서움이 덜하고 마치 캐릭터 무비인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그렇게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났을 때 마지막 즈음 일제 잔재가 가지는 의미가 관개들에게 스며들게 된다. 이런 흐름이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이어 “게다가 삼일절이라는 연휴는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계속 퍼져나갈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호재라 할 만하다”고 덧붙였다.‘파묘’는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 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채고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함께 파묘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2.29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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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경성크리처’·‘일 테노레’, 한일 역사 직시하게 만드는 K콘텐츠의 힘 [줌인]

“일본 대중도 과거 반일로 여겼던 것을 이제는 콘텐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K콘텐츠가 반일과 극일을 넘어 한일 양국의 역사를 직시하는 새로운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이른바 ‘국뽕’에 초점을 맞춘 서사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보다 깊이 있게 짚으면서 그 안에 보편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서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최근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노량: 죽음의 바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된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뮤지컬신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 테노레’는 모두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시기인 1598년 12월 이순신이 왜군 함대에 맞서 싸운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해 전장에 나선 이순신의 최후를 그린다.‘경성크리처’와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경성크리처’는 베일에 싸인 병원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일본군의 생체 실험을, ‘일 테노레’는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과 공연을 함께 준비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 작품 모두 암울했던 시기를 날줄로, 그 안에서 벌어진 개인의 서사를 씨줄로 엮어 보편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일 테노레’ 제작사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일제강점기라는 험난한 시대에 꿈을 가진 한 인물의 서사에 관심이 갔다. 오페라 테너로서의 꿈을 꾸는 인물의 이야기에 보편성과 예술성을 충분히 확보하면 세계 시장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며 “보편성과 예술성은 어떤 소재,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이를 이루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이 같은 서사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조나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시대에 맞선, 시대를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을 넘어 글로벌 공감대를 사고 있다. ‘경성크리처’ 시즌1은 공개 3일만에 국내 1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 3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 69개국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았다. 일본에서도 관심이 높다. 공개 직후 일본 넷플릭스 7위를 기록한데 이어 이틀째에는 2위로 올라섰고 이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일본 배급사 트윈에 선판매돼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 우울하고 비극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결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먹혀들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 같은 콘텐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성크리처’에서 윤채옥 역을 맡은 한소희는 자신의 SNS에 직접 찍은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인간을 수단화한 실험 속에 태어난 괴물과 맞서는 찬란하고도 어두웠던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글을 게재했는데, 이후 일부 일본 네티즌의 악플 세례를 받기도 했다.이에 대해 한소희는 “‘경성크리처’ 시즌1이 공개되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다른 쪽으로 의견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윤채옥과 장태상(박서준)의 러브스토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올린 것”이라고 밝혔다. 한소희의 뜻처럼 일본 네티즌 중에선 ‘경성크리처’를 통해 조선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731부대 등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됐다는 의견도 올라오고 있어 K콘텐츠를 통한 양국의 인식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처럼 민족주의 정서에 기댄 게 아닌,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것이 배경적인 요소를 넘어 재미를 주기 때문에 꾸준히 나오는 것”이라며 “서사의 힘이 글로벌 감성을 만나 일본 대중도 과거 반일로 여겼던 것을 이제는 콘텐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고 짚었다.역사적 사실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일본 대중까지 이해시키고 한국과 일본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며 민간 차원의 갈등 봉합에 기여하고 있는 K콘텐츠. 한국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은 어땠는지를 전하는 문화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세빈 기자 sebi0525@edaily.co.kr 2024.01.1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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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커스틴 언니~” K예능 속 외국인, 손님 아닌 주인 되다

과거 “아이러브 코리아”를 외치며 K예능에서 ‘국뽕’(애국심에 취해있는 현상)을 유발하던 외국인들이 이젠 게스트가 아닌 프로그램의 한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Mnet ‘스트릿 맨 우먼 파이터’ 시즌2 (이하 ‘스우파2’)에서 외국인 크루 잼 리퍼블릭은 한국 크루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며 매 회차 마다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최근 잼 리퍼블릭의 ‘화사 신곡 안무’ 시안 미션은 조회수 800만 회(10월 12일 기준)에 육박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평균 조회수 300만 회인 다른 크루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성적이다. 잼 리퍼블릭이 유독 인기인 이유는 해외 가수들과 작업을 많이 한 유명 댄스 크루 로얄 패밀리의 멤버인 리더 커스틴의 영향과 엄청난 댄스 실력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 못지 않게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잼 리퍼블리 특유의 여유로운 마인드와 경쟁이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고 팬이 됐다는 반응도 많다. 이외에도 방송 초반 아쉽게 탈락했던 일본인 크루 츠바킬 또한 한국 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크루 중 하나였다. 채널A, ENA에서 공동제작 하는 ‘강철부대3’도 이전 시즌과 달리, 미국 특수부대 예비역들을 투입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과 미 육군 특수작전부대인 ‘그린베레’ 출신 예비역들로 구성된 이들은 ‘강철부대3’ 1화부터 압도적인 피지컬, 실제 전장에서 쌓아 올린 탄탄한 경험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한국 특수부대 예비역들을 긴장하게 했다. 최근 ‘강철부대3’ 방송에서는 시즌1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UDT(해군 특수전단)가 미 해군 특수부대와 일대일 ‘해상폭탄 제거 작전’ 대결에서 완패, 첫 번째 탈락 후보가 되면서 충격을 안겼다. 누리꾼들은 “미 해군 특수부대가 1등 할 것 같다”, “타고난 피지컬이 이렇게나 무섭다” 등의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스우파2’ 잼 리퍼블릭과 ‘강철부대3’ 미 해군 특수부대 모두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한국인 팀 및 크루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최근 K예능에서 외국인들은 단순한 게스트 수준에서 벗어나 프로그램의 ‘주류’가 되어 활약하고 있다. 과거 K예능 속 외국인들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체험하고 싶어 하는 일명 ‘국뽕’을 발생시키는 존재였다. 그러나 현재 K예능 속 외국인들은 오히려 한국과 다른 자신들의 문화를 드러내고, 의견도 제시한다. 이런 모습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팬덤을 형성하기도 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K예능이 글로벌화되고 있다. OTT 등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프로그램이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도 많아졌다”면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최근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은 개성 강한 외국인들을 단발성 게스트가 아닌 고정 출연자 개념으로 섭외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또한 포맷 자체를 ‘외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예능도 많다. 지난 6월 종영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아빠들의 고구분투 육아 일상을 그린 MBC ‘물 건너온 아빠들’, 외국인들의 한국 여행기를 그린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외국인 맞춤형 대한민국 관광 가이드 프로그램 채널A ‘한국을 부탁해’ 등이 그 예다. 과거에도 외국인 예능이 꽤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시청자들은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외국인들의 서툰 모습보다도 그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으면서 색다름을 느끼고자 한다는 것. 이처럼 외국인 예능 트렌드가 바뀐 것은 2006년 KBS2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가 방송되면서부터라는 업계 분석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출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의 차이에 대해 짚어봤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유리, 크리스티나 등 다양한 스타들이 탄생하면서 외국인 예능의 가능성을 넓혔다. 이후 2014년 JTBC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글로벌 이슈에 관해 토론을 하는 ‘비정상회담’을 론칭, 재미와 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호평받았다.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타일러, 알베르토 등은 지금까지도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240만 외국인 시대다.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K콘텐츠도 글로벌 해지고 있다. 이제 예능에서 외국인들은 소극적인 대상으로 담아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면서 “자신감 넘치는 외국인들을 그려내고, 한국도 이에 맞서는 라이벌 구도가 더 흥미로워졌다. 또한 과거보다 한국 사회가 외국 문화에 대해 수용범위가 넓어진 것도 최근 외국인 예능 트렌드가 변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3.10.1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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