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파트 짓는 기술 좋아졌는데…하자보수 분쟁, 왜 늘었을까
인천 검단신도시 소재 신축아파트를 소유한 A 씨는 지난 6월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에 수개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아파트 붙박이 가구 곳곳에서 혹파리 알과 벌레 사체, 곰팡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해당 건설사에 방역이 아닌 근본적 대책인 가구 교체를 요청했으나 보조 목만 바꿔주겠다고 하더라"며 "하청업체는 가구 교체 결정권이 없다면서 해당 H 건설사에 결정을 미루고 H 건설사는 가구업체에 하자보수를 떠넘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벽과 바닥은 물론 아파트 한 호실 전체가 곰팡이로 뒤덮인 사진이 화제였다. 집주인이라고 밝힌 B 씨는 당시 "하자를 방치한 것이 아니라 세입자를 내보내고 약 3개월 동안 비워둔 사이 이렇게 된 것"이라면서 "배관 역류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다고 안다. 전 재산과 다름없는 아파트가 하자에 시달리면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주택 건설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공동주택 하자 분쟁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현행 제도로는 하자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가 쉽지 않아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2010년~2021년 건설사별 하자 사건 접수현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하자 사건 접수가 가장 많았던 상위 10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접수된 하자 건수는 총 1만4817건에 달했다. 10년 동안 하루 4건꼴로 하자 접수가 발생한 셈이다. 하자 접수가 많았던 업체 중에는 삼호·GS건설·HDC현대산업개발·에스엠상선·대방건설·두산건설·롯데건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건설사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특히 GS건설은 해외에서 굵직한 건설 사업을 전개할 정도로 건축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은 으뜸인데…왜? 전문가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하자 분쟁의 이유로 속도를 꼽는다. 다른 나라가 1~2년에 걸쳐 짓는 주택도 3~4개월이면 완성하는 구조다. 수천 세대를 짓는 아파트도 2~3년이면 완공이 된다. 건설사가 빨리 짓는데 사활을 걸다 보니 기술이 발전해도 각종 하자가 발생한다. 김정희 BSI 건축과학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건축업계는 속도를 무척 중요시한다. 자잿값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무조건 빨리 지으려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그는 "고밀도 콘크리트나 자재 등에서 습기 등이 충분히 빠지지 않은 채 분양을 한다. 곰팡이나 결로 같은 각종 하자가 발생하는 이유"고 덧붙였다. 미국은 주택을 사고팔 때 집의 상태를 전문적으로 살피는 홈 인스펙션이 활성화돼 있다. 주택 매매 시 대출을 받을 때 홈 인스펙션 확인서를 첨부하기도 한다. 미국 홈 인스펙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김 소장은 "해외는 자재를 사용할 때 품이 더 들더라도 내구성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며 "가령 우리나라는 빨리 붙일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석고보드를 쓰지만, 해외는 큰 것을 사용한다. 연결부위를 최소화해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하자를 막기 위해서다"고 강조했다. 법 정비 및 건설사 대책 마련 요구돼 애매한 하자 기준과 건설사 및 하청업체의 불분명한 책임 소재도 분쟁을 키우는 불씨가 된다. 현 공동주택관리법은 하자 종류와 보수 기간 등의 책임 주체를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공동주택 하자의 조사 보수비용 산정 및 하자판정기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하자 인정 범위가 확대됐다. 그러나 이를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세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자의 원인과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니 보니 서로 책임만 떠넘기다가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공동주택의 하자 분쟁은 이를 하자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가 상당히 주관적인 분야다. 책임소재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가 소비자원의 문을 두드릴 경우 상담과 피해구제를 거쳐 조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소비자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된다"며 "하지만 양측이 이 내용을 수락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하고, 기간도 수개월 가량 소요된다"고 했다. 장경태 의원은 이날 본지에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높은 품질의 아파트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건설사는 국민 기대 수준에 맞춰 질 좋은 자재를 사용하고, 입주자 사전 점검 확대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어 "정부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역량을 강화하고, 하자관리정보시스템 개선 및 사무국 인력 증원을 해 더욱 신속한 하자 분쟁 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21.09.29 07:00